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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2차시 [연애의 시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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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15-08-09 21:27 조회2,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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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시대]후기
 
  중국여행 후 며칠을 호되게 앓으신 곰샘의 [연애의 시대]강의가 있었습니다. 곰쌤은 아프면 꼼짝달싹 못하게 되고 활동에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조직, 사회적 압박과 같다고 하시면서 역시 아픈 것도 관성의 영역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연애 역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므로 관성의 영역입니다. 연애는 쾌락은 짧고 책임은 긴데 왜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을 하는 걸까요? 그렇게 관계를 규정해 놓지 않으면 청춘에 분출되는 에로스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강의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은 중세의 결혼제도를 조혼, 억혼으로 규정하고 야만과 억압이라고 선동하면서 계몽적 프로젝  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진실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쪽 조건에서 시대를 보고 조작하는 것이고 표상은 날조 되는 것입니다. 여태껏 역사는 모두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살아있는 자들의 역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근대 계몽기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가 되고 그에 따라 결혼제도를 바꾸려면 연애패턴이 바뀌어야 돼요. 이광수는 문학으로 연애의 시대를 연 대표적 인물이죠. 이광수의 [무정]을 한국근대소설의 기점으로 보는데 형식이 영채과 선영사이에서 갈등하는 근대적 인간형으로 그려지죠.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순수하다고 전제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연애의 표상들이 생겨난 것이죠.” 20년대 퇴폐적 낭만주의를 통과하면서 에로틱과 예술이 결합한 이후, 연애와 사랑이 문학의 본령이 되었답니다. 이때 형성된 연애담론으로 연애에 대한 환타지가 생겼고 우리는 그 표상에 갇혀 버리게 된 것이죠.
 
중세에는 군주가 무한책임을 지는 시대였다면 20세기에는 중세적 신분이 사라지고 개개인이 책임지는 시대가 왔죠.
민족국가라고 하죠. “개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하려면 개개인에게 주체성을 부여해야 했죠, 그렇게 하기 위해 작업중 하나가 자유롭게 자기 짝을 선택하게 한 거죠.” 중세엔 결혼이 개인의 대사가 아니라 전체의 생육과 번성의 문제였는데 근대엔 자기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개개인의 정체성이 순수하다는 전제가 있으니 연애는 더욱 순수할 것이라는 것이죠.
 
요즘은 나는 사랑 받아야 한다는 자의식이 똘똘 뭉친 여성들이 많은데 여기에는 사랑을 너무 받지 못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런 결핍도 없는데 왜 그럴까요? 그건 근대인은 그런 식의 자의식을 완전히 내장하고 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교육과 종교를 통해서 말이죠. 그래서 근대에 대한 계보학이 필요한 것이죠
 
  연애시절에 순수한 사랑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결혼을 한 여성들이 신체적 접촉이 달라지면 사랑에 대한 표상에 극도의 균열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여성들은 성적으로 소외되고 성을 담론화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성의 성은 비밀의 공간에 갇히게 되고 표상 안에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걸 알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이 절대로 안되는 영역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쓸쓸하고 적막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그 이유를 남편과 자식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것은 오디이푸스적인 함정이며, 아직도 이광수의 그물에서 못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처녀 적에 성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기분이 나쁘고 모욕감을 느꼈다는 군요. 왜 연애나 성에 관련된 얘기를 들으면 놀라고 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쌤과 똑 같은 감정을 느꼈는데 곰샘의 말씀처럼 성을 담론화 할 장이 없으니 누구나 느끼는 근대에 내장된 자의식을 나만 느끼는 것처럼 비밀속에 꽁꽁 숨겨가지고 있었네요. 곰샘이 근대를 공부하고 나서야 이해가 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저 또한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중요한 말씀이 많았지만 강의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표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100년도 안돼서 달라지는 것이죠. 표상안에 갇혀 있으면 결핍이 생깁니다. 표상은 달라지는 건데~ 왜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까?”
 
  저 또한 부부사이의 성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성에 대한 관념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이기에 여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진리가 아니고 만들어진 표상이며, 달라지는 것이라니!!! 구지 기준이 바뀌는데 그 안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쌤이 말씀하신 표상에 갇히는 순간 결핍이 생긴다는 말씀은, 제도나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기를 쓰면서 불행하다고 외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 됩니다. 표상에 갇히고, 비밀에 갇힌 성이 부부사이든 친구사이든 자유롭게 말해질 때 삶을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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