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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스르륵 망한 '주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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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수 작성일15-07-20 13:37 조회3,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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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황 5제

3황은 복희, 신농, 황제 헌원를 말하고, 5제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을 말한다. 도가는 복희와 신농부터 이야기를 하고, 유가는 요순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사마천은 ‘황제’를 기원으로 서술했다. 그래서 <본기>에 나오는 왕조들은 어떻게든(!) 황제와 관련이 있다. 복희씨는 <주역>의 괘를 그린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때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황금시대

하, 은, 주의 세 왕조의 시기를 흔히 ‘Gold Age’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옛 사람들은~~”이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는데, 여기서의 옛 사람들이 바로 하·은·주 시대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시기는 후대에 ‘이상시대’로 그려지면서 늘 돌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이야기된다. 어떤 점이 이 시기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정치적으로는 덕치[信]와 경제적으로는 정전법[食]을 들 수 있다. 덕치(德治)에는 ‘교화’가 포함되어 있다. 교화는 오륜을 말하는데, 인간을 인간답게 가르치는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사기』에는 어떤 지역을 전쟁으로 정복했을 때에도 교화했다고 기록을 남겼는데,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정전법은 농지를 9개로 분할한 후 중앙을 공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수확된 것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후에 다산의 토지 개혁의 기초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세금을 ‘철’이라고 하는데 지역의 특징이나 상황에 맞게 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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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문공과 천토지맹

初, 惠后欲立王子帶, 故以黨開翟人, 翟人遂入周. 襄王出奔鄭, 鄭居王于氾. 子帶立爲王, 取襄王所絀翟后與居溫. 十七年, 襄王告急于晉, 晉文公納王而誅叔帶. 襄王乃賜晉文公珪鬯弓矢, 爲伯, 以河內地與晉. 二十年, 晉文公召襄王, 襄王會之河陽·踐土, 諸侯畢朝, 書諱曰“天王狩于河陽”. 

진문공은 춘추시대 두번째 패자((覇者)로서 다른 여러 나라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때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① 왕위 계승자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처와 첩의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② 황하에 함부로 보를 쌓지 않는다
  ③ 흉년이 들어 쌀이 없을 때 다른 나라에서 곡식을 사가는 걸 막지 않는다

등과 같은 조약을 맺었다. 또, 이민족을 끌어들이는 일이 없게 하자고 약속했다. 이를 천토지맹(踐土之盟)이라 한다. 진문공의 주도하에 제후들이 모여 이러한 회의를 했다는 것은 주나라 천자의 힘이 많이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각 제후국들은 서로 친인척 관계였으므로, 한 나라의 왕위계승 분쟁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왕위 계승자(장자)를 함부로 바꾸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통해 그 당시는 큰 아들이 아니더라도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자의 상징, 구정

定王元年, 楚莊王伐陸渾之戎, 次洛, 使人問九鼎. 王使王孫滿應設以辭, 楚兵乃去. 十年, 楚莊王圍鄭, 鄭伯降, 已而復之. 十六年, 楚莊王卒. 

구정은 왕권의 상징이다. 하나라의 시조 우임금이 전국(구주)에 명해 모은 청동을 가지고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하의 마지막 왕인 걸이 상나라의 탕왕으로 인해 망하면서 구정은 상나라에 속했고, 또 상의 마지막 왕인 주왕이 주나라의 무왕으로 인해 망하면서 주 왕실에 속하게 되었다. 구정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천자라는 표식이다. 주나라가 진나라에게 망할 때 진은 이것을 가지고 가려고 했지만 강을 건너며 하나를 빠뜨렸다고 한다. 이는 주에서 진으로 바뀔 때 민심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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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박물관에 있는 정(鼎)


노자와 공자의 만남

安王立二十六年, 崩, 子烈王喜立. 烈王二年, 周太史儋見秦獻公曰 : “始周與秦國合而別, 別五百載復合, 合十七歲而霸王者出焉.” 

여기 나오는 ‘태사담’이 노자라는 설이 있다. 『장자』에 보면 공자가 노자를 만나러 가서 한 수 배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시기의 ‘태사담’이 노자라고 한다면,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이 경과했던 때이므로 공자를 실제적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직 ‘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초나라 사람 이이(李耳)라는 설, 공자와 동시대 사람인 노래자(老萊子)라는 설도 있다. 또, 『논어』에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다른 책들에는 그 기록들이 남아 있으니 이 점도 재미있다. 

제사지낸 고기의 의미

十年, 烈王崩, 弟扁立, 是爲顯王. 顯王五年, 賀秦獻公, 獻公稱伯. 九年, 致文武胙於秦孝公. 二十五年, 秦會諸侯於周. 二十六年, 周致伯於秦孝公. 三十三年, 賀秦惠王. 三十五年, 致文武胙於秦惠王. 四十四年, 秦惠王稱王. 其後諸侯皆爲王.

‘胙’ 이 글자가 제사지낸 고기라는 의미이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주로 생고기를 조상에게 올렸다. 그런데 이것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조상을 모시는 사이, 즉 ‘함께 가는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기 전, 제사지낸 고기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기다렸던 것이다. 고기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일종의 해고통지서였던 셈. 그래서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게 되었다.

유능한 ‘로비스트’들과 주의 멸망

八年, 秦攻宜陽, 楚救之. 而楚以周爲秦故, 將伐之. 蘇代爲周說楚王曰 : “何以周爲秦之禍也? 言周之爲秦甚於楚者, 欲令周入秦也, 故謂‘周秦’ 也. 周知其不可解, 必入於秦, 此爲秦取周之精者也. 爲王計者, 周於秦因善之, 不於秦亦言善之, 以疏之於秦. 周絶於秦, 必入於郢矣.” 

여기 나오는 ‘蘇代’(소대)에서 ‘어부지리’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주인공은 ‘소진’의 동생이다. 소진은 6개 나라의 재상을 겸임한 전국시대의 유명한 세객(說客)인데, 동생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동생 소대가 어떤 일을 했는가 한번 살펴보자. 

제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연나라가 많은 군사를 파병했는데, 연나라에 기근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조나라 혜문왕은 이때를 틈타 연나라에 침략하려 했다. 그러자 연나라 왕은 소대를 보내 혜문왕을 설득해주도록 부탁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 조 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 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입을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 이 옵니다. 연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혜문왕은 전쟁 계획을 철회했다고 한다.

소진, 소대가 활약하던 시기는 전국시대 말기이다. 천자의 힘이 약해지니 제후국들의 힘이 강해지고, 그러다보니 많은 인재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주나라는 하나라나 상나라처럼 어떤 사건으로 확 망하는 게 아니라 힘이 점차로 약해지면서 사라진다. 이후 동주와 서주로 분리되고 결국 진나라에 의해 ‘구정’이 옮겨지면서 사기에서도 <진본기>로 넘어가게 된다. 아직은 누가 어떤 나라 사람인지 헷갈리지만, 파편으로 쪼개져있던 나라와 인물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니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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