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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세미나> 6월3일 후기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상과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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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깜봉시연 작성일15-06-10 11:39 조회2,6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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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건 상과 벌이다


주나라는 후직을 시조로 공류-고공단보-문왕-무왕-주공-성왕으로 이어진다. 이번 주 세미나에서는 무왕이 얼마나 나라를 잘 다스렸는지, 왕위를 이어받은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러가는 장면을 읽었다. 학인들은 ‘이렇게 천천히 읽어서 사기를 언제 다 읽나’하겠지만 우샘께서는 “본기를 꼼꼼하게 읽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럼 천천히 읽는 사기, 생각의 여러 길을 펼쳐보는 사기 세미나 후기를 시작해보자.


서백, 아마도 천명을 받은 군주인가보다

  무왕의 이름은 서백이다. 서백은 늙은이를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여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접대했다. 고죽국 왕자인 백이와 숙제도 서백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정한 판결을 해준다는 소문이 돌자 제후들은 앞 다투어 주나라로 몰려들었다. 판결을 의뢰하러 주나라 경내에 들어서자 ‘농부들은 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하고, 백성들의 풍속은 모두 연장자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서백을 만나기도 전에 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양보하면서 헤어졌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우샘께서는 이 일화에서 기억할 한자는 ‘양(讓)&참(慙)’이라고 하셨다. ‘양보할 양(讓)’은 서백의 미덕을 잘 드러내는 글자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와 자기들도 저절로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것을 잘 표현한 한자가 ‘부끄러울 참(慙)’이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서백은 아마도 천명을 받은 군주인가보다”라며 수군거렸다. 원문에서는 ‘개(蓋)’라는 한자를 ‘아마도~했나보다’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왜 ‘천명을 받았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개(蓋)’를 써서 ‘아마도 천명을 받았나보다’라고 말했을까? 아직 드러내놓고 말할 만큼 세력이 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짝 가려서, 혹은 뒤에서 속닥거리듯이 말해야했기 때문에 ‘蓋’라는 글자를 썼다. 우샘께서는 이것을 ‘찌라시’라고 표현하셨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서백의 명성이 그만큼 널리 퍼졌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은밀하다고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천명인가보다.


무왕, 아버지의 이름으로 은주를 치러가다

   서백은 5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꾸준히 전쟁을 치렀다. 노인들을 접대하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면 서도 전쟁은 또 언제 그렇게 했던 것인지. 왕은 이래저래 고달픈 자리인가보다. 그런데 서백은 접대하랴 전쟁하랴 두루두루 바빠서인지 미쳐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다. 그 한을 풀어준 것이 아들 무왕이다. 무왕은 아버지를 문왕으로 추존하고 문왕의 목주(木主)-위패를 만들어 수레에 싣고 은나라 주왕을 처벌하러 떠났다. 이 일로 인해 백이와 숙제는 고사리-원푸드다이어트(^^)를 했다. 삼년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쟁을 하러 갈 수가 있냐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뜯어먹는 시위를 한 것이다. 백이와 숙제-이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천년 내내 많은 말들이 있어왔다. 아주 오래전 진짜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도 모를 사람들인데 옆집 아저씨(?), 우리 아버지(?)이야기보다 관심을 끄는 힘은 뭘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준 사기가 큰 몫을 한 것은 틀림없다. 사기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질 뻔 한 그들을 만나게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기가 참 여러 사람을 살렸다. 사마천은 글을 써서 몇 천 년 동안 이름이 전해지고, 백이와 숙제는 사마천의 글이 있어서 이름을 남기고.

   사기를 읽기 전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꼭 배워야하나 생각했었다. 역사 공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기 안에는 달달 외워야하는 지식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그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년동안, 아니 45억년동안 계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관계’를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왕이 전쟁을 치르러 가는 장면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사람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뭘까? 우샘께서는 ‘상과 벌’이라고 하셨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 단호한 거 아닌가? 사람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가? 약간의 의심이 올라왔다. 물론 금세 설득당했다. 상에는 우리를 혹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간다. 복지, 세금면제, 특사, 등 소위 당근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벌 혹은 채찍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과 대비되는 것 같지만,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미혹해서 움직이게 하든, 두려움에 떨게 해서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하든 둘 중의 하나다. 상과 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이것을 얼마나 적절하게 조절하느냐가 왕의 능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무왕의 능력은 상벌제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상벌제도를 적절하게 휘두른다고 해도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무왕이 은나라와 전쟁을 앞두고 한 선서에 따르면 네 가지 명분이 있다. 첫째,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는데, 주왕은 부인의 말만 듣고 있다. 둘째, 선조에 지내는 제사를 그만두고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셋째, 친족을 등용하지 않고 외부인을 신임하고 등용한다. 넷째, 군주가 포악해 악행을 저지른다. 다른 이유는 좀 납득이 가는데 첫 번째 이유는 좀 치사해 보인다. 아무튼 우린 이로써 알게 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천년이상 들어왔다는 사실을. 참나. 암탉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데 좀 얼토당토 해보이지 않는 이 이유가 사람들을 선동하는데는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병사들은 부인도 자식도 다 버리고 목숨까지 걸고 전쟁에 참여하는데 상대편 왕은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고 하니 꼭 응징해야한다는 결의를 하게 한단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대의나 거창한 명분이 아니다. 여자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상과 벌에 움직이는가 하면, 양보하는 사람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기는 이런 사실을 어떤 이미지도 덧보태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기가 아직까지도 읽히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솔직함 때문이 아닐까? 좀 폼 나보이려고 부풀리고, 괜찮은 이미지로 포장해 놓은 인간들의 맨 얼굴을 기어코 보여주는 솔직함.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비난하거나 냉소하는 시선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 우리는 이런 사기를 만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기를 천천히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적절한 속도로 읽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쭈욱 이런 속도로 읽고 싶다는 사심이 듬뿍 담긴 후기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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