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세미나] 대칭성 인류학 후기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마음세미나] 대칭성 인류학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달군 작성일10-03-18 01:47 조회5,769회 댓글2건

본문



첫 세미나가 끝난지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연구실에서는 보통 이틀이 지난 후기는 시효가 끝난 것으로 간주하는지라 부도 난 수표를 돌려막는 심정으로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붙들고 있는 시간에 비례해 글이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군요.ㅡㅡ;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대칭성 인류학]은 어렵고도 쉬운 책이었습니다. 프로이트와 모스, 클라스트르, 바타이유, 들뢰즈, 선불교, 인디언 신화 등... 하나만 잡고 공부해도 반평생은 걸릴텐데, 저자는 그 모든 걸 한 칼에 꿰고 있었지요. 저자에게 친절함을 기대하는 건 그런점에서 무리였을까요? 저자는 빠르고 성긴 걸음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텍스트의 곳곳에 존재하는 생략은 참으로 우리를 힘겹게 했지요. 토론시간 내내 우리는 '여기서 그런 질문이 왜 필요하지?'라는 곰숙샘의 지적에 진땀을 뺐습니다. 저자가 '이 정도는 말 안해줘도 알겠지..'라고 전제하고 넘어간 부분을 파고 드느라 그가 정작 하고자 했던 얘기는 그닥 나누지 못한게죠. 이런 텍스트일수록 크고 빠른 호흡으로 읽어나갔으면 오히려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돌이켜보니 이 책은 참 쉽습니다. 현기증 나는 사상가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지만 결국 저자는 대칭성-비대칭성이라는 심플한 개념 하나로 인류 등장 이래의 모든 역사를 설명하고 있잖아요. 다시 책을 읽으면서 보니,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해도 되는건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서 저는 "비밀지와 자연지"라는 개념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마음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대칭성 무의식을 다루는데 있어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남성들은 배타적이고 비밀스러운 의례를 통해 대칭성무의식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혹독한 통과의례를 감내해야 했죠. 여기에 여성은 철저하게 배제 됩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지혜의 영역에 소외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여성들은 굳이 그런 뻘짓... 자기 학대... 안 하고도 이미 자기 마음을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거죠. 여성은 일상을 분리 배제 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계없이 자연을 만나고 매순간 맞부딛히기 때문에 공연히 제의 같은 거 열 필요가 없습니다. 음식을 손질하고 옷감을 짜고 하는 모든 일상이 이니시에이션의 연속입니다.


 


여기서 생물학적 성도, 사회적 성도 아닌, 신화적 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서 남성-여성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뿐 아니라 많은 다른 존재들을 함께 살려야 합니다. 자기를 내려놓지 않고는 그런게 불가능하겠죠. “그냥 자연스럽게” 대칭적 무의식의 세계 안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합니다. 신화적 여성은 남성들의 비밀지처럼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절차나 무모한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죠.


 


근데 여기 난점이 있습니다. 늘,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다가가기가 오히려 어렵다는 거. 이 한 번 악물면 만사가 해결되는 남성들의 세계와 달리 여성들의 세계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하잖아요. 농사일만 해도 여자들의 일은 노상~~해야 합니다. 선가에서 간혹 이렇게 묻는다고 하죠. 깨닫고 난 후에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밭 메기 할 때 이런 질문 했다간 혼지검이 납니다. 아무리 밭 메기를 잘 해도 때가 되면 다시 잡초가 자라죠. 그럼 또 가서 밭을 멥니다. 끝없이 몸을 놀리는 것 말고 왕도가 없는 게 농사일이죠. 이런게 신화적 여성의 세계가 아닐까요.


 


우~하고 몰려가서 악~하고 힘 한번 쓰고 나머지 시간에 탱자탱자 놀아보자 하는 인간의 잔꾀에서 신화적 남성의 세계가 생겨났을 것 같습니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려다 지혜에서도 배제되어버린 존재들. 뻘짓을 하지 않고는 도무지 지혜를 알 수 없는 가엾은 존재들이 출몰했다는.^^ 온갖 소외에 허덕이고 있는 요즘 현대인들이 딱 이 모양이죠. 문명의 이기에 기대 일상을 날로 먹으려다 영적인 남근중심주의(?)에 사로잡히고 만.


 


불교를 입이 마르도록 치켜세우는 저자의 주장은, 제 생각에 이런 맥락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는 신화적 여성성을 간직한 종교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칭성 무의식을 파악하려 하죠. 대승불교의 이상이라는 보살이 그 예일 겁니다. 보시라는 행위에는 대칭성의 논리가 극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떠한 상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순수 증여를 행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상적 실천과 분리될 수 없기도 합니다. 폐쇄된 장막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시할 수 있겠습니까. 보시는 오히려 길거리에서, 구체적이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가능합니다. 


 


불교의 역사는 보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불교, 특히 중국의 대승불교는 강력한 국가주의 이후에 태동했습니다. 즉, 불교는 인간이 애초에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원시의 신화적 세계와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거죠. 원시 신화는 그렇게 처연한 자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일의 패권"에게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갔습니다. 불교는 "일의 패권"을 부정하고 대칭성을 회복하려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아바타를 보고 사람들이 그토록 우울해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화는 아름답지만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신화를 보고 지금 당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죠. 허나 불교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쉽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자리에서 시작해 거슬러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던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 다음시간에는...


 


º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1~2부를 읽습니다.(~281쪽) 


º 조별 토론을 잘 해서 전체 토론 시간에 "의미있는" 질문을니다.


º 발제자는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시고 세미나가 끝나면 청소를 합니다.


º 발제자는 세미나가 끝나면(저처럼 밀리지 마시고^^;) 이틀안에 후기를 씁니다. 


 


 

댓글목록

최수경님의 댓글

최수경 작성일

이제라도 후기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도 요즘 불교에 푹 빠져있는지라...(종교로서가 아니라 학문으로서라고 생각하지만...종교면 또 어떻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현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불교라는 종교는 좀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참 흥미롭게 책을 읽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꼭 읽어보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학창시절 수학을 워낙 좋아했어서 수학적으로 풀어놓은 부분이 이해도 제일 잘 되고 재미있더라구요. 이런 어려운 책들이 모두 그렇게 쉽게 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어들이나 사람 이름은 프로이트만 알겠구요.

곰숙님의 댓글

곰숙 작성일

오호, 재밌는걸. 비밀지와 자연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리라이팅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