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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세미나>"마음이 뇌에게 묻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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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0-04-04 20:21 조회5,18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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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는 아니고 곰샘의 말씀을 메모한 걸 정리하다보니 넘 많아서 그 내용으로 후기를 대신하겠습니다.


잘 못 이해하거나 메모한 부분은 바로 지적질해 주세염~^^;




지금 나와는 다른 내가 "마음"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발심으로 뇌의 가소성을 최대한 누리는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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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신경과학자는 뇌에 있다고 말한다. 뇌에 물질이 정신적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마음이 뇌를 바꿀 수 있다고 불교에서 말하는데 삶에서 증명되지 않는다면 경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불교만의 유연성이다. 어떤 종교도 이런 배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교리를 부여잡거나 과학을 부정하려고 할뿐이다. 신경과학자들과 맞짱을 뜨자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에...


일단 과학자들의 질문에서 그들의 실험결과와 상관없이 결과는 결정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실험하기 때문에...뇌가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룹과 변한다고 생각하는 그룹의 마음씀이 이미 다르다. 착안한 결과가 그 속에 있다. 과학도 중립적이지 않다. 과학자의 마음이 중립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과 뇌는 어떤 관계인가? 질문으로 삼아야 한다. 지구에서의 인간의 괘적은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 미시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서 이것이 마음인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현대 학문에서 뇌과학이 대중화가 많이 되고 있다.


 해군함정의 침몰, 11세기 전설의 고향이다. 해결하는 방식이 이렇게 원시적일 수 있을까? 초현대적인 사고, 뒤에서 처리되는 일은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헐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헬기가 뜨고 레이다로 포착하여 바로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너무나 원시적이다. 조류 때문에 15분밖에 못간다. 발견도 어선이 했다. 해군은 새떼도 포착이 않된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공상과학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적을 무찌르는데(남을 파괴하는 능력)는 도가 텄는데 자기구원에는 석기시대인 것 같다. 결국 우울증 하나도 자기 힘으로 이겨내지 못한다. 과학은 인간의 존재를 너무 잘 보여준다. 최진영의 자살도 그 많은 성공이 자기 자신 하나도 구해주지 못했다. 그 것을 이길 수 있는 의지가 마음이다. 이것이 없는 것이다. 이 것은 우리 몸과 연동되어 있다. 마음의 자리를 포착할 수 없다. 증명할 수 있는 건 뇌 안의 화학적 변화이다. 뇌는 몸과 연동되어 있다. 운동은 사지와 하체가 한다. 뇌는 운동을 위해 존재한다. 뇌과학이 식물->동물->포유동물로 진화해서 척추에서 뇌수가 남아서 뇌가 형성되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뇌가 있다가 없애버리는 동물도 있다. 현대과학은 뇌에 있다고 생각한다. 뇌는 다른 장기와 연결되어야 작동한다. 최진영도 청력이 안 좋았다고 한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청력은 신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소화할 수 밖에 없는 현대과학의 화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 언어가 아니면 그 장에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 슬픔, 기쁨, 자각, 의식, 사상 이 모든 것이 마음인가? 유식불교에는 이 영역들을 아주 세분화시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중생의 언어로 자비심, 평화로 말씀하신다.


 결국 내가 내 몸을 움직이겠다는 것이 마음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삶 자체가 고귀해 지는 것이다. 과학이 뭐라고 하든 그 것에 의해 움직인다면 과학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과학적 증명을 위해 쥐, 원숭이, 인간 등등의 희생이 있었다. 이 토대위에서 과학적 증명이 있었음을 잊으면 않된다. 뇌 과학으로 보는 것 또한 도그마이다. 얼마 전 TV에서 쇼핑중독증인 사람의 뇌를 분석한 적이 있었다. 뇌 안의 비밀이 있는 것처럼 쇼핑중독증을 말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치료하고 배려해도 마음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 것을 관찰할 때 “마음 챙김 수련”이 되는 것이다. 호흡 집중하여 완급을 조절하면서 나를 보는 또 하나의 나, 즉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마음”이다. 관찰하면 고통이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상함을 보게 된다. 수억조의 세포가 있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나를 보는 힘은 무한히 크다. 이 것이 뇌의 가소성이다.


 물질은 한계가 있고 몸을 떠날 수는 없다. 현대인은 우울증이 왔는데도 회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발심이고 그 것을 통해 습(習)이 바뀐다. 이 것을 잘하기 위해서 위빠사나 수행같은 것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자비심이 생긴다. 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자비심이 생긴다. 구해야 하는데 자신이 먼저 쓰러지는 건 집착성이다. 삶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니 수행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사람들 안에서 화가 나는 나를 관찰 할 수 있다면 나를 바꿔 낼 수 있다.


 기쁨정서는 발산의 기운이고 슬픔의 정서는 수렴의 기운이다. 원수를 갚기 위해 떠도는 사람은 봤어도 은혜를 갚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봤는가? 유목민이 농경민에게 왜 당했는가? 농경민은 잊지 않고 저장한다. 유목민은 은혜고 원수고 담아둘 수 가 없다. 현대인은 아파트에 갇혀 고여 있기 때문에 우울증에 노출된다. 뇌 회로도 고착된다.


 마음 챙김 수련은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수련 하는 사람을 성자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산층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보편적 세속윤리에 있어서 이것은 중요하다. 모든 중생의 삶이 해석되어야 불교다. 내 삶에서 마음자리를 내서 어떻게 나를 구원해 나갈 것인가? 이 것이 자유의 공간이다.




다음주는 종합 글쓰기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세권에서 하나의 카워드로 마음에 대해 정리하고 새로운 지혜로 글쓰기를 하시라네요...^^

댓글목록

달군님의 댓글

달군 작성일

우와~~~&nbsp; 속기사 하셔도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