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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선화 작성일22-09-27 15:44 조회83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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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친절한 지형샘의 지도 아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스트레칭을 30분간 한 뒤
지난주에 이어 『소통하는 신체』에 대해 두 번째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움직임과 관련된 '피지컬한(physical)' 책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커뮤니케이션, 신체, 죽은 자, 3가지에 대한 공통 특성을 다룬 '정신적인(psychological)'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직 끝까지 읽지 않아 과연 저자가 말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신체와 죽은 자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책이구나. 하지만 더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이번주 세미나에서는 <들어가는 이야기-인간은 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까?>, <1장- 신체의 메세지를 듣는다>에 이어
<2장-표현을 세밀히 나눈다는 것>과 <3장-죽은 뒤의 나를 만나다>라는 내용에 대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장-표현을 세밀히 나눈다는 것_신체와 기호> 챕터에서는
요즈음 아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경험하는 정서적 변화, 심경의 변화를 표현할 때 같은 말투와 같은 표정으로 "짜증나"라는 표현만 되풀이하고, 말은 청산유수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에 '변화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이러한 '표정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합니다. 어린이들이 아동기에서 청년기로 이행하면서 정서가 발달하면서 표정이 풍부해지고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 따라 조금씩 표정이나 발성법, 자세를 바꾸는 기술도 배운다고 합니다. 또한 그렇게 정서가 발달하면 '쪼개는 방식'이 점점 세밀해져 가는데, 즉, 정서가 발달하면 표정, 발성, 몸짓 같은 신체표현이 다양해지고 매너, 어휘, 복장, 취향에서 세밀한 차별화를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심플하게, 단순하게,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식의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사춘기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을 참지 못하고 기존의 정형화된 틀 안에 자신을 집어넣어 맞춤으로써 사춘기의 심리적 위기를 회피하며 정신적 안정을 얻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는데요. 세미나에 참석인원 중 마침 교육현장에 계신 선생님이 계셨었는데 저자가 우려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저자는 ‘정형화되지 않은’ 사춘기를 거치면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가 하나 늘고, 표정이 하나 늘고, 신체표현이 하나 늘고 그렇게 해서 인간의 신체는 쪼개지고 쪼개쳐 치밀해지고,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기호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이나 억양에서 아주 섬세한 심리 상태까지, 신체 메세지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서도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이어서 ‘표현이 쪼개진다’라고 설명하면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예로 들며, 우리가 누군가의 신체표현을 보고 '깊이가 있다' 혹은 '감동을 받는다' 라고 할때 연주를 잘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실수를 안 하는’ 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동작 단위가 그 연주 속에 들어 있는가에 따라 소리의 중후함과 깊이가 결정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복잡한 운동을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데도, 뇌가 단순한 신체 동작 이미지를 고수하면 우리의 신체는 시각으로 본 것들의 움직임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몸도 그 이미지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이미지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 신체에 들어와 있는 체감적 상상력을 떠올리라고 하는데요. 체감을 재생하는 체감적 회로는 동작을 재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신체기호로 손에 닿는 순간, 혹은 어떤 자세를 취하는 순간 신체 기억과 과거의 체감이 되살아나고 그 운동성의 기억은 몇십년이 지나도 그 현실감 그대로 되살아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뇌와 신체는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뇌는 신체의 일부이며, 신체는 뇌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들며 설명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할 때, 일본어로 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때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샐리저의 영문 원서를 봤더니 자기 몸 안에 샐린저가 신체적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소설 속 문장이 몸속 깊이 쑥쑥 들어오는 감각처럼 우리가 글을 읽고 공감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신체적인 의미성', '의미에 채워진 체감'이라고 말합니다. 언어의 의미에 신체성이 깊이 스며드는 것처럼 신체 역시 의미에 의해 편성된다고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의미성이나 신체성을 별개의 것으로 쉽게 다를 수 없다고 말하며 2장을 마무리 합니다.

<3장-죽은 뒤의 나를 만나다_신체와 시간> 챕터에서는
‘신체는 지성적이고, 지성은 신체적이며 신체와 지성 사이에는 기존의 시공간 좌표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동성이 작동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문장을 읽다 보면 몸이 글 속으로 빠져들면서 자신이 문체의 리듬에 올라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이처럼 텍스트를 날마다 조금씩, 계속 읽다 보면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하며,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책의 경우에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를 알 것 같은 순간을 예로 들며 이러한 현상을 춤출 때의 느낌과 비교합니다. 춤을 출 때 지금까지의 모든 스텝의 패턴을 알고 거기서 추론해 다음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신체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면서 움직이고, 리듬에 따라 상대가 다음에 어떤 식으로 스텝을 밟을지를 저절로 예측하게 된다는 것입이다. 저자는 그럴 때 순간적으로 ‘시간의 역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텍스트를 읽는 작업이란 연속적으로 첫머리부터 문장을 쭉 따라 읽는 게 아니라 미래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오거나 과거로 거슬러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식으로 시간 안에서 일종의 왕복운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대표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인간은 ‘전前미래형future anterior’으로 과거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전미래형이라는 것은 프랑스어의 시제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완료되었을 동작이나 상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내일 오후에 나는 이미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식의 문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누군가의 책에서 어떤 문장을 읽고 있는데 그 문장이 어떻게 끝날지 알겠다 싶을 때, 나는 그 문장을 마지막까지 다 읽어버린 셈이며, 나는 이미 미래에 다다라 현재를 마치 과거처럼 회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직 미래의 시간이 오지 않았지만 반걸음만큼 미래에 먼저 발을 들여놓고 선취한 미래로부터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종격투기 선수인 무사시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저자는 무사시씨에게 '링에서 상대 선수한테 강한 펀치를 먹었을 때 신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묻자, 무사시씨는 “시간을 살짝 밀어서 대처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즉, 상대방으로부터 펀치를 한 방 먹을 때는 역으로 자신이 그 후에 두 방을 상대의 얼굴에 먹이는 상황을 떠올리고는 그것이 현재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펀치를 두 방 먹여 상대방이 넘어지는 순간을 현재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맞고 있는 지금은 과거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시간의 비유로 말하자면, 기술이 끝난 상태를 현재로 간주하고 지금 기술을 걸고 있는 상태를 과거로 간주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무술에서 ‘상대방보다 앞선 시간에 올라탄 사람’, 다른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 즉, 명인이나 달인은 미래를 선취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기술을 걸 때는 이미 기술이 끝났을 상태의 체감을 분명히 이미지화하면서 그 체감을 접촉점으로 상대에게 기술을 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을 ‘시간적으로 뒤쳐저 있는 사람’으로 비유합니다. 과거에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은 경험을 갖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언제나 과거의 경험으로 돌아가 과거의 프레임으로 현재를 살기 때문입니다. 즉, 펀치를 한 방 먹었을 때 다음에 자신이 두 방 먹이는 것을 현재라고 생각함으로써 말하자면 '미래로 도망감'으로써 통증을 상대화하는 것과 달리,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은 과거의 어느 시점을 현재라고 생각함으로써 지금의 고통을 참기 쉬운 것으로 만듭니다. 즉 '과거로 달아남'으로써 현재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겁니다. 달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어떤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시간을 앞으로 슬쩍 미는' 기법을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범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종종 시간을 뒤로 미는 것을 선택하며 신체감수성을 최저로 만들어 돌처럼 딱딱해지고, 거북이처럼 꼼짝 않고 머리를 등껍질 속에 집어 넣은 채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이어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프로이트 정신분석 치료의 원리' 언급하며 트라우마의 전이를 설명합니다. 트라우마의 전이란 환자가 본래 사로잡혀있던 트라우마를 전이시켜 다루기 쉬운 병증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환자의 내면에서 정지하고 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정지해 있던 환자의 시간이 점차 흘러 미래를 향해 흘러가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전前미래형'을 말한 라캉과 프로이트의 '전이를 통한 트라우마 치료방법'은 이러한 시간 조작 능력을 인간성의 중요한 요건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은 무도에서 말하는 '선을 잡는' 기법과 근본적으로 같은 기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전미래형'으로 말할 때 가장 먼 최후의 시점은 '죽은 뒤의 자신'이며, '죽은 뒤의 자신'을 현재로 상정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과거와 '이제부터 죽기까지' 경험한 여러 가지 일들을 회상하듯 말하는 사람은 위기에 맞닥뜨려도 판단을 그르치지 않을 수 있는 담력이 있으며, '죽은 뒤의 자신'의 체감을 선명하게 이미지화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소통하는 신체』 2~3장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책의 내용이 후반부로 갈수록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참 신선하고 놀라운 책이구나’라는 생각을 후기를 쓰면서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3장 마지막에서 ‘죽은 뒤의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인간만이 잘 살 수 있다’는 문구를 읽으니 지금 듣고 있는 세미나 ‘이판사판 <티벳사자의 서>’에서 말하는 "죽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라는 의미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댓글목록

김현옥님의 댓글

김현옥 작성일

여러 선생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김지형님의 댓글

김지형 작성일

후기 잘 읽었습니다 선화쌤! 전 미래형으로 산다는 건 어떤건지 매우 고민했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그리고 상대방 보다 앞선 시간에 올라타기도 저는 매우 궁금하더라구요. 저도 무술을 많이 해봤지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ㅋㅋ 더 열심히 수련을 해야 할거 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