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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5주차 수업후기 (5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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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람도리 작성일16-06-06 15:16 조회2,0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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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 의역학 수업

이번 주부터 4주 동안 『몸의 우주성』을 읽는다. 이 책으로 몸에 대한 사상을 통해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알아보기로 한다. 신화, 심리학, 철학, 종교를 넘나들며 인간과 우주 그 사이 몸을 이야기한다.

1. 신화적 사고에서의 동양과 서양

고대에서는 몸과 우주의 관계를 무의식은 몸을 혼돈에서 분화되는 것이며 세계를 ‘신체=그릇=여성성’이라는 환경으로 경험한다. 외부를 경험하고 자신과 연관 시키고 다시 떠오른 이미지들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렇게 본 세상은 하늘, 대지, 어두운 공간의 모습이다.

신화적 우주관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서 시작되었다. 자연물에 깃들은 ‘장소의 정령’을 믿으면서 우주 전체에 영적인 힘이 가득하다는 ‘범신론적’ 우주관을 갖게 된다. 신화시대에 안과 밖, 인간과 우주의 상호관계를 신비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서양은 일신교가 나타나면서 다른 신들을 배제한다. 서양의 자아 의식을 기본으로 하는 주관/객관, 정신/물질의 이분법은 그러한 감각을 쇠퇴하게 만들었다.

2.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동서양의 차이는 자연관에 기반을 둔다. 그리스의 자연관은 4원소설, 원자론의 입자모델인 반면, 음양오행설은 흘러 움직임을 의미하는 파동 모델에 해당한다. 서양의 언어처럼 문법상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며 중국은 주어와 술어가 없다. 동양은 주체의 심리적 체험을 통하여 나타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부딪힘으로써 다루어야 한다고 여겼다.

융은 중국의 역(易)의 특징을 공시(共時)성이라고 정의했다. 공시성은 서양 과학서의 기본적 사고 형식인 인과성과 대비되는 원리이다. 공시성이란 어떤 것과 그것이 서로 감응하여 동시에 동조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 ‘작용을 장’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기(氣)’가 흘러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인과관계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현상의 변화를 보기 때문에 동조 관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공시성은 공간이라는 전체적 장의 위상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의 통합성이 중시된다.

몸을 보는 관점은 몸을 외부로 관찰할 수 있는 객체로 보는 입장과 몸 안에서 보는 주체적 입장으로 나뉜다. 근대의학은 신체를 관찰하는 ‘시선’에 고정되어 있어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관점을 가진다. 하지만 동양의 주체적인 몸은 자기 몸을 느끼는 방식이여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서양은 죽음을 사후의 피안에서 불멸의 영혼으로 보고 동양은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처럼 삶도 죽음도 영원의 생명 아래에 속한다.

동양의학의 병리관에서는 마음이 기의 흐름에 이상과 불균형을 가져온다고 하면서 병의 원인이 된다고 봤다. 병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불균형된 생체의 기흐름을 정상화하고, 자연치유력을 활성함으로써 자연적으로 건강이 회복되기를 지향한다. 생리반응으로서 심신 관계를 받아들이는 건 공시성의 사고방식과 상통한다.

동의보감의 신(神)에 대해 배웠다. 생명을 존재하는 물질적 기반의 측면에서 정(精)이고, 몸 전체 기운을 움직이게 하는 게 기(氣)이며, 고도의 정신활동을 신(神)이라고 한다.자기가 나아갈 방향을 아는 게 신이다. 양의 정기로서 넓게 펼쳐지면서 흩어지는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고요함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군주지관인 심(心)에서 신명(神明)이 나온다. 심은 텅 빈 영(虛靈) 덕분에 모든 변화를 지각할 수 있다. 비워야 매순간 새로운 환경, 사람, 사건과 만나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소통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신의 병증 치료는 감정 조절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중 성내는 게 사람의 오장을 가장 상하게 한다. 매 순간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해서 신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해야 기혈이 안정된다.

 

2교시 ::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인간의 정신은 오직 신체를 지각하고 신체만을 느끼며, 신체를 통해서만 관념을 형성한다. 따라서 정신의 능력은 오직 신체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신체의 능동이 영혼의 능동이고 신체의 수동이 영혼의 수동이다. 신체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정신은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신이 지배하는 정신에 의해 육체가 작동된다.

스피노자는 ‘우리는 너무 신체를 방기했다’고 이야기한다. 의지도 정신의 한 양태인 한에서 양태들의 인과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신체와 정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 신체의 질서와 정신의 질서가 서로 같다는 것, 신체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스피노자가 주장하고 확립하려는 신체론의 골자이다. 이건 심에서 신이 나오고 신이 정신이 되니 신체가 곧 정신이라는 한의학의 원리와 같다. 진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 정신이 놀랄만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신이 무기력하다는 건 신체가 무기력하다는 뜻이다. 또한 정신의 결단은 신체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정신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3교시 :: 맹자 수업

맹자 수업에서 문샘께서 말해주신 반구저기(反求諸己)가 인상적으로 와 닿았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그것을 비난하니 원망과 실망이 많아진다. 맹자는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한다. ‘ 내가 남을 그토록 사랑했는데, 사랑해준 그가 나를 친하게 생각지 아니 하면 나의 인(仁)을 반성하라! 내가 사람을 다스렸는데 다스려지지 아니 한다면 나의 지(智)를 반성하라! 내가 남에게 예를 다했는데, 그가 나에게 응당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경(驚)을 반성하라!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구하라. 나의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온다.’

나에게서 벌어지는 일은 나를 원인으로 시작된다.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 했지만 상대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인이 그가 원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나의 인이 부족한 것이라는 의미일 거다. 하지만 원인을 나에게서 구하는 것이 자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계에서 문제가 온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라는 의미일거다. 그러기 위해 몸을 바르게 해야 한다. 몸이 바르게 되어 기혈이 조화로우면 외부의 교감이 분명해진다. 그러니 나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게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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