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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서브텍스트s.2] 마담 시리즈 걸작선 - 7차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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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브렉break 작성일23-02-04 15:48 조회1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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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으로 내 삶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

-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를 읽고 -

  ‘[문학과 서브텍스트s.2] 마담 시리즈 걸작선은 내가 감이당에서 처음으로 함께 한 세미나이다. 그동안 세미나에서 함께 읽은 책들은 요즘 세상에 적응이 힘든 남성인 나에게 여성, 섹슈얼리티, 욕망, 사랑이란 주제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는 <인형의 집>의 노라에게 인형이기를 거부하는 용기를 배웠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는 망상에 가까운 욕망의 덧없음을 알게 해준 반면교사였다. 내가 하권의 발제까지 맡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나에게 타자의 시선과 사회적 조건을 뛰어넘는 관능을 추동하게 해주었다.

 상처 받은 사람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들>에 나오는 주요인물들은 저마다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클리퍼드는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장애를 갖고 아버지와 형이 죽자 자동으로 채털리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 그는 성적 무능력, 전쟁 트라우마, 우울증, 귀족 가문을 이어가야 하는 중압감에 짓눌린다. 마이클리스는 희곡작가로 미국에서 엄청난 재산을 모으고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희곡이 자신들의 사교계를 풍자했다고 여기는 잉글랜드 본토의 상류층들에게 더블린의 쥐새끼, 잡종개라고 불리며 멸시 당한다. 볼턴 부인은 탄광사고로 광부였던 남편을 젊은 나이에 잃은 뒤로 혼자 살아간다. 사고에 대한 남편의 정당한 보상과 명예 회복을 바라지만 탄광회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코니는 남편과 함께 랙비 저택에 갇혀 지내면서 집안의 장식장이 되어버린다. 그는 남편 클리퍼드가 강조하는 정신적인 생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무너진다. 멜러스는 군대에서 출세하여 신분을 높일 수 있었지만 상류층에 환멸을 느끼고 출세를 포기한다. 그는 외부인과 접촉을 끊고 랙비 숲속 오두막집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들은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자신만의 감옥을 만들어 그 안에 칩거한다.

 감옥에 안주하는 사람들

이 소설에서 코니와 멜러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상처 입은 영혼들은 자신들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클리퍼드는 채털리 가문을 이어가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감을 놓지 못한다. 마이클리스는 상류층들의 멸시를 내재화하여 자신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믿는다. 코니하고 몸을 섞고 결혼하자고까지 말하면서도 결국 코니가 다가오면 도망가 버린다. 그는 그냥 자기중심적인 향락으로 자신의 울분을 해소할 뿐이다. 볼턴부인은 탄광이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들었는데도 또다른 탄광주인 클리퍼드의 하녀가 된다. 심지어, 그의 귀족생활을 동경하고 그 낡은 전통에 자신을 맞추어간다.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들

반대로 코니와 멜러스는 이 사회가 자신들에게 덧씌운 굴레를 과감하게 깨뜨리고 나온다. 하층민과 결혼하는 것보다 귀족가문의 후계자를 낳는 것이 더 명예롭다는 전통, 귀족 부인이 남편 영지의 사냥터지기와 바람을 피웠다는 손가락질, 하층민의 불안정한 삶보다 지겨워도 귀족의 안정적인 삶과 권위가 더 좋다는 현실인식이 모든 허례허식과 인습, 통념을 거부하고 이겨내며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오직 부드러운 사랑과 관능의 힘으로 말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으면서 나는 그저 코니와 멜러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지닌 용기가 한없이 부러울 뿐이었다. 나 역시 욕망을 갈구하면서도,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발제를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갔을 때, 나는 우연히 김원영 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연극배우, 변호사, 작가로 활동하는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장애인이다. 그가 가진 장애는 쉽게 골절이 되는 몸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골절의 위험 속에서 지난한 치료와 투병을 경험했다. 그는 <희망 대신 욕망 :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푸른숲,2019)이란 책에서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고 선언한다. 김원영 작가는 젊은 시절 스무살 여대생 H와 나눴던 로맨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H가 점차 좋아졌다. 그러나 다가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이 핵심적인 사춘기와 달리, 20대의 연애란 철저히 각자의 신체적, 경제적 매력을 교환하는 시장 거래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장에서 장애인이란, 특히 손상된 몸이란 아무런 교환가치도 갖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손가락 하나가 없거나 반대로 하나가 더 있다면, 아무리 좋은 직업과 훤칠한 외모를 가졌더라도 듀오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한 후 내가 겪은 일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무성無性의 존재로 세상에 인지되고 있는 듯했다. (<희망 대신 욕망> 238~239)

장애는 여성, 남성과 구별되는 제3의 성이다. 많은 장애 여성들이 자신의 개인사를 서술할 때 첫 생리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들에 따르면 첫 생리를 한 날 가족과 주변의 반응은 몸도 성치 않은 게 생리까지 시작했으니 이제 끝장이다”, “주제에 여자라고”, “왜 이렇게 빨리 시작하는 거야등이었다고 한다. 딸아이의 첫 생리일에 꽃과 선물을 사준다는 세련된부모가 늘어나는 시대에도 장애인의 성적인 성숙은 아파트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성대처럼 불필요하고 귀찮은 것으로 인식된다. (<희망 대신 욕망> 239)

그녀가 내 방에 왔다. 늦게까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별 생각 없이(과연?)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날 평소와 다름없던 내 방이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그녀의 고상한 지적 파트너였다. ‘그렇고 그런남자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무성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의 전략이었다.“ (<희망 대신 욕망> 242)

내 다리를 좀 봐줄래?”

내가 물었을 때 H는 아무 말 없이 내 다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다리가 가진 오랜 투병의 기록, 고통의 경험, 질병의 흔적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면 내 다리는 결코 에로틱할 수 없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생이나 동정은 가능할지라도.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게애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로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인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 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체,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잇는 어떤 감정의 선들이 자연적 질서를 예리하게 걷어냈다. 상상과 몰입. 2평방미터쯤 되는 목성의 위성을 타고 지구에서 진화한 온갖 질서가 “ㅂㅕㅇㅅㅣㄴ 육갑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떠올릴 한 치의 여지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다리에 키스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혹 우리의 운명이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하늘의 불운으로 규정되더라도 그 기준에 이르기 위한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시도는 명백히 존재하며, 더 나아가 그 기준 자체를 뒤흔드는 우리의 도전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내가 겪은 우연들은 그 시도를 증명하는 사례다. (<희망 대신 욕망> 262~263)

 그의 글을 다시 곱씹어 읽으며 김원영과 클리퍼드가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둘 다 휠체어를 탄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그들이 가진 감성이다. 그 감성 때문에 김원영은 클리퍼드와 대척점에 있는 현대의 인물로 보였다. 클리퍼드는 볼턴 부인과 관계에서 유아적이고 도착적인 성욕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적 욕망을 불편해 하고 자신이 그것을 초월한 것처럼 점잖은 체한다. 반대로 김원영은 욕망에 솔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용기 있게 시도한다.

나는 코니와 멜러스, 김원영의 용기 있는 시도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쓴 이번 발제문의 제목은 관능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였다. 그 제목을 내 삶의 버전으로 바꾸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도 관능으로 내 삶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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