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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지식의 고고학>3장. 언표와 문서고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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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희 작성일13-07-26 00:37 조회4,75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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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설에 대한 느낌
2장 <언설적 규칙성>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마칩니다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사유에로, 수다에서 침묵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공간적인 분산에서 순간의 순수한 집적으로, 피상적인 복수성으로부터 심오한 통일성으로 나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설의 차원에 머문다"(p116)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과연 언설은 무엇인가. 텍스트이고 수다이고 바깥이고 공간적인 분산이고 피상적인 복수성인 언설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언설은 지식세계의 <실상>을 가리키는 말로 다가옵니다. 현대 지식인은 '개념의 감옥'에 산다고도 합니다. 개념에 끼워맞추다가 현실이 증발해버리게 하는 감옥. 실상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만들어진 도구들인 개념들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개념속으로 실상이 재단되고 왜곡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되돌아봐야 할 것은 <실상>이라는 것이고, 직지인심(direct pointing to mind)이란 말이 그런 의미일거에요. 푸코가 말하는 언설은 <지식세계의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여겨져요. 현실세계의 실상을 끝임없이 강조하는 불교처럼, 지식세계의 실상을 붙들려는 푸코. 우리는 푸코를 통해 지식세계의 실상에 접근해 볼려하고 있지 않나요

언설은 지식세계의 실상이다. 지식세계를 재단하는 각종 학문체계,분류법 등을 걷어내고 지식세계의 실상에 바라봐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을 보지말고, 달을 봐라. 언설이란 지식세계를 대상으로 직지인심을 하라고. 그래서 푸코의 '광기'란 말처럼, 루신의 '식인'이라는 말처럼, 지식세계의 실상을 선험적인 개념의 채널없이 단박에 다가가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느낌.

# 언표에 대한 느낌
드디어 3장 <언표와 문서고>
"일견에서 볼 때 언표란 최종적인, 분해불가능한, 그 자체로서 고립될 수 있는 그리고 그와 유사한 다른 요소들과 관계 맺어질 수 있는 하나의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표면을 가지지 않는, 그러나 아마도 분할의 평면 위에서 그리고 분류의 특이한 형태들에 있어 지표화될 수 있을 點. 바로 그것 자체가 구성하고 있는 바의 직물의 표면 위에서 드러나는 알맹이. 言說의 原子"(p119)
라고 시작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언설과 언표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봤읍니다.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직조된 그물망이 언설, 그물망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그물코가 언표. 그래서 하나의 언표는 전체 언설을 구성하는 원자로 설정했습니다. 거칠게 말이죠.

그런데
"언표란 완전히 언어학적이지도 그렇다고 배타적으로 물질적이지도 않은"(p128)
"언표란... 어떤 종류의 행위가그들의(말해진 또는 씌어진) 언어표현에 의해 실행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의 기능인 것이다. 그러므로 언표에 있어서의 통일성에 대한 구조적인 규준들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즉, 언표란 그 자체로서는 결코 단위가 아니며, 구조들의 그리고 가능한 단위들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그들을 그 구체적 내용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 속에 나타나게 하는 하나의 機能인 것이다"(p129)
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야기나누면서, 언표는 '직물이 직조되는 그 순간성'을 담는다는 생성의 이미지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언표에 대한 느낌은요.
언표는 하나의 단위,구조로 고정화될 수 없다. 우주가 매순간 변화하듯이, 물방울 파동이 퍼져가듯이, 변화의 순간속에 직조된 언어물질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바둑판의 점들이 아니라, 우주공간속에 펼쳐진 무수히 다양한 휘어진 시공간좌표계라는 느낌. 수학으로 따지면 양적 길이단위인 scala가 아니라, 방향성을 지닌 길이단위인 v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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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언설과 언표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사실 나의 언어로 언설과 언표를 풍부히 설명하기 불가능하지만)은, 어떤 글이나 논문을 쓸때 실상의 관계성과 현장성을 담아내도록 이끌듯 합니다. 공허한 사유가 아니라, 풍성한 수다를 담아내는 글쓰기로요.

혜경이는 요즘 '우정'이라는 화두를 들었어요. 푸코에게 세상이 광기를 통해 들어왔다면, 혜경에겐 세상이 '우정'을 통해 들여다봐지고 우정생활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여민샘은 나무를 잘 볼줄 아는 문장해석능력의 달인이고, 시연샘은 숲을 보는 눈을 가진 언어영역의 달인이에요. 전체문맥의 흐름과 배치를 따지며 혼돈속에 길을 내어주어요. 계속 나무와 숲의 언어영역 재능 기대해요.
약샘은? 인사발령중.

다음은 나머지 154쪽까지입니다.
댓글목록

약선생님의 댓글

약선생 작성일

우왕~ 며칠 못들어와 봤는데, 이런 엄청난 후기라니....정말 멋지십니다요! 저번 시간에 회사일로 참석못한걸 천추의 한으로 남게 하는 후기네요~ 그 소름끼치는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하다니요.....다음 시간에도 깨달음의 바다로 다시 가보아요~~~

송씨님의 댓글

송씨 작성일

우리의 그 소름끼치면서 흥분되었던 순간은 여민샘이 덧붙여 잘 써주셨네요 ㅋㅋ. 종희샘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후기, 아주 달콤히 읽었습니다. 푸코에게 사유하는 방법과 글쓰기 방법, 책 읽는 방법까지 혹독하게(?) 그리고 빛나게(!)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여정을 같이 하는 세미나 회원님들 감사^^ 스페셜 땡스는 약샘!^^

오우님의 댓글

오우 작성일

푸코는 언표가 언설의 원자라며 '입자'인 것처럼 명제를 정해 놓고 , 그 명제를 계속 부정하고 결국 언표는 단위가 아니며. 그 내용을 시공간에 나타나게 하는 기능인 '파동'으로 설명을 끝마쳤습니다. 저희가 이 사실을 발견 했을 떄 다들 환호성을 올렸지요. 푸코의  사유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안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아났습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혼자 읽을 때 몰랐던 사실을 같이 이야기 하다가 동시에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억지로? '공진화'라고도 갖다 부쳤습니다.  그리고 부득이 참석 못하신 '약샘'도 함께 인양 계속 저희는 샘의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너무 기뻐서~~점점 푸코가 재미있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