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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7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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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별나무 작성일16-06-20 19:06 조회1,7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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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몸의 우주성>
오늘은 동양적 사고의 끝 부분 동양적 사고의 완성이다. 앞의 내용들을 아우르며 이어 나오는 서양의 사고를 이어주는 장이다. 명상과 철학은 어떤 관계인지 고찰했다. 명상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기변화에 있다. 명상을 통해 자기변용과 자기실현의 길을 찾고자 했으며 그 지점이 철학이 시작되는 곳이다. 동아시아의 사고는 천인상관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불교적 자연관에 이르렀다. 불교적 자연관의 하나인 은 깨달음의 과정이나 체험의 내용을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반 철학, 반 논리주의이다. 반 철학으로서의 은 통념을 깨고 다른 언어의 길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송 대에 이르러 유학의 전통을 새롭게 하며 理氣철학을 바탕으로 신유학이 등장하는데 이 사상은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기 철학의 체험적 기반
이론적 측면 : 사상에서 유래.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써 부처와 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유로 유교의 聖人學체계를 세우고 목표를 확고히 했다.
실천적 측면 : 주렴계의 태극도설은 원래 도교의 도사들이 행하던 명상수행법을 설명하는 태극도에 근거한 것이다. 초월적 의 차원과 경험적 현상인 를 연결하는 방법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기철학의 우주관을 체계화한 것은 주자가 쓴 대학격물치지개념이다. 기질지성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욕망, 충동을 수행으로 본연지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상계인 기의 영역을 수행과 실천을 통해 리의 세계를 체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수행론은 불교와 도교가 이기철학에 끼친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송대 이후 주희의 철학은 관학의 이데올로기로서 권위가 막강했다. 이후 천리와 인욕을 연결하는 양명학이 생겨났다. 중국근대 인간관의 출발점을 양명학에서 보는 이유이다. 일본에서도 막부시대 말기에서 유신시대 초기 지도자 중에 양명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눈에 뛴다. 양명이 죽은 때는 일본이 전국시대가 한창이었다. 세계의 근대사가 서양의 우위로 기울어 가던 시대다.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달라져 동양과 서양이라는 차이를 넘어 근대적 인간관과 우주관의 의미를 다시금 물어야만 할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동의 보감>
성음과 언어는 낭스의 키워드이다. 지문과 얼굴만큼이나 사람마다 각각인 목소리는 신()에서 나오며 그 기운은 양맥인 독맥과 음맥인 임맥이 합쳐져 나온다. 대개 말을 목이나 입에서 나온다고 여기지만 동의보감은 오장육부 오케스트라의 연주물로 보고 있다. 특히 정신이 나오는 심장은 목소리의 주인이다. 어떤 말을 하겠다는 정신 작용을 주인으로 본 것이다. 폐는 목소리의 문이며 근원은 신장이다.
자기가 하는 말을 언이라 하고 다른 사람의 물음에 답하는 말을 어라고 한다. 성음이 목소리 그 자체를 말한다면 언어란 정교한 정신 활동으로 접근하고 있다. 폐는 외부와 소통하는 1차 관문 장부로써 폐에 문제가 생기면 정확한 언어전달이 어려워지고 헛소리를 하게 된다. 물론 오장육부의 활동이 언어를 가능하게 하지만 지휘자는 폐이다.
오장육부에 문제가 생기면 언어는 길을 잃게 된다. 말소리가 똑똑하지 못하고 토막토막 끊어지는 증상(정성), 욕설을 하며 외치는 증상, 노래하는 것, 우는 것, 신음소리, 하품, 재채기, 트림, 놀라서 말을 못하는 등등의 증상을 보인다. 고전 낭송은 신장의 기운을 위로 올려(수승) 몸의 기를 원활히 한다.
 
2교시
<스피노자>
드디어 책의 후반부에 이르렀다. ‘! 우리가 정녕 이 책을 읽었단 말입니까?’ 명성에 힘으로 책을 구입하기는 쉬워도 혼자 읽기는 어려운 책이다. 함께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용을 바르게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한 만큼 사유의 다른 길을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생각했다.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
스피노자에게 덕이란 인간이 자기의 본성의 법칙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을 해내는 능력을 가진 한에서 인간의 본질 또는 본성 자체(4부 정의8)이다. (269)
 
스피노자, 맹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조원 모두가 공감했다. 위 인용문은 맹자의 과 내용과 의도하는 바가 같다. 두 분 다 좋은 세상이 무엇이며 그런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에 대한 궁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3교시
<맹자>
쪽 글 평 : ‘맹자의 질문인가평소 감이당에서 질문하는 것과 담론을 합친 것 같다. 질문의 답을 맹자에게서 찾지 않았다. 맹자의 구절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찾는 것. 질문은 맹자에서 나왔는데 답은 기존 범주에서 맴돌고 있다. 맹자와 내가 충돌하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맹자가 모티브가 되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고자편
에 대하여 고자의 담론과 맹자의 담론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고자는 성을 고여 있는 물로 보고 그것을 어느 쪽으로 트느냐에 따라 동쪽이 될 수도, 서쪽이 될 수도 있다. ,방향에 따라 선악이 달라진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상하의 차이가 있다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은 선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 때 타자는 완전한 외부로 아무리 정교한 논증이라도 합의 부분은 있을 수 없다. 맹자는 담론의 프레임을 ⚀☞⚆프레임으로 층위를 바꾼다. 맹자가 토론을 잘하는 지점이다. 그는 담론의 장을 바꾸거나 선점한다.
우리는 나는 간다.’라 할 때 나가 따로 있고 그 나가 가는 행위를 하는 인식 틀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것이 분리 될 수 있는 것인가? ‘가는 나, 먹는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도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여 성선, 성악을 전제로 한다. 맹자는 성은 타고난 것이므로 본래부터 갖고 있는 선한 본성을 잘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좋은 세상이란 본성이 실현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고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 지식인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는 왠지 고자의 인식 틀이 더 익숙하다. 맹자가 요구하는 실천적 덕목이 우리에겐 너무 멀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문샘은현실의 불가능성 자체가 그 완전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 성인이란 四端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 하였다. 우리는 감각적 욕망을 원하는 소체가 편하지만 맹자는 누구나 고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고 하였다. 소체와 고귀한 사람 사이에서 구방심(求放心)하려면 매번 지금의 나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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