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감이당 4학기 1조 에세이 후기 >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화성.png

화요감이당 4학기 1조 에세이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은비 작성일16-12-28 10:55 조회2,496회 댓글0건

본문

4학기 1조 에세이 후기

박은영

골계란 무엇인가를 먼저 짚었어야 했다. 골계는 풍자이다. 풍자는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하는 것이 풍자이다. 약자에게 하는 것은 풍자가 아니다. 약자를 향한 풍자는 비겁한 것이다. 풍자는 강한 자에게 하는 것이다. 풍자의 대상은 왕이었다. 상대가 어디서 잘못되고 있는가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풍자이다. 풍자와 직언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라. 풍자가 비유적인 이유는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현재에서 가장 문제 되는 지점, 하지만 그들이 잘 모르는 지점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풍자이다. 상대가 약자라면 풍자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직언했나? 나의 말이 상대방을 정말 생각하면서 말하는가, 비난하기 위해서 말했는가를 생각해 봐라. 정말 내가 원하는 관계는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박정복

이번 에세이에는 나의 글쓰기 문제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꽂힌 것이 있으면 전체 흐름에 맞지 않는데도 써버리는 것. 이게 내 ‘병’이라고 길샘은 진단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샘은 여지없이 지적했다. 습관을 버리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가 보다. 자료를 모으는 것보다 버리기가 더 힘들다는 곰샘의 말씀도 생각났다. 이런 것도 ‘욕심’이라는 걸 배우는 중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오늘날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며 나약해졌는지, 죽음의 문제를 제기 했으니 전개도 이와 연관시켜 펼쳐야 했었다. 본문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를 언급했으니까 오늘날은 왜 그렇지 못한지 죽음도 시대의 에피스테메라는 걸 풀어갔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면 결론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도출되도록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사마천의 글쓰기를 갖다 붙였다. 사마천에 관한 책을 읽고 감동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필요할 때 써야지 이 글에서는 연관이 없었다. 결론에 가서 억지로 연관되는 것들을 본문과 관계없이 밖에서 갖다가 쓰니 4부 모두가 다 각각 주제가 다른 글이 되고 말았다.

사마천 부분은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이기도 해서 좀 식상했다고 하는 샘도 있었는데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됐다. 쓰면서도 아무래도 영화와 자객과 연결이 안 되는 것만 같아서 뺄까 무척 고민했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임박, 때는 늦었다.

미리 조 토론을 안 한 것, 매번 초고를 한 번이라도 수정하지 못하고 닥쳐야 쓰는 이 버르장머리. 게으름. 이러한 것까지를 다 포함해서 글쓰기이고 공부라는 것을 배우고 글로 써보기도 했지만 습관을 바꾸기엔 아직 멀었나보다. 공부한지가 한 두 해도 아닌데 이런 습관이 무척 두려워진다

신미승

이번 나의 에세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과 실제 말하고 있는 것이 다른 글쓰기였다. 그냥 죽음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예로 들었던 『사기史記』속 인물들의 자결은 치열하게 어떤 상황을 대면했을 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냥 죽기를 꿈꾼 자들이었던 것처럼 그려졌다. 자결에 초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떻게 자기를 다 던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 힘이 뭘까, 그 동력이 무엇일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들이 그 극한의 상황에 가야만했나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얘기해야 했다.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른 죽음이 가능했는지 그 과정이 보여 져야 했다.

현대의 자살은 죽기위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죽음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마천은 어떤 죽음도 긍정하지 않았다. 사마천이 주목한 것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자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을 다 던져 살아야 하는가를 찾았어야 했다.

정은희

말하고자 하는 뜻과 내용이 어긋나있다. 서두의 전제가 너무 강하다. 총명의 뜻은 설명이 잘 되었는데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느낌이다. ‘사람을 비추는 거울 사기’가 제목인데 모든 것이 ‘거울’이 될 수 있는데 사기의 거울은 그것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월왕 구천, 오왕 부차 범수, 범려 등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각자의 길을 다 달랐다. 지금 내게 시대의 변화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고혜경

글쓰기는 내 생각이 정확하지 않을 때 길을 잃어버린다. 글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려고 하면 주제가 흐려진다. 이 글도 쓰려는 의도와 결과가 맞지 않았다. 범려를 통해 본 인생태도, 수련의 과정을 펼치려고 하였다. 범려는 엄혹한 현실에 어떤 지성을 발휘했는가? 물러날 때의 절도 있는 아름다움의 힘은 평소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발휘되는 것 같다. 평소 삶의 수련이 매사 행동의 결정과 죽음의 모습이다. 우리는 어디에 힘을 쓰며 살고 있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