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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금성 1학기〕 5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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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여한일상 작성일23-03-21 15:20 조회544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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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랭귀지스쿨 / 1학기 / 5강 후기파이돈/ 23.03.21 / 3조 윤원정

 

 

               『파이돈철학 강의 후기

 

 

파이돈과 플라톤 철학에 대하여

  파이돈은 플라톤의 중기 첫 번째 저작으로 플라톤의 실천적 고민이 집중되어 있다.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였던 이 세태를 극복하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조직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또한 이전 소크라테스가 와일드한 느낌이 있는 반면 파이돈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너무 멀끔하고 정중하며 치밀하고 논증적인 느낌마저 준다. 여기에 퓌타고라스학파 철학자 에케크라테스를 대담자로 등장시켜 플라톤이 비로소 자기 얘기를 하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플라톤 철학은 파르메니데스적인 세계관과 퓌타고라스적인 세계관을 종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학파 사람으로 일자(一者)를 얘기하며 치밀한 논증으로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세계가 변한다면 우리가 변화를 인지할 수 없으며 우리가 변한다고 느끼는 것들은 감각이 만들어 낸 가상이고 진짜 본질은 그것 자체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당대에도 엄청 비판을 받는다. 이때 퓌타고라스가 삼각형 내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과 같다는 말을 한다. 수학적 질서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으며 변하지 않는 일자란 수학적인 질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내각의 합이 180도인 본질적 삼각형을 그릴 수 없으며 아무리 정밀하게 그려도 머리 속 본질의 삼각형과 그려낸 삼각형은 차이가 있다. 바깥에 있는 이 세상은 결국에는 본질을 복사한 모사물인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이어진다.

 

 대화적 서술과 변증법 그리고 아포리아

진정한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담론보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파이돈 61b) 

  플라톤은 서술적인 글쓰기가 진리를 발견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화적 서술은 방법론상으로 질문-답변-질문으로 이어지다 보면 마지막에 순도 높은 무언가가 남는다. 이런 식의 변증법적 방법은 진리를 찾아내는 서양철학의 아주 중요한 전통 하나를 구성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나자마자 비판받는다.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근거가 없다. 이건 정의고 이건 정의가 아니면 3항이 있어줘야 한다. 정의와 정의 아닌 것을 가르는 뭔가가 있어줘야 하는데 이것이 없다. 플라톤의 논리 전개 방식은 전부 인위적이고 자위적으로 진행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판한다. 이데아론으로 보면 우리가 지상에서 영위하고 있는 정의는 모사품이다. 진짜 정의인 정의 그 자체가 저기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그럼에도 플라톤이 대단한 철학자인 이유는 순도를 높여서 답을 내고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슈퍼스타의 조건이다. 이야기를 맺으면 안되고 오히려 질문을 남겨야 한다. 순도를 높여 거기서 끝내버리면 아주 조야한 논리학 밖에 안된다. 그런데 대화편 거의 대부분은 아포리아(Aporia:난제,미궁)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들뢰즈는 아포리아로 끝나는 그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순도높은 정의가 있다이것이 보통은 형이상학자들이 꿈꾸는 것이다. 모든 것의 근본을 파헤치는 어떤 진리를 찾아내는 것을 원하는데 이런 식의 진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포리아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힘이 계속 작용한다는 것이 들뢰즈의 주장이다. 이것이 차이이다.세계와 세계 질서는 끊임없이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 들뢰즈의 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안에 완전 순수한 본질로 도달한 것 같은데 다시 해체되어 버리는 아포리아로 끝나는 구조가 이미 있다. 그러니 그렇게 욕을 먹어도 플라톤이 대단한 것이다. 들뢰즈가 설명한 얘기는 플라톤 본인이 들으면 펄쩍 뛸 만한 얘기지만 플라톤 안에 이미 이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니 본질주의자도 플라톤을 좋아하고 본질주의를 어떻게든 넘어서려는 사람들도 플라톤을 따를 수밖에 없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 2000년은 모두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다.” 라고 말한 게 굉장히 합당한 얘기이다.

 

 심신이원론-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면 우선 몸의 쾌락과 관련해 철학자는 혼을 몸과의 결합에서 최대한 분리한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네.” (파이돈,64e)

  쾌락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며 혼과 상관없고 혼의 기쁨은 그것과 다른 데서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몸과 영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심신이원론이다. 이것이 서양철학의 관념론이며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신체성을 멸시한다. 몸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믿을 수가 없다. 서양철학이 본질을 묻는 방향으로 정향되어 있어서 몸은 본질을 묻는데 불리한 것이다. 플라톤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은 우리가 알아낸 것이며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상기한다고 한다. 이 논리 구도를 따라가면 우리가 실제 겪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설정하기가 너무 좋다. 이 세계는 거짓으로 가득한 것이다. 인간은 놀랍게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있지만 우리 머리는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늘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유일신 기독교 신앙과 결합되기에 너무 좋은 것이다. 신체성과는 다른 본질을 생각하니 이성적인 것’, ‘사유이고 이로 인해 인간 이외 다른 것들은 한 수 아래가 되며 인간중심주의가 생겨나게 된다. 이성적인 것만 실재이므로 이성적이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다. 이는 근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인간 아닌 것들에 대해 마구 대하는 감수성이 꽤 오래된 감수성인 것이다. 인권, 천부인권은 누군가에게 주어진 권리라는 이런 식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이나 철학적으로 파헤쳐보면 이런 딜레마에 부딪힌다. ‘인권의 가치와 인간중심주의적인 폐해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죽음에 대하여

진정한 철학자는 사실은 죽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니, 모든 사람 중에서 죽음을 가장 덜 두려워할 것이네(파이돈, 67e)

   철학자는 몸을 떠나서 정신을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이며 철학을 하려면 몸을 계속 떠나야하니 철학자는 죽음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으며 계속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 한다. 마음에 안들지만 이런 말이 좀 멋지긴 하다. 하지만 플라톤과 다른 방식으로 죽는다는 건 지금 가지고 있던 상식과 편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플라톤과 다른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매번 새로 태어나는 것으로. 플라톤은 고정되려고 정신의 변하지 않는 질서에 접속하려고 매번 죽는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매번 변화하려고 죽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말대로 만약 이성만 있으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플라톤이 이런 식으로 말한 이유는 플라톤이 보기에 세상의 것들이 너무 가짜가 많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온갖 혼란스러운 변화 이전에 우리가 진짜 추구해야할 실재가 무엇인가를 물어가는 게 플라톤의 주요한 동기였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 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 상식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어 아포리아인줄 이미 알면서도 플라톤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사유의 모험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정승연 샘의 철학 강의를 들으며 나의 공부와 생각이 얼마나 안온하고 한가로웠는지가 돌아봐졌다.

 

 

 

 

 

댓글목록

반야수님의 댓글

반야수 작성일

변론, 크리톤, 파이돈까지 소크라테스의 변신을 놀라워하며...제가 정해진 어떤 소크라테스를 찾고 있더라구요.이런... 흥미진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후기로 정리를 해주시니 고맙습니다.ㅎㅎ

김에세이님의 댓글

김에세이 작성일

“누군가 오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그가 오래전에 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 워런 버핏

저번 주 강의를 잘 정리해 주신 덕에 읽는 내내 잘 이해가 됐습니다. 잘 쉬었다 갑니다.

여여한일상님의 댓글

여여한일상 댓글의 댓글 작성일

워렌 버핏이 이런 시적인 명언을 남겼군요!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무언가 진리의 맥?을 짚어내는 모양이예요....
시를 즐겨 읽어 김에세이님의 마음이 유연하고 따뜻한듯~~^*^

박마리아님의 댓글

박마리아 작성일

지난 수업 내용이 잘 정리 되어 있어서 복습하는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물론 글 쓰신 선생님은 수고가 많으셨을 테지요 ㅎ
그 동안 서양 플라톤 철학의 근간을 이루어 있는< 심신이원론>은  정신(이성)을 진정한 실재로 간주하고 몸을 형이하적으로  심지어 파괴되고 사라져야 할 것으로 죄악시 되어 왔다. 물론 현대에 들어와서는 몸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리얼리티요, 삶을 이루는 근간으로 잘 대접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도 지나친 몸의 집착과 쾌락으로부터 멀리하고, 진정한 인간 삶의 본질을 추구하라는 말로 들리긴 하다.  현대에 태어 났으니 망정이지 아마 몇 백년 전 서양에서 태어났으면 내 몸은 철퇴로 두들겨 맞지 않았을까? ㅎ 요즘 태어난 것이 이토록 감사할 줄이야...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의 삶 자체가 죽음에 대한 훈련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상적이고 멋있는 삶의 태도이고 정신인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훈련일까???...

여여한일상님의 댓글

여여한일상 댓글의 댓글 작성일

몸의 컨디션 따라 집중력과 기억력 사고력까지 영향 받는 걸 보면
몸과 정신(마음)은 분명 상호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듯해요...^^
유달리 몸에 끄달리는 저의 경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