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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범수채택열전(9월 16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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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랑 작성일15-09-23 13:12 조회3,4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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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변사 범수와 채택의 격()한 인생사

-범수채택열전-

 


이번 강의 내용은 범수 개인의 인생과 그에 따라 주변 정치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가, 또 채택이 어떻게 진나라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가에 대한 얘기다. 지난 시간 정안평과 왕계의 도움으로 위나라에서 도망친 범수는 이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진 소왕은 범수를 응읍의 땅에 봉하고 응후(應侯)라 부르는데, 이때가 재위 41년째 되던 해였다. 그렇지만 위나라에서는 이 사실을 몰랐고, 범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범수는 자신을 모함한 수고(須賈)를 응징하는데!



-원한은 반드시 갚는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은 위나라는 곧 수고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한다. 이에 범수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빈관(貧館)으로 찾아가 수고를 만난다. 놀라는 수고를 안심시키고, 자신은 이곳 진나라에서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노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범수. 과거 자기가 한 짓이 있어서인지, 수고는 남루한 차림의 범수를 불쌍히 여겨 술과 밥을 대접한다. 또한 두터운 명주 솜옷 한 벌을 내주는데, 여기서 제포연연(綈袍戀戀)’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한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친구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준다는 뜻으로, 깊은 우정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완전히 긴장을 풀게 된 수고는 계속해서 범수에게, “진나라의 재상 장선생을 아는가?”라고 묻는다. 듣기로 그는 진 소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천하의 모든 일이 그의 의견으로 결정된다는데, 지금 자신도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범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주인이 그를 잘 알고 있노라 대답한다.


그날 밤, 몸소 수고를 데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들어간 범수. 재상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피해 숨어버렸지만 수고는 이를 이상히 여기지 않았고, 범수는 재상에게 알리겠다며 홀연히 사라진다. 한참을 기다려도 범수가 나오지 않자 수고는 문지기에게 어찌된 일인지를 묻는다. 그제야 모든 상황파악을 하게 된 수고. 이때 범수는 화려한 장막 속에 앉아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다시 나타난다. 수고는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죄가 머리카락을 뽑아 세어도 모자랄 만큼많음을 사죄한다. 이에 범수는 수고의 죄목 세 가지를 조목조목 말해준다. 위제(魏齊) 앞에서 자기를 나라를 팔아넘기려 한 간신배로 모함한 것이 첫 번째 죄목이고, 그때 위제가 자기를 능욕하고 변소 안에 버렸는데 이를 저지하지 않았음이 두 번째 죄목이고, 또 빈객들이 술에 취해 번갈아가며 자신의 몸에 방뇨하였는데 이를 모른 척한 것이 세 번째 죄목이었다.


그러나 오늘 너를 죽이지 않는 까닭은 한 벌의 두터운 명주 솜옷을 나에게 주며 옛정을 못 잊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석방한다. (사기열전 까치, p.284))


그러나 목숨은 살려주어도 곱게 돌려보내진 않는다. 수고가 위나라로 돌아갈 때 크게 잔치를 벌인 범수는 각국의 사신들 앞에서 수고를 망신 준다. 두 명의 죄인들로 하여금 그를 가운데에다 붙잡아두고 여물을 먹이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위나라 왕에게 전하여라. 즉시 위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범수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다. 일국의 국무총리격인 재상이 다른 나라 왕에게 그런 협박을 하다니. 당시 진나라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다. 수고가 돌아가서 이를 보고하니, 위제(위나라의 재상이자 왕의 동생)는 조나라로 도망가서 평원군(平原君)의 집에 숨는다. 이제 범수의 복수극은 국제적 사건이 된 것이다. 위나라로써는 망신망신, 이런 망신이 없다. 평원군이 위제를 내놓지 않자, 진 소왕은 우정을 가장한 책략으로 교묘히 평원군을 진나라로 불러들이면서 사건을 거침없이 확장시킨다. 범수의 개인적인 원한관계를 빌미로, 약소국을 괴롭히고 권위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던 것이다. 우선생님께서는 진소왕을 진시황과 비교될 만한 인물이라고 하시며, 오히려 외교적 수완에서는 진소왕이 훨씬 더 뛰어났다고 평가하셨다.


아무튼 이제 불똥은 조나라로 튀었다. 위제의 목을 베어서 보내지 않으면 곧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침공할 것이며, 왕의 동생인 평원군을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한 것. 사태가 긴급해지자 위제는 또 도주하여, 이제 조나라의 재상 우경(虞卿)에게로 갔다. 이에 우경은 놀랍게도 재상의 자리를 버리고 위제와 함께 도망치는데, 가는 길에 생각해보니 더 이상은 숨을 곳조차 없었다. 최후의 방편으로 이 둘은 다시 위나라로 찾아가 당시 세력을 과시하던 신릉군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러나 진나라가 두려웠던 신릉군은 지원을 망설이게 되고, 이에 낙담한 위제는 자결을 택한다. 조나라 왕이 이미 죽은 위제의 목을 잘라 진나라에 보내자, 진 소왕은 비로소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보낸다.


그 후 범수는 옛날 자신의 진나라 망명을 도운 정안평과 왕계를 각각 군수와 장군으로 추천하는데, 관직에 올라서도 범수의 힘을 믿고 정사에 안일했던 정안평과 왕계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관례에 따라 추천한 자에게 돌아올 처벌로 인해 범수의 마음은 불편했고, 이때 연()나라의 유세가 채택(蔡澤)이 등장한다.



-밥솥을 잃고 재상이 되다

채택은 그때까지 크고 작은 나라의 국왕에게 유세하여 관직을 얻으려 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답답했던 그는 당거(唐擧)라는 유명한 관상가를 찾아갔는데, 그를 자세히 본 당거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선생의 코는 매부리코이고 어깨는 목보다는 높이 솟아오르고, 툭 불거진 이마에 얼굴은 복상투처럼 생겼으며 쭈글어든 콧대에 다리마저 활처럼 휘어 있습니다. 내가 듣기로 성인의 상은 보아도 모른다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소.” (사기열전 까치, p.289)


당거와 헤어진 채택은 조나라로 갔으나 쫓겨났고, 한나라와 위나라로 갔으나 도중에 강도를 만나 밥솥마저 빼앗기는 처지가 되었다. 마침 그때 정안평과 왕계의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범수의 소문을 듣게 된 그가 묘안이 떠올랐던지, 서쪽의 진나라로 향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연나라 유객 채택은 천하의 뛰어난 변론가로 그가 진나라 왕을 만나기만 하면 왕은 그를 좋아하여 반드시 범수를 곤란하게 할 것이고 필경은 그의 직위를 빼앗을 것이다라는 말을 퍼뜨렸다. 소위 찌라시 마케팅이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횡행했던 것. 소문을 들은 범수는 사람을 보내 채택을 불러오도록 하였고, 그 진위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처음 오만하던 범수의 태도는 채택의 청산유수가 펼쳐지는 동안 점점 공손하게 바뀌어간다. 채택의 논리인 즉, 범수의 식견이 뒤처졌다는 것이다. 군주의 파격적인 인정을 받고 성공을 이루었는데 물러날 때를 몰라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나열한다. 즉 몸과 명성을 다 이룬 것이 최상급이고, 두 번째가 명망을 얻고 몸이 죽어가는 것, 세 번째가 명망은 욕되고 몸만 보전하는 게 제일 아래라는 것이다. 그 구구절절한 말을 끝까지 들어본 범수는 결국 채택의 의견을 칭찬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범수는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진 소왕에게는 채택을 추천한다. 진소왕은 채택의 계획을 듣고 기뻐하여 그를 진나라 재상에 임명하였다.


범수(范脽)와 채택은 사람들이 말하는 일체변사(一切辯士), 즉 어떤 경우에든 자유자재로 변론을 펼 수 있는 유세가였다. 그런데도 각국을 유세하여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은 계략과 전술이 졸렬하였기 때문이 아니고, 유세한 나라들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에 와 머무르면서 연이어 재상의 높은 벼슬로 공명을 천하에 떨치게 된 것은, 그들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능력이 그들보다 약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선비는 우연히 때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두 사람 못지않은 어진 사람들도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도 곤궁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던들 어떻게 분발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었겠는가? (사기열전 까치, p.299)


사마천은 두 평민 출신 권력가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를 이러한 해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억울하게 중형을 당해야 했던 사마천의 개인적 경험이 역사적 평가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우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같은 역사적 사실로도 충분히 다르게 쓸 수 있지만, 그는 각 개인의 내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았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종횡무진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서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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