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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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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감 작성일22-05-31 12:01 조회623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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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랭귀지 스쿨(금성) / 2학기 / 4주차 후기 / 김보성

 

말이 말을 낳고 싶다.

 

여름이다! 깊은 물소리를 내는 짙은 초록색을 가진 계절이 왔다. 벤치에 앉아서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안다. 여름은 한 번도 같은 바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작년의 어린 나무 잎 새는 올해 두 배로 늘어났을 것이고 휴식이 필요한 노년의 나무는 자신의 감정을 내년에 조금 더 덜어 낼 것이다. 그래서 바람은 안다. 올해의 초록 물결과 내년의 녹색 물결은 달라진 여름의 소리를 담을 것이다. 나는 감이당으로 걸어가고 있다. 남산의 모든 푸른 나무들은 바람을 빌어 오늘 만큼은 나를 위해 손을 흔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말하기 2차 오디션에 합격해야 하는데, 정말 떨린다. 백 미터를 늦게 달리는 말하기경주가 있었으면 좋겠다. 느티나무처럼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천년 뒤에나 문장 하나에 마침표를 찍으면, 살아생전 누구 하나 나에게 딴지를 거 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전에는 발표할 내용을 복희씨의 도움으로 선생님들과 함께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몇 가지 고쳐야 할 대목들을 보완하였다. 오후, 드디어 말하기 발표시간이 되었다. 나의 심박수가 정상수치를 또 벗어났다. 학우들 앞에 서는 순간 심장이 100가 되었다. 이러다가 영혼까지 다 타서 재가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나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까? 허공 속에 떠다니는 공기방울 하나하나에게 말을 걸어봐야 하나, 아니면 한 학인 눈동자를 선택해서 싸울 듯이 뚫어지게 봐야 하나, 어쩌나 난감하고 곤란한 상황이 또 나에게 처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그 학인에게 부탁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선생님의 눈동자를 잠시 빌리겠다고, 그래서 나의 두려움을 장바구니에 담듯 잠시 담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눈 맞출 수 있다면, 불안한 마음을 대신 울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말하기 전 나의 호흡은 이미 신음을 하고 있었다. 무대의 공기는 사막 같았고 고쌤의 표정은 남극처럼 추워 보였다. 나의 빈손을 허공 속에 깊이 찔러 넣고 조금은 거드름피우며 느릿느릿 말하고 싶었다. 또한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의 입가에서 순간순간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한낱 어리석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나의 소리는 이야기에 이야기가 되어 꼬리를 물지 않는 걸까? 긴장감이 두려움과 이웃이 되어 또다시 나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온 몸을 공기에 기대서라도 나의 시선을 누군가의 눈동자에 말뚝 박을 수밖에 없다. 나의 공포의 눈동자를 본 그 학인은 아마 오늘밤에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꿀 것이다. 비명소리를 지르다 새벽에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발표를 마친 후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 분들과 나의 스토리구성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가며 들었다. 한 분 한 분 말하는 것을 집중해 가며 나의 부족한 것들을 점검해 가며 대조하며 들었다. 이제는 알듯하다. 선생님들의 이야기 핵심 변곡점을 찾은 것 같다.

 

고미숙 선생님께서 지난 시간에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글을 쓰려면 최소한 세 번은 읽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전체 지도를 그린다는 생각으로 그냥 스케치 하듯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읽다보면 전체 흐름이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줄거리가 이해되며 스토리속의 장면들이 눈에 디테일 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세 번째로 읽다보면 이야기에 감흥이 내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책에 나오는 단어, 문장, 단락, 사건 등등 텍스트의 모든 장면들이 보이게 되지요. 그리고 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해야 합니다. 발표하려면 이야기의 핵심을 정확히 알아야 자신이 무대를 완벽히 장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낭송 주자어류에서도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독서법’ 이 나와 있다. “글을 볼 때는 조금씩 숙독하는 것이 첫째요. 천착해서 주장을 세우지 말고 다만 반복해서 몸소 경험해야 하는 것이 둘째요. 몰두하여 이해하되 효과를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 셋째라고 했다.” 최소한 3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문제는 뭘까? 책을 한 번을 읽는 데도 대충 읽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다음 나의 생각들을 배출하였다. 책 내용을 완벽히 장악했다면 떨리더라도 말할 때 마침표 하나 정도는 찍었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꼭 3번 이상 읽으리라. 게임도 삼세판이 아니던가, 하물며 지식을 쌓는데 게을러서야 되겠는가!

 

다음에는 청심환에 의존하지 않고 당당히 발표할 것이다.

댓글목록

여여한일상님의 댓글

여여한일상 작성일

감수성 뛰어난 우리 보성샘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문장 표현에 감탄하며
후기 글 잘 읽었어요.
아주 깊은 감응이 느껴지네요.
읽기도 말하기도 만만치 않음을 절감하며
그래도 함께 하니 뚜벅뚜벅 한 걸음씩 갈 수 있구나 싶어요.

오!늘~님의 댓글

오!늘~ 작성일

첫 발표자로 지정되어 갑작스럽고, 더 떨리셨겠어요. 
멋진 후기 공감됩니다! 말하기를 연습하며 읽기를 배우게 되더군요.

이종숙님의 댓글

이종숙 작성일

후기글이 문학작품속 한페이지인듯 너무나 좋네요~~그날의 발표도 첫번째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며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그리고 너무 수고하셨어요^^

잘견디자님의 댓글

잘견디자 작성일

공감님이 보성님이신가요? 아무튼 땀나는 심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첫 시간 이후로 계속 수업을 빠지는 바람에 직접 이야기를 하는 걸 듣지 못해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글을 참 잘 쓰신다는 건 알겠네요. 근데 저는 종종 글과 말이 따로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말을 잘하면 오히려 말로 다 풀어내서 글에 특별한 매력이 덜한 경우를 꽤 봤어요. 사실 저는 말로 더 쉽게 풀어내는 편이어서 입을 다물고 그 에너지를 축적해 글로 승화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로 느끼기엔 보성님은 글을 훨씬 잘 쓰시는 분 같습니다. 자잘한 순간적 느낌들을 잘 잡아내어 묘사하시는 재능이 약간 하루끼 글 느낌도 나고…^^ 어쨌건 원하시는 대로 잘 이루어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