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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5> 비극의 탄생 서문 7장 발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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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학 작성일16-02-25 14:08 조회2,2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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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칠 선생님과 함께 5,6,7장 발제를 나눴고 저는 7장을 맡았습니다.
 
니체 문장의 구조, 각 장의 서술구조를 파악하고, 단어의 의미를 본문에서 찾아 논리를 펼쳐나가는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책을 볼 때 한 번 쓱 훑어보고, 그래서 결론은 이것이다라고 도출하는 식의 독법에 젖어있어서, 습관대로 읽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발제를 준비한답시고 나름 꼼꼼히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을 발제하면서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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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남자, 초상화, 1882, 철학자, 흑백의
 
7장은 니체가 자신의 책을 나이들어서 다시 읽어보고, 오류를 점검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주된 오류는
 
자신의 책이 (디오니소스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예술가-형이상학은 현재, 현실, 근대적 이념들을 증오하는 것이 아닌가? 
1850년대의 가면을 쓴 1830년대의 낭만주의의 고백이 아닌가?
이 책은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독일음악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현실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를 배우기 위하여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인 비극을 사용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필연적이 아니고 필연적이어서도 안된다. 그런 식으로 가면 기독교적으로 끝나버린다.약한 염세주의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독교적인 위로가 彼岸에 있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웃음을 배우면 얻을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위로가 此岸에 있다.
 
학문적인 질문을 학문적인 것으로 답을 찾았던 소크라테스의 한계를 니체는 예술적인 관점을 가지고 찾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이를 예술가-형이상학이라 지칭한 것 같습니다. 이 시도에서 나온 글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예술적인 글이 됩니다.
 
학문은 하나의 진리를 증명해내고 모든 것이 하나의 이념으로 수렴되는 도덕을 완성합니다. 개별성은 사라지고 이상적인 것을 향하여 통일되려고 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려주는 대로 생각하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신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기독교적인 삶인 것입니다. <비극의 탄생>의 새로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 한계를 보충해주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음을 말하면서 서문이 마무리 됩니다.
 
그리스적인 건강한 삶, 명랑한 삶을 원한다면, 형이상학적 위로 나부랭이들은 악마에게 던져주고, 웃는 법을 배워 스스로 왕관을 쓰라고 말합니다. 뭔가 부족한 객체가 완성체에 다가가려는 도덕의 틀을 깨뜨리고, 이미 존재 자체로 완전한 객체들이 각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꺼이 감수하며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며 즐기자는 가르침, 이 가르침이 차라투스트라의 웃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상식대로 생각하고 의심없이(기독교적으로) 하는 행동이 얼마나 많은지, 삶이 주는 엄숙함과 공포를 견디도록 자신을 교육하는 문화적인 인간이 되려는 공부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오류를 실수로 규정지어버리지않고, 새로운 담론의 재료로 승화시키는 니체의 예술적 학문 태도는 배울만한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극, 음악, 그리스적인 것, 염세주의, 예술적, 형이상학적, 디오니소스적, 기독교적과 같은 단어들을 니체는 어떤 뜻으로 썼는가, 책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앞으로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본문 중 굵은 글씨의 강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앞으로도 꼼꼼히 본문을 읽어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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