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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읽기 세미나 <범수채택열전> 9월 9일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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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태연 작성일15-09-24 16:09 조회2,7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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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채택열전

    


 

범수는 위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는 유세가의 시대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범수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위나라의 중대부 수고를 섬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고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범수도 따라갔다. 몇 개월을 머물렀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 양왕은 범수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10근의 금과 술과 고기를 보냈다. 하지만 범수는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 일은 수고에 의해 위나라 재상인 위제가 알게 된다. 위제는 매우 화가 나 범수를 고문하여 갈비뼈와 이빨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범수가 죽은척 하자 대자리로 말아서 변소에 버려두었다. 이 정도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다.

범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지키고 있던 간수에게 자신을 살려주면 후한 사례를 하겠다고 한다. 간수가 곧 위제에게 시체를 버려야겠다고 하자 위제는 술김에 그러라고 했다. 위제가 범수가 죽은 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후에 위제는 범수를 찾게 했지만 찾지 못한다.

위제가 범수를 찾는다는 소식을 정안평이란 사람이 알게 된다. 정안평은 곧 범수를 데리고 도망하였다. 정안평은 귀곡선생의 손자라는 썰이 있다. 귀곡선생의 제자인 범수를 구했을 수도 있다. 범수는 장록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후에 진나라에서 왕계란 사람이 위나라에 사신으로 왔다. 정안평은 포졸로 위장하여 왕계의 시중을 든다. 왕계는 정안평에게 이 나라에 유세가가 있는지 묻는다. 정안평은 있다고 말하며 은밀히 범수를 소개한다. 왕계는 범수와 만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본다. 그리고 범수를 데리고 가기로 한다.

    


 

범수의 상소문

왕계는 범수와 함께 진나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진나라 권력자인 양후를 만난다. 양후는 진나라 소왕의 외삼촌이다. 그는 토착세력이었고 외부 인사를 싫어했다. 그래서 왕계가 외국에 나갔다가 왔으니 혹시 누군가 데리고 왔는지 알아본 것이다.

범수는 양후가 이렇게 수색할 줄 알고 수레에 숨었다. 그리고 양후가 수레를 의심하고 있지만 수색하는 걸 깜박한 걸 알았다. 그래서 양후가 돌아간 후 수레에 내려 따로 10리를 도망간다. 그러자 양후는 수레가 의심스러워 다시 돌아와 왕계의 수레를 수색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돌아갔다.

왕계는 소왕에게 범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왕은 범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범수는 소왕을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양후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제나라의 강읍과 수읍을 공격하여 자신의 봉지인 도읍을 확장하려고 하였다. 이때 범수는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강력한 퍼포먼스다. ,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범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따라서 전략이 필요하다. 범수는 진 소왕에게 상소문을 올린다.

 

저는 대부의 봉지를 부유하게 하는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아내고, 제후의 나라를 부강하게 할 줄 아는 인재는 천하에서 찾아낸다고 들었습니다. 천하에 영명한 군주가 있으면 다른 제후들이 마음대로 인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영명한 군주가 그와 같은 인재를 제후들로부터 빼앗아오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의사는 병자의 생과 사를 알아 낼 수 있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패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즉시 그것을 실행하고, 해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즉시 버리고, 의심이 가시면 조금씩만 그것을 실행해보는 것입니다. (사기열전 까치, p.273)

 

상소문의 일부다. 이글은 범수채택열전에 전문이 다 실렸다. 사마천은 왜 이렇게 전문을 다 실었을까? 당시 글은 지금처럼 노트북을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죽간에 쓰는 것이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썰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체가 좋아서다. 문체가 좋은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병렬식 구조다.

 

진 소왕은 이 글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왕계에게 사과하고 범수를 불러오게 한다.

 

    

 

밀당의 달인 범수

소왕은 이때 이미 36년간 왕을 하고 있었다. 진나라는 이미 부패할 데로 부패했고 또한 소왕에게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게 아니라 친척들이 권력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소왕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범수를 만난 것이다. 이때 왕은 후궁들이 거처하는 길을 통해 범수를 만난다. 이런 은밀한 길을 통해 만난 건 당시 권력은 외가 친척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 왕은 좌우의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여, 궁중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였다. 진나라 왕이 무릎을 꿇고 요청하기를 선생께서는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겠소?”라고 묻자, 범수가 , 라고만 말하였다. 세 번이나 이렇게 하였다. 진나라 왕이 또 무릎을 꿇고서 선생께서는 끝내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려 하오?”라고 말하자, 범수가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기열전 까치, p.274)

 

드디어 소왕과 범수가 만났다. 소왕은 범수에게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당시 진나라는 권력이 소왕의 외가친척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범수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특히 최고 권력자인 양후를 의식해야 했다. 그래서 범수는 내부의 문제보다 외부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 한다. 소왕은 무릎을 꿇고 범수에게 도움을 청한다. 소왕은 자기 정치를 해보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소왕은 당시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왕이었다. 그런 왕이 범수를 만나 무릎을 꿇은 것이다. 실제 그러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소왕은 절실했다. 그런데 범수는 네네 라고만 한다. 그러자 진왕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3번을 했다. 범수는 왜 그랬을까?

범수 또한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기기 위해선 소왕의 확실한 서포터가 필요하다. 범수는 외부에서 온 인물이다. 진나라에 아무런 기반이 없다. 따라서 범수는 소왕의 의지를 실험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소왕은 범수의 테스트에 합격한다. 그리고 이 둘은 군신관계를 맺는다. 이전까지 범수는 프리랜서였다. 자유롭게 여기저기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범수는 소왕과 함께 인생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범수는 진나라의 지형적 이로움을 말한다. 그리고 백성들의 속성이 어떻고 장점이 무엇인지 단점이 무엇인지 상세히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세가의 속성이다. 그리고 범수는 말한다. 지금 진나라는 합종으로 밖으로 못 나가니 멀리 있는 나라와 손잡고 가까이에 있는 나라를 치자고 말이다. 이건 양후의 정책과 다르다. 앞서 양후는 멀리 있는 나라를 공격해 자기 땅으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

범수의 정책을 펼치려면 양후와의 한판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결과는? 물론 범수의 승이다. 양후는 멀리 있는 자신의 봉읍지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얼마나 재물이 많았는지 1000여 수레가 넘었다. 그리고 양후가 가지고 있는 보물만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왕실보다 많았다.

이렇게 진나라의 권력을 얻은 범수 소왕과 손을 잡은 후 5년이 걸렸다. 5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을까? 아니면 양후는 너무나 쉽게 졌을까? 아닐 것이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을 것이다. 이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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