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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신학정치론 12,13장 발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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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학 작성일15-08-21 15:19 조회2,3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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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과 13장을 발제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12장은 신성 법칙의 원본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신의 말씀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해졌는가? 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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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성서가 신의 말씀이라고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3가지로 설명한다.


1.신이 진정한 종교의 창시자다.


2.미래의 예언을 신의 명령들로 이야기한다.


3.성서의 진짜 저자들은 신이 특유한 빛으로 발언을 창조하는 존재 ( 신비로운 힘으로 율법을 전한다는 의미 ) 로 표현했다. 그래서 신의 말씀 이외에 일반 역사이야기까지 ( 역사는 신의 말씀과는 상관 없지만 ) 신의 말씀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니까 성서가 신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성서에서 가르치는 진정한 종교는, 종교가 가르치는 생활 윤리,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종교를 예사로 유대민족만의 법으로 선포했다.


신약은 그리스도 수난의 효력에 의해 종교를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법으로 전도했는데 보편적인 종교는 전적으로 자연과 일치한다. 이렇게 본다면 설령 구약이 원본 그대로 전해지지 않아도 진정한 종교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구약은 어째서 신의 말씀을 나타내는 부분에 이런 한계점을 보이는가?


1.하나의 동일한 시기에 성경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여러 사도들과 예언자에 의해 저술되었다.


2.성서를 쓴 예언자의 정신과 신의 정신 ( 진리 자체 ) 은 같은 것도 있지만 같지 않은 것도 많다.


3.구약은 바리새파 협의회에 의해 승인되고,신약도 어떤 협의회에 의해 승인된 것인데 협의회 구성원 중 예언자는 없고 학자나 교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4.신약 저자인 사도들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 쉽고 임팩트가 강하게 ) 으로 성서를 썼. 그 중에는 종교와는 관계없는 것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성경이 결점, 더럽혀짐, 훼손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3가지 점을 들어 밝히고 있다.


1.성서의 성스러운 취지가 더럽혀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월에 의한 말의 변화, 다른 언어로 쓰여진 것과 관계없이 신성하다.


2.성서는 명백히 무엇보다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박애>라는 것이 본질적인 메시지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성경구절도 없고 이것이 항상 성서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그 외의 도덕적인 가르침도 모두 본질적인 메시지로부터 파생되어 나왔고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세월에 파손되지 않았다.


3. 성가 속에서 자기들 나라의 역사를 노래하는 것은 고대 유대인의 습관이었다. 그리스도 일생도 노래로 로마제국에 퍼졌고 전승되었으므로 다른 판본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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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부분은 신앙심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예언, 소수의 기적을 이용하여 교회분리론자들이 신성한 권위를 오용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구원이라는 것에서 거의 중요하지 않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신성함이 결정되는데, 예를 들어 같은 집이라도 신을 숭배하면 신전이고, 도둑이 들끓으면 부정한 집이 된다. 단어나 책도 마찬가지고 성스러운 정신으로 읽고 사람들을 신앙하게 만들면 성서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시된다면 그것은 종이와 잉크에 불과하고 심지어 모독적이거나 부패하게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말 자체가 부패되거나 사라지는 것은아니다.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은 ( 옛날이나 지금이나 ) 덕이 있는 사람은 늘 소수이다.

 


13장은 성서의 교리가 매우 단순한데, 오직 순종만을 고취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만에 의해 신의 본질을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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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철학적 사변이나 논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심원한 불가사의를 성서에서 찾아내고, 그 후에 성서의 내용 안에 철학적 문제를 끌어들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신학이라는 학문이 되고, 마치 교회가 학회인 것처럼 생각되게 한다


이런 교묘한 방식에 스피노자는 놀라고 있다. 종교 안에 철학적 문제를 설명해 봤자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사람의 생각 외에 확실한 어떤 것도 찾아내지는 못하며, 그저 교양없는 ( 무식한 ) 사람의 환상을 연상시키는 불가사의한 생각만 연상시킬 뿐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철학적 본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긍정적인 부분은 매우 희귀하고 단순하다.


이런 방식의 가르침이 종교의 개념에 관해 기본적인 중요성을 가지므로 이 문제를 설명할 예정이다.


1. 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 순종과는 상관없이 ) 모든 종교에 충실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저절로 얻어지는 재능이 아니다.


명령에 의해 순종할 수는 있지만 명령에 의해 지혜로울 수는 없다. 그런데 누군가 신의 속성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증명의 과정도 없이 무조건 믿어야 할 의무는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명백히 무의미한 앵무새나 꼭두각시의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증명없이 사람들은 신의 속성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지성에 의한 증명을 통해서만이 그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2. 신이 예언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지식은 그의 신성한 정의 및 박애에 대한 지식이다.


신은 최고로 공정하고 자비로운 존재, 참된 삶의 유일하고 완전한 모범이다. 또한 성서 어디에도 신이란 무엇인가를 명백히 보여주지 않고, 앞에서 말했던 신에 대한 지식 이외에 다른 어떤 속성들을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본질은 규준이나 명령에 의해 본받을 수 없다.


그리고 본래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신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신에 대한 지적 인식은 참된 삶의 방식의 실천, 신앙, 계시된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 죄가 있어도 알 수 있고, 죄가 없어도 모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이 충실한 사람들이 서로 신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저 성서의 예언자나 사도는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서는 그저 순종만을 가르치고자 힘쓸 따름이다.


신학자들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글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확실한데 신성한 본질과는 일치하지 않는 이상한 부분은 은유적인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식의 해석은 성서가 보통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들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겠는가. 스피노자가 하는 이러한 성서 텍스트의 분석은 죄악이 아니다. 잘못은 과거 예언자들에게 있는데, 철학적 사변으로 고찰하는 사람들의 눈높이도 고려해서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명확함으로 가르치는 것을 애초의 성서 기록의 목표로 삼았어야 했다.


사회에서 참이라고 하는 것 (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서의 율법 )을 믿고 그것을 근거로 방자하게 군다면 ( 악용한다면 ) 그는 실제로는 불경한 신앙을 가진 자이다. 사회에서 거짓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 성서 텍스트의 철학적 해석 ) 그것을 근거로 도덕법칙에 순종하게 된다면 그는 실제로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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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참된 인식은 명령과 순종으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한 선물 ( 재능 ) 이라는 것을 밝혔고, 신은 신성한 정의와 박애 이외에 다른 지식은 요구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지식은 철학적 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법칙의 순종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밝혔다.


이런 스피노자의 사유가 <에티카>라는 책으로 탄생합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고 순종하면 신의 은총으로 지복에 이른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이런 가르침을 넘어서서, 스피노자는 올바른 신에 대한 인식을 갖게끔 우리의 지성을 교정합니다. 그리고 교정된 지성이 신성한 삶의 윤리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고, 지복에 이르는 길에 다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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