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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비극의 탄생 22장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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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학 작성일16-06-03 16:25 조회2,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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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의 효과와 미학적 청중의 재탄생
 
 비극작가는 아폴론적인 에너지로 등장인물을 창조하지만,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으로 비극을 완성시킨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의 언어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아폴론이 디오니소스의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라는 것이다. 21장에서 니체는 비극은 비극적 신화와 비극적 주인공, 음악을 재료로 한, 기가 막힌 포도주와 같은 훌륭한 혼합물이라고 비유하였다.
 
 조각품을 관조하고, 서사시를 읽는다고 해서 감정이 고양되거나 환희를 느낄 수는 없다. 무대 위에 조각이 설치되고, 서사시가 음악을 만나, 비극으로 변용이 될 때, 진정한 감동을 느낀다. 주인공이 스스로 자멸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그 고통에 감정이입이 되어 전율하면서도, 그 고통에서 더 높고 훨씬 더 강한 쾌감을 느낀다. 인생의 허무와 삶에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이런 그리스 비극을 감상하는 관객은, 신화를 보면서 자신이 마치 신이 된 듯한 全知적인 상태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음악을 통해서는 감각적이고 명료하게 마음의 무의식적 움직임의 밑바닥까지 체험하고, 극 전체의 내용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천성적으로 고귀하고 섬세한 능력을 갖춘 자들이라고 하였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도 하였다.
 
 다만 이들은 교육과 저널리즘에 의해서 예술작품을 틀에 박힌 방식으로 감상하도록 훈련되어버렸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극장을 도덕적인 국민교양의 도량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술은 저급한 종류의 오락물로 변질되고, 허영에 찬 이기적이고 빈약하고 비독창적인 사교계의 접착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처럼 예술에 관한 담론이 성행한 시대도 없었지만 동시에 무시된 적도 없음을 니체는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면서 틀에 박힌 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예기치 않았던 어떤 효과를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미학적 청중의 재탄생을 암시하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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