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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에세이 후기 -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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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 작성일16-12-28 15:55 조회2,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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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스쿨에서의 1년 공부가 4학기 에세이 후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되네요. 함께 한 학인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기원
주면 얻으리라는 제목이 give and take 같다. 관중이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포숙아가 관중의 형편을 이해해준 것처럼 읽힌다. 포숙아와 관중의 구도를 이런 구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결정을 하니까 여기서 더 못나갔다. 능력이 있는데 잘 안되는 게 안타까웠던 것이지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형편들을 이해해준 건 관중이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나를 알아봐줘서 얻을 게 있을 거라 생각한 것으로 잘못 읽은 것 같다.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봤어야 했다. 관중을 알아봐주었다는 것은 뭔가? 어떤 조건도 아니고 이 친구의 상황을 그냥 안타까워한 것이다. 제환공을 죽이려고 한 관중을 포숙아는 추천했다. 자기 목숨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관중이 더 훌륭해질 수 있었다. 제환공, 관중, 포숙아의 고귀함을 말하는데 이들이 훌륭해질 수 있었던 것은 지인의 능력 때문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쓰면 논점을 흐린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 대해서 쓰다가 환공 얘기를 쓰고 세 사람의 고귀함을 썼다. 우정이 가진 고귀함이 뭔지 얘기했어야 했다.
사마천은 우정이 한 사람을 남다르게 만드는 힘이고 춘추시대가 그런 게 가능한 기반이 되는 시대라고 말하는 것 같든데 이걸 말하고 싶으면 제환공, 포숙아, 관중의 관계를 얘기해야 한다. 지인과 지기는 뭔지, 이것들이 시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결론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얘기들이 들어갔다.
 
전미령
제목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다사람이 거울이다란 측면에서 월왕 구천의 관상을 보고 범려가 한 말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부터 코멘트가 시작되었다. 오자서의 죽음이 토사구팽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사마천이 오자서의 복수에 주목한 이유도 없고 지루하게 나열한 글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복잡하고 혼란한 시대에 개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는 전환점으로 오자서만 주목해서 그의 복수가 갖는 시대적인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하셨다. 범려가 사람을 알아보고 물러나는 지점이 오자서의 최후와 다르다는 점만 보고 시작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사기의 이야기를 쫓아 오자서, 범려 두 인물의 행적을 줄거리로 요약한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단지 사마천의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에 대한 나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글을 쓸 때 꼭(!) 유념하라 하셨다. 글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반드시 자신의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낼 것을 당부하셨다. 결국 2학기의 복사판이 되었다.
 
이흥선
왜 이글을 썼는지? 항우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글에 나타나 있지 않다. 천자가 아닌 영웅이길 바랐던 항우에 대한 표현이 부족하다고.
제목이 글의 내용과 맞지 않은 글이라고... 차라리 제목을 항우가 몰랐던 것, 오만했던 항우, 부족함을 몰랐던 항우라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말씀. 항우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있지만 앞뒤가 잘 전혀 맞지 않은 산만한 문장의 글이라고 하셨다.
 
최소임
에세이를 서술하는 관점을 잘못 잡았다. ‘한비가 세난을 쓴 이유가 아니라 사마천은 왜 한비의 세난에 주목했을까?’였어야 했다. 사마천이 서술해 놓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해석할 여지가 좁아져서 정리 수준에 그치는 밋밋한 글이 되어버렸다. 사마천이 한비의 세난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그 시대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한비가 유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 간절함을 더 세세하게 살펴봤어야 했다.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고민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 다르므로.
 
정지원
복수가 복수를 낳는 이 구조가 뭘까를 여기서 차라리 탐구를 했으면 나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 같고, 얘기도 흐트러지지 않고. 근데 이렇게 갔다 저렇게 갔다. 나의 마음이 왔다 갔다 했음을 너무 잘 보여줬다. 이건 적어도 집념이 있다는 건데.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 해야 할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 집념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나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로 쭉 못 읽어나가는 거다.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지금 에세이에서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이건 공부에서도 왔다 갔다 하는 거고, 생각하는 것에서도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무언가 어떤 하나를 결정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어떤 집념도 생길 수 없는 거 아닌가 싶다. 라는 말씀이었다.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것을 확실하게 내가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래야 글도 분명해진다. 지금은 길이 분명치가 않다. 그건 내 길도 분명치 않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확실히 잡아서 그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쭉 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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