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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주도면밀한 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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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경 작성일15-08-19 22:46 조회2,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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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읽기 세미나 시즌3! 첫 시간에는 진 본기 가운데 진(秦) 목공 당시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진 본기는 세가의 관련 부분을 같이 읽어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고우영의 <십팔사략>을 참고하세요. ^^


이전 시간에 목공과 백리혜에 대한 이야기까지 배웠는데요. 이번 시간 또한 백리혜의 뛰어난 지략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진(晉)나라에 가뭄이 들었을 때, 쳐들어가지 않고 식량 원조를 했던 일화에 대해 들었습니다. 당시 진(晉)나라와 원한 관계에 놓여 있었고,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충분했음에도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 식량을 보낸 겁니다. 선조거전(船漕車轉) - 엄청 많은 곡식을 보냈다고 합니다.


춘추 시대 초기였던 당시 각 국은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각자 알아서 살았던 반면, 국제 협약이 있었던 것입니다. 큰 아들을 볼모로 잡지 말 것, 기근 시 식량을 사고파는 것을 막지 말 것, 물길을 막지 말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죠. 그 가운데 흉년일 때 서로 도와주자는 조항도 있었는데, 그것을 지킴으로서 백리혜는 국제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C급 나라인 진(秦)이 A급 나라인 진(晉)에게 식량을 주면서 말입니다.


14년 후, 반대로 진(秦)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 때 진(晉) 왕 이오는 상대국의 열악한 상황을 이용하여 군대를 이끌고 진(秦)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진(晉) 백성들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죠. 오히려 분노 덕분에 공격해오는 적에 필사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전쟁의 심리는 이런 것입니다.


이 전쟁에는 그 외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진(晉)왕인 혜공이 진(秦) 군대를 추격하다 도망가는 좋은 품종의 말(지금으로 따지면 고급 승용차를 떠올리면 됨)을 욕심내다 수레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목공과 그 부하들이 이를 추격하여 잡을 뻔 했으나 도리어 역전되어 목공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위급한 상황, 갑자기 300명의 민간인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기산 아래 살았던 유목민들로, 과거에 진 목공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죠. 그들은 목공의 달아난 말을 멋모르고 잡아먹다 처벌당할 뻔 했는데, 진 목공이 술을 내려주고 사면해주었습니다. 진 목공은 대단한 책략가였습니다. 당시 기산 지역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땅이었죠. 선정을 베풀어 그 지역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고, 위급할 때 거꾸로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혜공(이오) 생포 사건입니다. 목공이 승세를 이어가 혜공을 생포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해 왕이 상대국에 넘겨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골치 아픈 일이죠. 더군다나 A급 나라인 진(晉)왕이 C급 나라에 생포되었기 때문에. 목왕은 쉽게 그를 죽일 수도, 살려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이 때 목공은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목공은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혜공을 제물로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습니다. 주 천자는 사면을 요청했고, 목공의 부인이 맨발로 울부짖으며 동생을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목공은 혜공을 죽일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혜공을 돌려보낼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천자와 부인의 반대는 혜공을 돌려보낼 좋은 명분이 되었죠. 동시에 이 정치적 제스처를 통해 진(秦)은 모든 제후국에게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그 결과, 하서 땅은 진(秦)의 차지가 되었고, 진(晉)의 태자는 인질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목공도 자만함에 빠져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어느 날, 정나라 사람이 와서 성문을 열 테니 공격을 하라고 제안합니다. 백리혜와 건숙이 반대했지만 목공은 이미 마음을 정했던 터, 그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에 새파랗게 젊은 장수 세명 - 백리혜와 관숙의 아들(명문가의 자재)을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험이 미숙했고, 이들이 지나간 나라들에선 원성이 자자했죠. 이들은 이동하는 도중, 정나라 출신 장사꾼을 만났는데, 그는 군주가 미리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고했습니다. 이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듣고 그들은 방향을 선회하여 엉뚱하게 진(晉)의 활 땅을 쳤습니다. 이 때 진(晉)나라는 진 문공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중이었죠. 분노한 군사들은 오히려 필사적으로 싸움에 응해 세 장수는 효산에서 완패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전장에서 죽지도 못 하고 포로로 잡혔고, 운 좋게 진(秦)나라로 호송되었다.


이 못난 세 장군이 도착하자 목공은 소복을 입고 사대문 밖까지 친히 나가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통곡했습니다. 목공은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백성들 앞에서 빌었습니다.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뛰어난 퍼포먼스였습니다. 전투로 인해 두 집 건너 한 집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빌고 죽은 자들을 위해 울어준 군주 덕에 군사들의 사기는 높아졌고, 보복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됩니다. 세 장군은 3년 후 전투에 나가 승리했습니다. 이 때도 목공의 퍼포먼스가 돋보입니다. 목공은 스스로 황하를 건너가 과거 효산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봉분을 만들고 3일 동안 곡을 하며 직접 초상을 치러줬습니다. 이에 진니라의 지배계층이 모두 다 같이 울었습니다.


백리혜 외에 목공에게는 친애하는 신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여'란 사람입니다. 유여의 조상은 원래 한족이었으나 융땅으로 망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융 국의 사신으로 목공에게 왔다가 발탁된 케이스인데요. 유여는 일종의 유세가였습니다. 유세가들은 군주에게 자신의 파격적인 안목을 보여줘 신임을 얻고자 합니다. 즉, 세상을 해석하는 다른 구도를 제시하고자 하죠. 유여가 목공을 처음 만났을 때, 목공은 변두리 유목국가에서 온 유여에게 금은보화를 보여주며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그 때, 유여는 목왕에게 그런 재물은 귀신더러 만들라고 해도 힘들 텐데, 백성들이 고달팠겠다고 합니다. 목왕은 이에 충격을 받죠.


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여는 무위지치(無爲之治), 즉 도가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제도가 많으면 오히려 나라를 잘 다스리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목왕은 30년 넘게 정복전쟁을 하면서 무척 지쳤을 겁니다. 정치의 어떤 변화가 필요했겠죠. 이 때, 유여가 등장한 것이다. 목 왕의 통치의 전반부에 백리혜가 있었다면 후반부엔 유여가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목공은 남의 나라 신하인 유여를 어떻게 사로잡았을까요? 먼저, 이간책을 썼습니다. 女樂, 즉 16명의 뮤지션으로 구성된 뮤지컬 팀을 구성하여 융왕에게 보내고, 융왕을 음악에 푹 빠지게 만듭니다. 덕분에 나라 정치는 엉망이 됩니다. 반대로 유여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줍니다. 나란히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목왕은 토착세력에 대한 견제책을 씁니다. 외부인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면서 말입니다. 목왕은 유왕을 앞세워 융의 땅을 다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고비사막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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