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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랭귀지 스쿨_2학기 4주차(5월 26일) 후기_2조 홍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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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깨트린 작성일23-05-29 20:41 조회867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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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랭귀지 스쿨_2학기 4주차(526) 후기_2조 홍선화

 

 

오늘은 지성에서 영성으로곰샘 강의가 있는 날이다. 과연 영성이 뭘지 궁금했기에 열심히 수업을 들었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감이 잡힐 듯 말듯한 어려운 개념이었다. 영성에 대한 개념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을 차례대로 요약해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조건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꺽정이를 비롯한 칠두령이 조선시대 명종 때가 그 조건 안에서 이제 자기 삶을 만들어 갔다면 그러면 지금 우리는, 현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조건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창안해 내야 된다. 모든 걸 활용하면서 영성을 통해 더 깊이 가야 한다. ‘영성은 오랫동안 신이라고 표현했지만 내 안에 있는 깊은 내면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말은 영혼이다. 영혼이거나 신. 나의 의식과 자아,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어서 내가 더 깊고 더 높은 이 세계와 접속하겠다는 그 열망을 영성이라고 한다. 진리와 영혼이라고 해도 되고 신성함과 내면의 어떤 깊은 자유라고 해도 된다. 그러나 이것이없으면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다고 하셨다.

 

뇌는 뉴런들의 연결에 의해서 작용하는 오묘한 원리가 있는데, 연결 접속하는 리듬이 뇌이지, 뇌조직이 뇌가 아니다. 근데 우리는 자꾸 이걸로 생각해서 인생도 이렇게 생각한다. 자꾸 결정체를 찾고, 그런게 있으면 뇌가 반짝반짝 빛날 거야. 천재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연결 접속이 다이나믹해질 때 천재적인 어떤 상상이 떠오르는 거다. 이 많은 뇌세포를 갖게 된 이유가 그게 우리의 존재성이다. 이걸로 굉장히 많은 것과 접속을 해야 된다. 접속을 한다는 건 뭐냐면 그 에고를 구성하는 부분을 셧 다운시켜는 것이다. 이거를 모든 종교에서 뭐라고 하냐면 케노시스라고 한다. 내려놓음, 자기포기

안 그러면 모든 정보를 다 에고에다가 넣어서 어떻게 하면, 나를, 내 욕망을 채울까로 다 변환을 한다.

  

꺽정이와 칠두령의 삶이, 굉장히 울분에 차가지고 어떤 콤플렉스와 또 계급적인 이런 것 때문에 막 그냥 막 욱하는 심정으로 으쌰해서 한바탕 뒤집었다는 이런 고정관념을 가졌었는데 그들에게 콤플렉스가 없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얘들은 자기 무슨 트라우마가 있고 이런 거가 없다. 에고를 자의식과 일치시키는 현대인과 다르게, 그들은 사회적으로 하층민이기도 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야생성을 가지고 삶을 새롭게 창조했다. 봉학이 같은 경우는 왕족이지만, 이런 메이저 주류의 세계에 편입돼서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 조건에서 자기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냈다. 이게 사실 핵심이다.지금도 우리가 조건 안에서 맨날 조건 때문에 뭐가 안 돼 뭐가 안돼.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왜 이렇게 또 상처를 많이 받냐고 그러면, 뭐 때문이야라고 한다. 얘네들보다 객관적 조건이 더 험한 팔자는 없을 테니, 임꺽정을 배운 다음에 자의식에 관한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제 자기 안에 있는 야생성인데 이게 뭐냐면 의리, 진짜 이게 진정한 의리다. 친구가 너무 좋고 스승님한테 배우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갖바치가 임꺽정의 어떤 영성을 담당하는 스승님이다. 얘네는 당대 최고의 스승한테 배웠다. 그리고 사대부보다 더 지성이 높은 그 스승이 얘네를 알아봤고 얘들도 칠두령도 이 스승을 아주 지극하게 섬겼다. 이게 굉장히 특이하다. 칠두령은 자기 야생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천지의 은혜를 받아서 스승과 만날 수 있게 된다. 길에 나섰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거는 엄청난 거다. 그러니까 이 둘이 크로스 된 게 임꺽정이라는 소설이다. 임꺽정 얘기만 했으면 그냥 풍속사가 된다. 그냥 야생적인 인간들이 그냥 자기 멋대로 살다가 한바탕 재미나게 살다가 그냥 역모에 걸려서 다 이제 몰살 당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로 되겠지만, 근데 갖바치가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 아주 길이 빛나게 된 거다. 갖바치는 직접 뭘 가르쳐준 게 아니고 그냥 진짜 자율학습을 시켰다. 그냥 배우고 싶은 마음을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나중에 그게 어떤 경지에 이를 때 그거를 테스트를 해주고. 갖바치가 이들을 이렇게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건 진짜 최고의 영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얘네들의 운명을 다 내다볼 줄 알고 그다음에 애들이 어떤 재능을 갖고 있고 또 어떻게 해야지 이 야생마들을 길들일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래서 이렇게 돌봐줄 수 있었다. 이런 크로스 때문에 이 작품이 아주 불멸의 고전이 됐다.

 

그럼 갖바치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나? 가장 천한데 가장 고귀한 상태로 천하게 태어나서 가장 고귀하게 죽었다. 백정 집안에서 났는데, 존재 자체가 출가인이다. 그래서 부인이 죽었을 때 아무런 감정적인 뭔가 없다. 갖바치는 백정일 때부터 제일 먼저 한 공부는 이제 유학 공부를 다 마스터 하고, 그다음에 도교 양생술, 그리고 이천년 밑에 가서 명리를 완전 마스터했다. 묘향산에서, 그리고 불교. 유불도 삼교회통을 이루는 경지에 오른다. 이게 동양 사상의 최고 경지인데 그때 조선시대 여기에 이른 사람은 지금 갖바치 밖에 없다. 앞에 서경덕, 황진이의 스승이 나오는데, 황진이는 성욕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테스트한다. 이게 이 배움의 핵심이라는 거.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배움인데 이 배움이 영성인 거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욕망을 얼마큼 제어할 수 있느냐가 오늘 내가 한 영적 수련이다. 명상을 열심히 해도 욕망제어가 안되면 에고 영역이 안 내려간 거다. 그러니까 이 영성이 왜 필요하냐라고 하면 매 순간을 나를 에고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향하도록 그 방향성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게 영성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갖바치는 어떤 공부를 했을까 하면 이 사람은 바로 이런 공부를 했을 것이다. 유학을 통해 공자의 마음을 지키고, 그러니까 공자의 인()도 계속 유지를 하려면 한순간도 멈추면 안 된다. 잠깐 인했다가 바로 그냥 욕망과 인욕으로 빠진다. 근데 이제 양생을 하니까 신체로 그렇게 했고. 아마 명리학을 배우면서 불교의 그 업장, 윤회를 더 잘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까르마나 업이라는게 중국 운명에서는 명리학으로 표현될 수 있구나 진짜. 그러니까 이제 인도에서는 윤회, 이런 게 아유르베다 의학이나 요가의 차크라 이런 걸로 해서 저 사람의 무게 중심이 어디 있나 이런 거를 가지고 한다. 의학하고 어떤 존재론의 생리학이 결합이 되는 건데 중화문명권에서는 음양오행으로 그 사람의 몸을 치유하는 한의학이 발달했고 명리학이 그 사람의 이제 무의식적인 습관 패턴인데, 이 팔자라는 게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내버려두면 그쪽을 향해 가게 되어 있다. 이게 팔자다. 그러면 팔자가 운명론이냐 숙명론이냐 얘기 따질 필요가 없다. 내가 그걸 제어하는 힘이 있으면 되는 거다. 그럼 운명의 주인이고. 제어하려고 전혀 하지 않으면 그냥 팔자대로 산다. 복잡할 게 없다. 운명은 결정된 것도 아니고, 결정이 안된것도 아니다. 이거야 말로 내가 결정하는데 나의 영혼이 결정해야 된다.. 왜냐하면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그러니까 머리로는 잘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술먹고 마약을 한다. 그러면 자기가 이뤄온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거 알면서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의식 차원에서 내가 건전하게 산다고 되지 않는다. 팔자를 바꾼다는건 영혼을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영혼과 영혼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런 게 영성이다. 근데 이렇게 이제. 운명 그러면 이제 천지인이 결합을 해야 운명이 결정이 된다. 그러니까 내 운명이 이 천지 안에서 이 연기, 다른 어떤 다른 존재들하고 연결돼서 이루어진다 는 걸 아는 게 영성이다.

 

갖바치가 왜 유불도의 마지막에 그러니까 칠장사에서 생불이 돼서 자비심을 키울때, 그러니까 이럴 때 명리학을 배운 것도 엄청 유용했다. 근데 이걸 가지고 사람한테 개입을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든 거다. 법륜 스님이 요즘 정말 전 국민의 멘토가 되셔가지고 다 이걸 들어줄 때 이제 사실 개입을 하는 그 어떤 기준이 있다. 개입을 할 때, 번뇌를 최소화 하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해야 되니까 이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자비심만으론 안 된다. 굉장한 통찰력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갖바치는 이제 자기가 공부를 하고, 조광조나 이런 도학파들한테 매일 밤마다 가르침을 펼쳤다. 찾아오면 도학 정치란 무엇이냐를 가르쳤다. 그런데 이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성공할 수 없다고 안 하는 건 아니다. 태어나서 사대부가 뭘 해야하나? 성공이 목적이 아니다. 성공하면 뭐하냐. 이 조건에서 내가 무엇을 하다가 죽어야 되는가를 아는 거 그건 우리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다. 내가 이런 인연을 맺었고 이 인연 때문에 내가 태어났으니까 이 인연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거 말고는 달리 없다. 결과가 좋아야 돼. 이런 거를 설정하면 공부도 할 수가 없다. 공부 몇 년 했는데 글쓰기도 못해 이렇게 되면 이제 그게 다 내가 그동안 뻘짓했다고 이렇게 해서 도루묵이 돼버리잖아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영성이 아니다.

  

조광조가 죽을때도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인생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이제 목숨을 잃게 됐지만, 아쉬울 거는 없다하고, 본인은 이제 자기가 이제 가서 자기가 할 일을 한다. 갖바치가 칠장사에 가서 거기에 오는 모든 중생에게 도움을 주고 그러다가 86세까지인가 꽤 오래 사셨다. 꺽정이 얘네들을 보니까 얘네들의 업으로는 내가 뭘 가르쳐서 출가를 시켜서 뭘 할 수가 없는 견적이 안 나와. 도저히. 그러니까 다 지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럴 때는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어떻게든 출가시켜서 애들을 두령이 되지 않게 했어야 되지 않냐 근데 그렇게 하면 더 반작용이 심하다. 그러니까 얘네들은 자기 업대로 살고 그러면 이제 다음 생에는 좀 더 다른 존재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면 이게 바로 전 우주적인, 우주의 모든 생을 놓고 이렇게 진짜 진짜 이렇게 배팅을 하는 거다. 임꺽정의 진짜 최고의 승자이자 주인공은 갖바치다. 근데 갖바치를 스승으로 만났음으로 해서 칠두령의 삶이 최고의 삶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아주 야생적인 자기 스타일에 맞게 멋지게 살았다.그거는 우리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개가 어우러졌기 때문에 나는 임꺽정에 대한 리라이팅을 하게 됐다.

 

나는 갖바치가 이제 처음에 도사가 된 다음에 이제 혜화문 앞에 가서 그렇게 거기서 살면서 사대부하고 이 칠두령 얘네들을 여기서 같이 키웠는데 이런 게 어떤 깨달음에 이른 사람이 하는 일이다. 거기서 힌트가 딱 생긴다. 그러면은 이제 모든 인정물태 수다를 들어주면서 그게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걸 짚어주는거, 그게 법률 스님이 하시는 거다. 가장 인간답게 고귀하게 살 수 있는 길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이런 거를 우리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된다.

그리고 다음 스토리텔링 시간 때 영성에 대한 멋진 아주 깨달음과 흥미진진함이 어우러진 그런 스토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시며 수업을 마치셨다

 

댓글목록

반야수님의 댓글

반야수 작성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배움인데 이 배움이 ‘영성’인 거다. 우리의 배움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는데 정리 해주신 덕분에 잘 살펴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내적자유님의 댓글

내적자유 작성일

강의 풀 버전으로 상세히 꼼꼼하게 기록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름 하나라도 놓칠 세라 귀담아 듣고, 필기도 빠짐없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얼마나 공백이 많았었는지 깨닫습니다. 후기 정독이 필수적인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박영주님의 댓글

박영주 작성일

글쓰기에 참고 하려고 들어와 봤어요.  '영성' 참 어려운 개념입니다. 다시 읽어봐도 잘 모르겠네요.
영성에 가까워 지기를  바래봅니다.

larabina님의 댓글

larabina 작성일

운명은 결정된 것도, 결정이 안된것도 아니다.  무의식적인 습관 패턴을 제어하는것, 팔자를 바꾼다는건 영혼을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영혼과 영혼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런 게 ‘영성’이다. 영성에 대해 계속 고민중~~다시 복습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여여한일상님의 댓글

여여한일상 작성일

내가 더 깊고 더 높은 이 세계와 접속하겠다는 열망, 신성함과 내면의 어떤 깊은 자유가  ‘영성’이라는 말이 깊게 와 닿네요!
케노시스, 내려놓음, 자기포기로 에고를 셧다운시켜 욕망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상태~
욕망을 부추기는 지금 시대를 살며 '영성'을 음미하며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참~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꼼꼼하게 정리해주신 후기~ 얼마나 애쓰셨을까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윤

진솔한님의 댓글

진솔한 작성일

선화샘 후기를 읽으며 제가 놓쳤던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정성스레 강의를 옮겨주시느라 애쓰셨고, 덕분에 내용을 다시한번 새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후기 잘 읽었어요^^

도깨비님의 댓글

도깨비 작성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영성에 대한 수많은 정의와 해석을 다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은데, 이걸 쓰느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요? ㅎㅎ.. 하루 하루 자신의 오랜 습관과 욕망에서 조금씩이라도 거리두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영성에 조금 다가서게 되는 건 아닐런지요... 잘 읽었습니다. --- 2조 이경자

나영님의 댓글

나영 작성일

영성이란 내면의 어떤 깊은 자유일 수도 있다는 말에 뭔가 팍 느낌이 오는 듯 합니다 ^^  선화샘 덕분에 강의를 휘리릭~ 한번 더 복습했네요 !  꼼꼼한 요약정리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