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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칭 세미나 5주차 후기『소통하는 신체』죽은자와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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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거닐리아 작성일22-10-09 14:34 조회379회 댓글1건

본문

(I) “소통하는 신체” 5장 6장 내맘대로 해석

본 책의 원서 제목은 “죽음과 신체-커뮤니케이션의 자기장”입니다. 평생동안 합기도를 수련하고 철학을 연구한 문무를 겸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저자는 “개풍관”이라는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감이당과의 공통분모가 있을것만 같아 호기심으로 책을 폈습니다. 저자는 신체와 기호, 신체와 시간, 신체와 윤리, 신체와 죽음 이렇게 언뜻 보면 서로 연관성 없어보이는 네가지 주제를 신체와 연결시켜 소통에 대해여 이야기를 합니다.

5장에서 저자는 윤리에 대하여 무라카미 류, 데즈카 오사무, 레비나스, 존 로크의 통치론,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루소, 몽테스키외, 미국 독립선언문, 하버트스펜서, 니체, 호세 오르테가 등을 예로 들며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상당히 복잡하고 길게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아래 인용부분이 20세기 타자윤리학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입니다. 

 “당신 앞에 있는 타자는 당신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감정이입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을 힘들게 만들거나 당신의 권리를 빼앗거나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때로는 당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어떻게든 잘 지내세요. 잘 타협하세요. 만약에 그 타인이 사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을 ‘근절’시키고 이 세상에서 ‘최종적인 해결’을 보려고 해선 안 됩니다. 인간은 사악한 것들과 어떻게든 잘 타협할 수 있습니다. 지력을 총동원 해서 그 사람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본문 인용(p213)

불교철학에 따르면, 만물은 인드라망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망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즉 세상 만물이 모두 연결이 되어 있고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입니다. 몇 년 전 지구 반대쪽 브라질의 어느 학생이 무심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용기가 지구를 오염시키고, 오염물이 축적된 열대우림을 견뎌내지 못한 바이러스가 인간세상으로 뛰쳐나와 결국 기관지가 약한 내가 지난 2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백수로 보내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내경편 6부에는 ‘내 몸속의 타자와 타자가 될 운명의 내것’이 나옵니다. 지하철에서 난생 처음보는 사람이 옆에서 하품을 하면 나도 따라하게 되고, 기침을 하면 타액을 통해 바이러스가 내 몸안으로 전파될 수 있습니다. 즉, 너와 내가 남남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결국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구성원간에 지켜야 할 규칙, 즉 윤리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6장에서 저자는 망자의와 소통이라는 은유를 통해 열린 소통의 가능성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망자를 모신 장소에 거듭 찾아가는 것은 ‘무언가가 들려오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기’때문입니다. 가만히 서서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 망자들을 대신해서 말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망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그만두는 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본문인용 p266)

진정한 소통이란 내가 상대의 말을 듣고 답을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상대의 언어적 신호를 넘어서 몸에서 오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상대가 전달하고 있지 않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망자와의 소통이란 상대의 대답을 들을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상대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미래의 개진될 끊임없는 소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열린 소통입니다.


(II) 본문 요약

30여년 넘게 합기도를 수련하고 철학자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연구한 저자는, 5장에서 윤리(철학)와 신체(합기도)라는 언뜻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두가지 주제를 연결시켜 신체적이고 비언어적인 소통과 사회 윤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레비나스의 윤리론에서 타자는 나와 기준을 공유하지 않는 자, 즉 나와는 다른 잣대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나와 다른 잣대를 가지고 다른 기준을 가진 타자와 나 사이에는 그 둘 사이를 구분짓는 경계선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 할 수 있는데, 레비나스는 역설적이게도 타자와 나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다 라고 주장한다. 레비나스를 공부하는 일본 연구자들은 여기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한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 이유는 일본 연구자들이 언어 수준에서만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이 문제는 비언어적인 차원에서, 즉 신체성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타자와 나와의 소통이란 언어적인 소통이 아닌, 상대방과 언어적 소통을 시작하기 이전에 소통의 회로를 열기 위한 비언어적이고 신체적인 소통을 포함하는 “소통의 소통”을 뜻한다.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나는 여기에 있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라는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전달이 되면 이것 역시 소통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6장에서는 타자(他子)가 아닌 심지어 사자(死子)와의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책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형이상학적으로 흘러가다가 결국은 소통의 최고 단계인 죽은자와의 소통을 설명한다. 소통하는 신체라고 번역된 이 책의 일본원서 제목은 직역하면 “죽음과 신체-커뮤니케이션의 자기장”이다.
구석기시대의 크로마뇽인은 사람이 죽으면 사채를 매장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죽음에 대한 인식, 즉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으로 이어지면서 이때부터 인류의 뇌는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유대인들은 상대의 질문에 예상치 못한 허를 찌르는 반문을 던지며 하나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하는 문답법을 통해 가르친다. 따라서 탈무드는 시간이 흘러도 지혜로운 랍비들에 의해 늘 새롭게 해석된다. 유대인들에게 교육이란 결론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 인내력을 가르치는 것이고, 결국 지성이란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을 인내하는 능력이다. 
산사나 사찰을 세우는 것은 결말을 짓기 위함이 아니다. 신사나 사찰에 참배를 하고 합장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망자들의 잔향에 귀를 기울이기 위함이다.

(III) 한문장평

방대하고 심오한 철학적 배경지식을 가진 저자가 일본 아사히문화센터에서 원고없이 의식의흐름을 따라 강연에서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기에 처음 읽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고, 내용 자체도 난해하고 문맥간 논리적 연결성도 미약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사이에서 길을 잃었지만, “소통”이라는 맥을 잡고 책을 다시 읽어보니,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깊이있는 통찰력을 맘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댓글목록

홍선화님의 댓글

홍선화 작성일

여주샘~ 후기 잘 읽었어요. 저도 이 책 읽고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기 쉽지 않았었는데... 후기 읽고 나니 조금 더 이해되는 느낌이네요. 나무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는데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숲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