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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6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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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츈쿠키 작성일15-04-07 10:09 조회2,8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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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기까지(사기 하본기 후기)

 

드뎌 우()는 치수사업을 끝냈다. 13년에 걸쳐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냈다.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구도(九道)를 소통시키며 구택(九澤)을 축조하고 구산(九山)에 길을 뚫었다.’ 황하는 이집트의 나일강처럼 일정한 줄기로 흐르는 물이 아니다. 물이 범람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토사가 쌓여 비옥해진 하류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그런 물이 아니다. 황하(黃河)는 수시로 줄기를 바꾸어가며 흐르기 때문에 중국 전체를 물에 잠식시키는 참혹함을 연출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 물을 다스려야만 한다. ()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가슴과 정강이의 털이 다 빠질 정도였고 자신의 집 앞을 지날 때도 한 번 들어가 보지 못했다.

치수가 되자 서울과 지방간의 운수가 가능해져 나라의 경제적 기반도 마련하게 됐다. 각 지방의 특산물을 지정하여 공물로 바치게 하고 그것을 서울로 운반해오는 경로까지 개척하였던 것. 조세제도가 완비된 것이다. 치수의 공덕은 그가 전설시대(, )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시대 즉, 하왕조를 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마천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백성을 다스리려면 기술적 테크닉만으론 부족하다. 요즘말로 하면 건설부 장관의 능력만으론 부족하다. 외치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치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치에 전념해온 인물이 있다. ‘고요이다. 그는 옥관이라는 벼슬을 하면서 백성을 다스려왔다. 요즘말로 하면 법무, 문화부 장관 정도. 우가 순임금에게 선양을 받으려면 경험자이자 선배인 고요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따라서 우에게 임금자리를 선양해주고 싶은 순임금으로선 고요와 우를 불러 조회를 열 필요가 있다. 3자 회담(아니 백이伯夷가 엑스트라도 끼어있긴 한데 대사가 하나도 없다.)서경(書經)』 「고요모에 나와 있다. 그 내용이 사기(史記)하본기(夏本紀)와 일치하는 걸 보면 이 부분은 사마천이 서경 고요모를 참조했을 것 같다. 다만 사마천은 서경보다 더 맛깔스럽게 편집했다.(사실 우샘의 맛깔스런 해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걸 몰랐을지도^^)

 

고요 왈() “진실로 도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시면 계획하는 일이 분명해지고 보필하는 사람들이 화합할 것입니다.” 고요는 화합’()을 강조했다. 화합하기 위해선 도덕’(道德)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단히 말한다. 도덕? 참 어려운 말이다. 얼마나 추상적인가? 13년 동안 오른 손에 그림쇠와 곱자들고 왼손에 먹줄들고 측량하며 나무를 베고 산을 뚫으며 물길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던 공돌이(^^)에게 도덕?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마치 도덕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되묻는 우()!고요는 어이없어 허참, 나 원(!)” 기막혀 하면서도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신중히 하고 깊이 생각하면 지혜가 생겨 구족(九族)을 질서있게 할 수 있고 보필할 신하들이 모여든다고. 그는 지도자의 자질로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知人)과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능력(安民)을 꼽는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선 정치파트너인 신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절대 필요한데 수신(修身)이 될 때만 그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우()는 이 말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건 요임금도 어렵지 않았을까요?”라고 까칠한 말이 툭 튀어나온다. 하지만 아뿔싸 자신도 그걸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곧 고요의 가르침에 수긍하는 말을 펼친다. 왜 안그럴까? 우는 기껏해야 익()과 후직(后稷)만을 파트너로 삼아 토목공사만 했을 뿐 사람을 기용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고요는 아랑곳없이 더 길게 말한다. 아홉가지 덕행, 구덕(九德)에 대해서.(구주, 구택, 구산...아무래도 구()에 무슨 의미가 있나보다) 이른바 ‘...이면서도...이기’. 모순처럼 보이는 두 인격을 동시에 갖추는 것.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안 느껴지고 끌리게 만드는 인격. 그게 이라고 한다. ‘관대하면서도 준엄하기’(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은 있기’(柔而立),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기’(愿而共), ‘조리가 있으면서도 삼가기’(治而敬), ‘유순하면서도 의지는 강하기’(懮而毅),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기’(直而溫), ‘대범하면서도 청렴하기’(簡而廉), ‘결단성이 있으면서도 착실하기’(剛而實), ‘용감하면서도 정의로울 것’(彊而義). 이것이 고요가 말한 아홉가지 덕이다.

! 어렵다. 관대하기도 어렵거늘 관대하면서 동시에 준엄하기까지 하라니. 한가지 인격대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관성이 생겨서 그 인격대로만 살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와 반대되는 인격은 갖추기 어려워진다. 가령 자주 부드럽고 관대하게 상대를 대하다보변 단호하거나 엄하게 대할 경우는 줄어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으레 그려러니 하면서 그 한가지 인격만이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 인격만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다 다른 인격을 보이면 실망하고 배반감을 느꼈다며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니 관대하면서도 동시에 준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격을 다양하게 갖출수록 좋다. 다양한 상황마다에 적절한 인격이 필요하다. 우샘은 이처럼 되기는 참 어렵다고 했다.! 지난한 수신의 과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어려우니까 왕이다! 이 중 경대부는 세가지, 제후는 다섯가지만 갖추어도 다스릴 수 있고 천자는 다 갖추어야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아 관직에 앉힐 수 있다 했으니 관직의 중요성과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은 수신에서 비롯됨을 고요는 설파하고 있다.

웬지 우()는 코너로 몰리는 느낌.^^ 순임금이 살짝 끼어들어 분위기를 돋우려 한다.“그대도 고견(昌言)을 말해 보시오.” 고견? 우는 고요처럼 도덕적으로 우아(?)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은 부지런히 일할 생각만 한다고 말한다. 고요가 그 부지런인게 어떤거냐고 다그치듯이 하자 우리 우()의 대답. 13년 동안 치수했던 일을 늘어놓을 뿐이다.

다 아는 일을 되뇌이는 우에게 고요는 어떤 점수를 줄까? 뜻밖에 고요는 오케이 패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미덕입니다.”

순임금은 룰룰랄라 그대들이야말로 나의 고굉지신’(股肱之臣임금의 다리와 팔뚝같은 소중한 신하)들이라며 좋아라하고 풍악이 울리고 봉황이 날아오면서 3자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마침내 우()는 왕이 되어 하()나라를 열었다.

()는 미래의 청사진을 펼치지 않았다.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치수사업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이미 고요가 말하는 수신과 덕을 갖추었음을 자부했던 것일까? 수신과 덕이 없이는 13년 동안 그 진창길을 헤쳐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고요도 순임금도 그의 치수를 왕의 조건으로 인정한 것이리라.

이러한 내용이 문헌으로 혹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었기에 공자는 춘추시대의 난국에 대한 대항으로 수신과 덕을 지침으로 한 유학을 창시하고 요, , 우 시절을 이상으로 삼은게 아닐까? 전국 시대까지 백가들이 쟁명했지만 오래 살아남은 것이 유가인걸 보면 덕치가 현실에서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 아닌지. 저 훗날 당나라때 한유가 신비주의에 물든 불교와 도교의 세상을 돌파하기 위해 유학의 부흥을 힘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나라는 폭군 걸()왕에 이르러 망하기 전에도 몇 번의 위기를 겪었다. 태강(太康)왕과 공갑(孔甲)왕때였다. 그 때마다 원인은 왕 자신에 있었다.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여색이나 사냥을 탐하고.

수신(修身).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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