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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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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로보기 작성일16-05-31 23:07 조회2,0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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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의역학

오늘은『몸의 노래』중 3부의 ‘’존재의 스타일’과 『동의보감』의 ‘기’를 공부했다. 피와 생명, 그리고 바람과 자아에 대한 공부에서 사혈에 대해 다뤘다. 우리는 상처 말고는 혈액과 통증을 거의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에게 사혈의 주된 동기는 통증의 치료였다. 사혈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다른 지점은 부분적 사혈을 할 것이냐, 전면적으로 사혈을 할 것이냐 하는 것으로 거기에서 질병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사혈은 종종 통증치료를 위해 시행되었다. 동서양의 의사들은 등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오금부위를 사혈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치료법가운데는 침술과 유사한 것이 많다. 물론 phlebes와 맥의 경로는 일치하지 않지만 해부를 통해 구분되는 동맥과 정맥보다는 더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일찍부터 동서양의 의사들은 닮은 통로를 가지고 피와 통증사이의 관계를 이해했던 것이다.

중국의사는 ‘혈기’라는 표현으로 혈과 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의학에서 피가 왜 돌고 있는지 의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이 증명할 수 없는 문제다. 외부의 미풍에서 내부의 숨으로,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바람에서 내적이고 자율적인 자아가 만드는 변화로, 이런 변화가 그리스와 중국의 신체 관을 특정 지었다.

기의 핵심은 고정되지 않은 것, 움직임, 흐름을 말한다. 우주만물의 기운 즉, 우리 몸 바깥에 있는 기운을 받아들여 오장육부에 에너지를 보내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을 이어가게 한다. 이렇게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는 먹는 음식물의 영양분을 통해서 직접 받는다. 기는 온몸을 돌면서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속으로 상한일이 생기고 밖으로 사기를 받게 되면 기병이 생긴다.

2교시 에티카

2장 신의 창조 방식과 목적론 비판

만물 없이 신은 자신의 능력을 표현할 수 없다.-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게 실체라면 다른 것 안에 존재하는 것은 양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실체와 양태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창조 방식-신적인 생산은 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속성의 변용을 통해서만 이뤄지고 그 생산의 결과물인 양태들도 속성을 신과 공유하면서 신안에 신과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신이 만물을 생산하는 목적은 없다-신은 인간을 위해 생산하지 않으며 신 자신을 위해서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서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신의 삶 그것이 표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존능력의 표현이 곧 만물의 생산이기 때문에 신은 곧 생산의 존재 인 것이다 만물의 원인이라는 의미에서만 자기원일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신이다

필연성이라는 자유-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서 활동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가 존재의 원칙이나 목적을 갖지 않듯이 활동의 원칙이나 목적도 없다. 소위 목적인 이라는 것은 사물의 원칙이나 제 1원인으로 간주되는 한에서 인간의 충동에 불과한 것이다.

우연도 불가능도 없는 필연의 세계-이 세계는 전체가 각 사물과 사건들이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신이다. 이 세계가 인간의 눈에 예측 불가능하다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은 만물이 자유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정확히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활동하기 때문이고 이 세계가 인간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만물이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주의적 환상의 정체-인간들은 대개 어떤 상황이나 사건의 발생원인은 모르면서도 자기 이익은 열심히 추구하고 또 그런 이익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알고 있다. 자신의 욕망은 인지하지만 욕망의 원인을 탐색해본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게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자유의지라는 환상”

3교시 맹자(등문공장구 상 하)

글쓰기에서 제목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포인트를 잘 잡아서. 핵심을 잡아서 내 언어를 만들어라. 생각의 언어를 열고 닫고 해라. 내용면에서 참고 하면 좋은 말이 많다. 그 말을 덮고 그 말을 가지고 다시 내말로 써라. 내 언어로 쓰게 되면 미끄러지는 부분을 알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자기 현실에서 최선인 글을 써라.

문샘의 강의에 들어오셔서 꼭 지키자는 원칙 첫 번째 쉬는 시간을 갖자! 두 번째는 6시 전에 끝내자! 였다. 쉬는 시간은 가졌지만 두 번째 약속은 5분 늦게 끝나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맹자는 양혜와편과 등문공편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큰 의미는 아니지만 맹자의 어진 정치를 실현하고 자 했던 위정자 등문공이다. 제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등나라에서 등문공이 실현하고 자했다.

나이가 많은 양혜왕과 제선왕 강대국 임금과 이야기 할 때는 대왈(對曰)이라고 표현 했다. 그러나 약소국이라서(?) 20세의 등문공과 이야기 할 때는 왈(曰)이라는 표현, 오(吾)라는 표현도 썼다. 만약 임금의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면 결례라고 할 수 있다. 혹 사제 관계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고 있지만, 이것은 주유를 마치고 돌아와서 회고하면서 쓴 것일 수 있다.

이 글은 관계를 볼 수 있는 글이다. 관계를 본다는 것은 동아시아 유가 텍스트에서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 하는 말인가?’ 중요하다. 공부 방식은 인식, 실천 론이다, 윤리 론이다.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보고 반대적 맥락을 봐라! 지금 나는 어떻게 볼 것인가를 봐라. 정답 맞추기보다 나의 삶과 작동을 보는 것이 동양고전 공부다.

첫날 강의 때 맹모삼천지교 성선설을 이야기 하셨는데 실제로 맹자에서 성선설은 거의 없고, 여기 등문공에서 2번 나온다. 정말 중요한가? 등문공편에서 처음 나온다. 그렇다면 성선설은 무슨 의미인가? 맹자는 절대로 많이 읽힌 텍스트가 아니다. 우리가 성리학을 읽은 건, 조선 성리학 때부터 중국에서 북송 때에 본격적으로 종용받은 것, 우리는 13-14세기에 우리가 만든 텍스트다. 주자학과 함께 들어오면서 성리학적 맹자일 수 있다.

맹자 읽기의 key word

하나 구체적인 대목 사심 없어야 한다. 둘 어떻게 내가 우리가 군사들의 공동체를 만들까? 상대를 군사로 대해야 한다. 집의(集義), 호연(浩然)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맹자 식 왕도정치 ‘인정’이 삶의 방식 실천의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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