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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 시즌4]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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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씨 작성일15-12-25 21:34 조회2,82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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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의 출발점이었던 스피노자를 마무리하고 아나키즘에서 잠깐 머물렀다.
이제 곧 새로운 마음으로 채비를 하고 니체로 떠나야 하는데, 쉽게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다. 그간 읽었던 스피노자의 책들과 중간 중간 훑어본 참고 서적들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대학 동아리 언니를 찾아갔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공황장애를 앓게 된 언니다. 언니는 그동안 이 증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생겨나는 불안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최대한 몸을 편안하게 만든다던가, 공부는 하고 싶은데 서울까지 가기가 너무 두려워 동네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해본다던가, 하는. 하지만 우리의 약속날에 언니는 매순간 이 불안과 공포과 대결해야 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아주 약해진 모습으로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예전에 언니를 좋아했던 오빠 얘기를 하면, 오히려 언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우리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때 걔랑 잘 됐으면 내가 이런 병에 안 걸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 순간 언니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다.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며 타박하지도 못했고, 공감하며 감싸 안아주지도 못했고, 감히 농담하지도 못했다. 그런 생각은 해봤자 소용없으니 병과 함께 살아가는 게 언니 인생의 몫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너무 지당한 말씀이지만 언니 속도 모르고 까부는 말 같아서 그만두었다.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간 해왔던 내 공부가 언니 앞에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한 거지? 아아...나의 스피노자 니체 푸코 동의보감 크로포트킨 양자역학 굴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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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피노자는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나는 스피노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떠나는 것이 자유라고 믿었던 철부지 나에게 그딴 자유란 것이 없다는 걸 단박에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쓸데없이 미확인된 저 너머의 자유를 갈구하지 않는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고립이며, 의심할 바 없는 미신과 환영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한 관계의 장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세계는 주로 우리를 수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가장 고귀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스피노자다. 내가 보기에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이성은 감정과 나란히 놓인 여러 정신의 능력 중 하나인 의미가 아니다. 자기라는 배의 조타석에 자신이 앉을 수 있는가. 그 운전대를 누가 잡고 있는가. 이것이 스피노자의 이성이자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자연권 혹은 자기 삶의 주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은 늘 고민한다.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 어디로 몰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고민만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든다.

몇 백년 전 스피노자의 말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한계였던 어떤 순간을 견딜 용기를 주었다. 그가 남긴 말이 누군가가 죽음이라고 믿었던 지대를 삶으로 바꿔놓았다. 이제 고민은 이거다. 공부가 어떻게 책과 책상의 범위를 넘을 것인가? 홈페이지와 세미나를 넘을 것인가? 이 힘을 어디서 어떻게 기를 것인가? 


스누피들은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짧게 아나키즘을 연구했다. 우리의 물음은 스피노자의 정치학에 관련한 것이었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보장해주는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국가가 불필요하다고 보았던 사람들 즉 아나키스트의 의견도 동시에 궁금해졌다. 그들은 왜 이런 보호막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일까? 스피노자와 아나키즘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세미나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피노자와 아나키즘의 차이점을 발견해내던 처음과 달리 우리는 그들이 같은 곳에 서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겉으론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질문은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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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대중들은 왜 스스로 노예상태를 지속시키려고 하는 걸까" 묻는다.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이라는 책에 나온 아나키스트들은 스피노자식의 이성을 빼앗는 국가에 저항한다. "자신이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귀속되는 것, 다시 말해 날마다 더욱 강력해지는 자신의 욕망을 아나키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205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왜 나를 자꾸 충동구매하게 만들고 쇼핑만 생각하게 하는지 격분한다. 왜 내 인생을 소외시키게 만드냐고 부르짖는다! "삶은 너무나 따분하다. 우리가 받은 임금을 몽땅 최신 스커트나 셔츠를 사는 데 소비하는 것을 빼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 형제자매여, 당신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 스누피들은 니체를 향해 간다. 니체의 저작을 저작시기에 맞춰서 오랫동안 읽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 사이 마르크스로 잠깐 삐져나올 수도 있다.^^ 왔다갔다하면서 가겠다. 그게 스누피(snoopy)라는 이름 즉 이리저리 기웃거린다는 의미와 딱 맞으니까 말이다. 대신 말이 현실과 만나는 훈련은 계속 할 것!  

댓글목록

정혜주님의 댓글

정혜주 작성일

송샘! 오랜만에 감이당 사이트에 접속하여 세미나 후기를 읽었습니다.
그렇군요. 아나키즘과 스피노자의 주장이 같은 질문에 기반을 하고 있군요.
능동적인 연대가 아닌 노예적 욕망의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말이 감동으로 밀려오는군요.
참으로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참 나로 살기위해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어느새 미궁속으로 빠져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미궁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우리는 계속 공부를 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의 니체도 궁금해집니다.

애독자님의 댓글

애독자 작성일

관계를 떠난 삶. 그런 건 세상에 없으며 자유는 더더군다나 아니라는 것. “그건 자유가 아니라 고립이며, 의심할 바 없는 미신과 환영”이라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이 절박한 현실로 부딪친 순간의 체험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네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한계였던 어떤 순간을’ 관통하면서 수동적인 관계를 능동적으로 전화시키는 공부의 힘을 어떻게 체험하셨는지. 겉으로 상이해 보이는 아나키즘과 스피노자의 주장이 같은 질문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새롭네요. 아나키즘 하면 국가 라는 제도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능동적 이성의 연대가 아닌 노예적 욕망의 획일화에 반대한 것이었군요. 쳇 치마 사는 게 뭐 어때서... 어쨌거나 스누피들 다음 행보-니체와의 새로운 만남이 기다려집니다. 홧팅!

송씨님의 댓글

송씨 댓글의 댓글 작성일

꼼꼼하게 읽고 깊이 있는 답글 주셔서 감사하여요.^^ 자유를 찾아 뛰쳐나갔던게 실은 내게 관계하는 역량이 부족했기때문이라는 거.  그래서 도망치고 상대를 비난했던 것 같아요. 관계 안에서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걸 이뤄내는 것. 이게 자유를 확보하는 현실적 방법임을 스피노자는 알려주었어요.  니체는 또 어떻게 우리들을 쓰러뜨릴지 기대하면서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