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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에세이 후기 -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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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 작성일16-04-28 20:18 조회2,29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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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스쿨 1학기 에세이 후기 - 2

 

에세이 때 받은 코멘트를 각자 정리해 봤습니다. 2학기 때는 똑같은 코멘트를 받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네요. ^^

 

안은숙

 

열심히 산다는 건 뭔가? 그것부터 물어보라.

나는 어디서나 열심히 사는데 왜 글쓰기에는 열심병이 안 들어 있나? 그걸 따져 봐야한다.

P는 그만큼 왜 안 살아하고 화를 내야한다. ‘너는 왜 매일 늦어!’ 라고 차라리 물어 봐라.

분위기를 위해 하는 말과 행동들, 생각들을 깨보고 그냥 던져 봐라. 그리고 어떤 파장이 일어나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얼토당토않게 파장을 일으킨다면 그 파장의 정도가 어떤 건지를 다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와 개선하려면 한번 던져야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열심병이 있어, 그럼 그 열심병이 뭔지 그 실제가 있어야 한다. 열심병은 과도하게 하다 오히려 목병이 생겼다는 것, 그럼 과도함은 내가 아파서 여러 사람에게 주는 불편함을 안 주기 위해 열심병에 걸렸는지?

왜 글은 한번에 뛰어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가? 어떤 것엔 열심병이 작동하고 어떤 것에 작동하지 않는지 봐야 한다. 나는 어디서 열심병이 막 작동하는가? 어디서는 하나도 안 일어나는데 왜 여기서만 일어나지?

열심병을 고치려면 내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역으로 글을 어떻게 쓰면 내가 가지고 있는 치우침, 과도함, 이런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고 관계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를 글쓰기로 해야 한다.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다. 늘 열심히 살진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만 그렇다. 그건 내 욕심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다. 열심히 하는 욕심이 뭐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자잘한 일상을 얘기 했는데 사실 자잘한 일상의 문제가 아니고 자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문제가 있다. 일상의 문제를 우리는 시선을 크게 두고 봐야 한다. 각도를 여러 가지로 보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어디에서 멈추고 있는가? 내 언어와 사유가 어디에 멈추고 있는가? 거기에 멈춰서 나는 못 넘어가는가? 이걸 글을 쓰면서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글쓰기다. 매번 글을 쓰는 건 어떤 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매번 거슬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말하는 것이 용기이다. 어울렁더울렁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맞부딪쳐 보아야, 관계의 문제라면 관계를 개선하고, 윤리의 문제라면 윤리를 개선해야 한다. 아마 재밌게 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삼았으면 신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봤는가를 생각해 봐라.

 

이흥선

글쓰기로 나를 알아본다고 했는데 자기성찰이 있었나?

이글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성찰인 것 같다. 이옥에게 글쓰기는 너무나 필요한 것이었다. 그의 인생에 글쓰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과거를 보기위해 공부를 했고, 과거를 보긴 했지만, 생활 그 자체를 그냥 써서 냈다. 그렇다면 그에게 과거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것인가? 글을 쓰는 것에 욕망이 있었는가? 충군, 유배를 가서 거기서도 글을 썼다. 이사람 인생에 글쓰기 말고 다른 것이 없었다. 돈이 되는가? 죄를 받느냐 도 없이 자기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글쓰기였다. 그것 밖에 없었다. 이옥이 절심함에서처럼 나는 어떤 부분에서 글쓰기가 절실한가? 이옥처럼 절실한가? 역으로 물어봐라.

문제제기와 질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질문은 안 던지고 글을 막 썼다. 이옥의 글쓰기가 그렇게 절실했다면 나에게도 절실함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없다면 왜 나에게는 없는가? 없는 가운데 그럼 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

글쓰기보다 생계가 중요한 것 같다. 관계, 절대적으로 생계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사치일 수 있다. 사치라면 계속 써야 할까? 생계가 이 글쓰기로 안 된다면 그래도 해야 할까? 점검이 필요하다. 당위고 절대적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 최선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데는 생계가 크다.

생계가 큰 가운데서도 여기 와서 글을 쓴다면 생계 그 이상의 것은 무엇인가? 생계와 부딪쳐지면 글쓰기가 안 된다. 그렇다면 사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생계에 도움이 된다면 불필요한 것일 수 있다. 글을 못 쓸 수도 있다. 그래도 꾸역꾸역 오는 이유는 글쓰기가 생계에 도움이 되나?

생계에 도움이 되기 위한 글쓰기를 나는 어떻게 써야 할까? 그것을 생각해라. 그랬을 때 즐거움이 되어주는 것은 우리가 읽은 텍스트다. 장식이 아니다. 소동파, 한유, 이옥, 유종원 이 사람들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나는 거기에 해당되나? 그것이 뭘까?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을 가지고 넘어가는지 고민이 없다. 나라는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넘어간다. 인정만하면 인정한 그 상태로 간다. 생계고민 그것도 넘어가려면 생계와 글쓰기로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생계의 어떤 부분을 포기해도 그 길을 간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게 안 된다면 생계에 매달리는 것이다. 자아비판 분석이 아닌 절실함이 무엇인지 찾고 가는 것이다.

 

이기원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쓴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를 썼는데 솔직함에 대해 좋다’, ‘나쁘다로 생각하는 것이 솔직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기에 걸려 있어서 이렇게 글쓰기가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 좋다, 싫다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함인가?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났는가를 말하는 것이 솔직함 아닌가? 거기서 왜 불편해졌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솔직함이지 좋다, 싫다를 말하는 것이 어떻게 솔직함인가. 그건 그냥 폭력이고, 폭언이다. 글쓰기를 솔직하게 말하면 쥐어터진다는 공포가 있는 것 같다. 이건 솔직함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이분법을 그대로 터뜨리는 것에 대해 반응이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왜 글을 쓰고, 글쓰기를 통해 이분법을 넘어 봤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글쓰기는 이분법으로 쓸 수 없다. 어떤 책을 읽고 좋다, 싫다를 뛰어넘는 감정이 있어야 글을 쓰는 것 아닌가. 나에게 그것 너머에 있는 새로운 감정이 일어나야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생기는 것이고 어떤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생기는데 단순히 좋다, 싫다로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여전히 거기서 머물러 있다. 고정된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는데 전혀 달아나지 못했다. 단순함 안에서 맴돌고 있다. 평가의 대상이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면 글쓰기는 자유롭지 않다. 내가 느낀 것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글쓰기에 대해서 솔직하게 쓰라는 것은 글쓰기의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솔직히 보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냥 초딩감정이다. 거기서 더 얘기할 것은 없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에세이다. 이옥을 읽고 다 다르게 느낀 것을 써주어야 한다.

전미령

왜 이곳으로 공부하러 왔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피하며 타협하는 것은 긍정적 평화주의자가 아닌 회피적 평화주의자이다. 감정이 쌓인다는 것은 싸움을 안 하려 피하면서 자신을 억압하기 때문인데 그 지점을 잘 들여다보고 풀어 낼 필요가 있다. 갈등을 굳이 싸움이 아니더라도 좋고 싫음, 불편한 것을 정확히 짚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에 좋은 게 좋다는 마음보다 어떤 지점이 좋고 불편한지, 예리하고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토론이나 접속의 장에서 불편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말과 글속에서 타협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좋고 불편한 것을 표현하고 싶은 잠재적 욕구가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려면 무쇠 솥에 기름칠을 계속해야 하듯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정지원

조원들과 토론에서 입을 떼는 것이 먼저이고,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또 요약 읽어 보고 느낌 생각해 보기, 천천히 가고, 초초해 하지 말며, 다르게 읽기가 드러나야 된다는 것. 또 하나는 제목을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서 나는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 가로 바꿔야 한다.

 

박수진

자유롭게 쓰되, 교감이 되도록 쓰기

앞으로는 시선을 나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밖에 두는 공부가 되길 바란다

춤에서 막혀 있는 것을 글로 쓸 수 있지 않을까.

- 뭔가를 따라야 하는 것처럼 전제를 하지 마라. 글쓰기가 내게 자연스런 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반성적 글쓰기를 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 능동적으로 나아가려는지 확인해라.

글을 써서 넘어가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통->공감->교감

매 학기 주제의식에 집중하라

내가 가진 언어를 발견하고, 담론을 발견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것이 글쓰기다

나에게 긍정적인 글쓰기 되려면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댓글목록

최소임님의 댓글

최소임 작성일

늦어서 댓글로 답니다.
학벌이 높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에 대한 자신의 표상을 잘 들여다보라는 것과 자신의 글쓰기 욕망을 찾으라는 코멘트를 들었다. 또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표상도 점검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단지 ‘작가니까 글을 썼지’ 라는 생각으로 텍스트를 읽으면 크게 와 닿는 것이 없다고. 왜 감이당에서 공부를 하는지? 왜 글을 쓰는지?, 왜 글이어야 하는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아서 조급해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한걸음씩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