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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6.24 후기] 새로운 왕조가 처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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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태연 작성일15-07-08 12:08 조회2,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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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왕조가 처음 하는 일

 

 

무왕은 상나라 주()의 아들 녹보(祿父)에게 은의 남은 백성을 봉했다. 또 무왕은 은이 막 평정되어 아직 안정되지 못하였으므로 자신의 동생 관숙선(管叔鮮)과 채숙탁(蔡叔度)에게 녹보를 도와서 은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곧이어 소공에게 기자(箕子)를 석방시키도록 명하고 필공에게 감옥에 갇혀 있는 백성을 석방시키도록 명하였으며 상용(商容)이 살던 마을을 표창하였다. 또한 남궁괄(南宮括)에게 녹대의 재무과 거교(鉅橋)의 곡식을 풀어서 가난하고 무력한 백성을 구제하돌고 명했고, 남궁괄과 사일에게 구정과 보옥을 전시하도록 명했고, 굉요에게 비간의 묘에 봉분을 하도록 명하였으며, 종축(宗祝)에게는 군에서 향사하도록 명했다. 마침내 전쟁을 치르고 서토로 철수했다. 길을 따라서 순수하며 정사를 기록하여 무성(武成)을 지었다. 제후를 봉하고 종이(宗彝)를 골고루 나누어 하사하고 분은지기물(分殷之器物)을 지었다. 무왕은 선대 성왕을 추념하여 마침내 신농의 후손을 초에, 황제의 후손을 축에, 요의 후손을 계에, 순의 후손을 진에, 우의 후손을 기에 각각 포상하여 봉했다. 또한 공신, 모사를 봉했는데 사상보가 가장 먼저 봉해졌다. 사상보를 영구에 봉하고 제라고 했으며, 동생 주공단을 곡부에 봉하고 노라고 했다. 소공 석을 연에 봉했으며, 동생 숙선을 관에 봉했고, 동생 숙탁을 채에 봉했다. 나머지도 각기 차례에 따라서 봉해졌다. -사기본기 80, 까치출판사-

 

무왕이 이렇게 왕조를 세운 이후 여러 왕조가 처음에 이런 것을 한다. 무왕 이후 패턴화 되었다. 이것은 무왕이 어떻게 정복당한 백성을 관리했는지 나온다. 그런데 진시황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면 진나라엔 150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고조는 진과 같은 역사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왕이 한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특히 책사 장량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사기에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무왕이 했던 식으로 국가를 설계했다.

무왕이 처음으로 한 것은 상나라 주의 아들 녹보에게 은나라 여민과 그 일대 땅을 준 것이다. 여민은 전쟁하고 남은 백성을 말한다. 그리고 무왕은 동생 관숙선과 채숙탁에게 녹보를 도와 은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이 둘은 처형을 당하는데 이것에 관해선 아직까지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당시 상나라땅은 아무리 폭군 주(상나라왕)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땅에는 상나라 왕이 봉해져야 안정되었다. 그래서 무왕이 맨 처음 한 일이 녹보에게 은나라 땅을 준 것이다. 물론 녹보가 주로 하는 일은 제사 지내는 일이다. 그래서 무는 은나라 제사를 지내게 하여 민심을 수습한 것이다. 얼마 후 소공에게 명해 기자(箕子)를 석방한다. 그런데 기자는 신하가 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간다.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자조선이다.

녹대는 주의 보물창고다. 무는 그것을 나눠주게 하고 고교가 곡식창고인데 창고 문을 열어 나눠준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력한 백성을 구제한다. 그리고 굉요에게 죽은 왕자 비간의 묘를 봉분해 준다. 봉분한다는 것은 이 일대 땅을 지정해서 무덤을 지키면서 지반을 지정해 준다. 종축은 제사장이다. 축중의 우두머리 그러니깐 대제사장 되겠다. 무왕은 종축에게 명해서 죽은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내서 위로해 주라 명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무왕이 엄청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리 생각을 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아마도 서쪽에서 많은 정복이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습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곡식창고를 열어 주는 것. 이것은 유목민적인 마인드다. 흉노열전이과 같은 텍스트를 보면 이들은 정복하면 다 가져갈 수 없으니 나눠준다.

그리고 무왕은 군대를 해산한다. 그런데 정복한 땅에서 해산한다. 다시 서쪽으로 가서 해산하면 경비가 많이 든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돈이다. 그리고 순수하며 정사를 기록한 것은 자신이 정복한 땅을 다니면서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지은 게 무성이다. 무공성야. 무공을 완수했다는 뜻이다. 왕은 강태공은 제나라, 주공은 노나라 이런 식으로 땅을 나누어 준다. 땅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종이(宗彝)를 함께 나누어 주었다. 종이는 은의 기물이다. 종은 술동이. 술을 담는 주전자. 여기 여러 무늬가 있다. 이자가 그릇이자다. 이자는 종묘제례에서는 술그릇. 여기에만 그릇이자를 쓴다. 종이는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그릇이란 뜻이다. 여기서 은나라의 기물. 놋대, 요강 이런 게 다 기물이다. 원래 기물은 제기다. 은의 기물을 나누었다. 논공행상을 해서 갖은 전리품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왜 기록으로 남았을까? 왜냐면 기록으로 남아야 싸우지 않는다. 한고조 유방 때는 1년이 지나도 결정이 안 났다.

 

武王追思先聖王, 乃襃封神農之後於焦, 黃帝之後於祝, 帝堯之後於薊, 帝舜之後於陳, 大禹之後於杞.

사기는 황제부터 역사가 시작되는데 여기는 신농부터다. 주나라 집안이 후직의 집안이다. 그래서 신농씨부터 와야 된다. 그렇게 신농씨부터 땅을 주기 시작하여 하나라의 후손까지 땅을 준다. 그리고 강태공에게 가장 먼저 땅을 준다. 아마도 강태공의 공이 가장 좋았나 보다. 그리고 주공, 소공 순으로 땅을 준다.

그런데 공신들이 땅을 받았음에도 떠나지 않고 왕 옆에 붙어있다. 만약 왕이 그 땅으로 가라고 하면 그는 정계에서 아웃된 것이다. , 귀양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신들은 왕 옆에 꼭 붙어 있게 된다.

    


 

땅 언덕에 올라 앞날을 걱정하다

 

무왕은 나라를 갖게 되고 구주의 통치자를 소집해서 자기 집안의 발상지인 빈()으로 간다. 주의 역사는 빈()에서 시작. ()은 지금의 신강성이다. ()땅의 언덕에 올라가서 그 일대를 바라본다. 이럴 때는 감정적인 것이 중요하다. 서경엔 이런 감정이 없다. 아마도 이 부분은 사마천이 야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본다. 무왕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주공이 왕의 처소에 나아가 묻는다. “어찌 잠들지 못하십니까?”

 

그대에게 말하리라. 하늘이 은나라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은나라를 버리셨으며, 이 사람 발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0년간 미록(麋鹿)이 들에 있고 비홍(蜚鴻)이 벌판에 가득하였소. 하늘이 은나라를 옹호하지 않으시어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있게 하였소. 은나라가 하늘의 명을 받아 막 건립되었을 때 임용된 현인이 360명이었으나 그 업적은 그다지 두드러지지도 않았고 또한 없어지지도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소. 하늘이 주나라를 보우하시는지 아닌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데, 어찌 잘 겨를이 있겠소? -사기본기 81, 까치출판사-

      

아직 천보. 하늘이 보호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잠이 안온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왕조를 지킬 것인지 고민한다. 여기서는 왜 은나라가 망했는가? 하늘이 은나라의 제사를 받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제사를 받들지 않은 걸 어떻게 아나? 이걸 민심으로 아는 것이다.

 

하늘이 반드시 주나라를 보우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천실(天室)을 따르도록 하리라. 은왕 주를 징벌했듯이 모든 악인을 찾아내어 벌할 것이오. 밤낮으로 노력하여 나의 서토를 안정시키고 일을 공정히 처리하여 그 덕을 사방에 비추겠소. 낙수만으로부터 이수만까지는 지세가 평탄하고 험하지 않아서 하나라가 정착한 곳이오. 남으로 삼도를 바라보고 북으로 악 주변을 바라보며 황하를 살펴보고 다시 낙수와 이수 유역을 바라보니, 모두 도읍을 세울 만한 좋은 곳이라고 멀리 내버려만 둘 수가 없소. -사기본기 81, 까치출판사-

 

이 두 가지 일화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다.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엄청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낙()에다가 신도시를 만든다. 왜냐면 유민들의 힘을 빼야하기 때문이다. 화산의 남쪽에 말을 풀어놓고 들판에 소를 풀어놓는다. 무기와 병사를 거두어들이고 군대를 해산하여 천하에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를 안 쓰겠다는 것. 이때부터 문화정책. 그리고 기자를 만난다. 지식인을 만나서 문화정책을 쓰겠다는 것이다.

무왕은 기자에게 은이 망한 이유를 묻는다. 기자는 차마 은나라의 나쁜 점을 말하지 못하고 나라가 존 하느냐 망하느냐 문제를 말했다. 무왕도 난처하여 천도를 물어봤다. 이때 나온 천도가 바로 서경의 홍범(弘範)이다. 홍자는 넓을 홍자다. 범자는 법 범자다. 국가를 경영하는 거대한 정책 비전.

홍범은 우가 하늘에서 받은 것으로 나온다. 이것으로 볼 때 홍범은 하나라 때부터 내려온 국가조직론이다. 기자가 이것을 무왕에게 전했다. 이렇게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전해오는 것도 있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무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정복했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늘에 의해 정복했다고 해도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오랜 세월 쌓아온 역사와 홍범과 같은 祕傳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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