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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 천하나의고원(9쪽~58쪽)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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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아 작성일15-04-21 17:17 조회2,811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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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천사들 세미나는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개념을 이정우 선생님의 <천 하나의 고원>을 통해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천 하나의 고원>은 <천개의 고원>에 비하면 상당히 친절한 책이었다.
 
우선 앞부분은 유감스럽지만 불가피하게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층화'된 우리의 모습과 그 반대 방향으로 잠재된 추상기계를 살펴보았다.
 
***배치란 무엇인가?
1. 지난 주 토요일 정화스님 강의에서 모든 생명체는 중층적으로 구성된 众生(중생)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우리 몸은 60조개의 세포와 600조개의 미생물로 이루어져있고, 이 세포들은 서로 이야기를 통해 共生(공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정란이 분화할 때 피부가 될 놈은 내장이 될 기능을 억제시켜야 한다. 이러한 발현과 억제를 통해 하나의 기관이 완성되는 것이다. -> 이것은 들뢰즈/가타리가 말한 "모든 형태의 기계들은 이 중층적 여백으로부터 생명력, 잠재력, 욕망을 가지게 된다"와 일치한다.
2. 야구라는 다양체는 공, 배트, 글러브 등을 비롯한 기계들의 장과 야구 규칙들(즉 일정한 코드)의 장이 일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립하는 장이다. 이런 배치(혹은 사건)은 생겼다 사라지고 또 반복된다. 야구경기처럼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도 '배치'이다. 그렇다면 이 배치를 어떻게 새로운 눈길로 포착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렇게 모여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3. 세미나에서 배치를 이루는 '속도'가 상당히 재미있게 다뤄졌다. 과학에서 자주 드는 예시를 다시 떠올려보자. 내가 덜컥거림이 전혀 없고 바깥 풍경에 변화가 없는 기차에 타고 있다고 가정하면,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엄청 빠르게 달리고 있어도 나는 그 속력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또 다른 기차가 달려와서 두 기차가 서로 마주치고 지나간다면 그럴 때 나는 내가 타고 있는 기차의 속력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일상의 사건들을 매번 같은 속도로 겪어낸다면 우리는 삶에서 전혀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힘들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중독이 많아지나??)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생명의 특징은 '불안정성과의 화해'라고 한다. 생명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생명은 끝없이 불안정하다. 그리보면 들뢰즈/가타리 말대로 탈영토화가 우선이고 영토화는 힘겹게 탈영토화를 누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속도'도 우리 삶의 저변에 흐르는 탈영토화 흐름인 것이고, 그것에 매번 다르게(?) 접속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잠재성 개념 : 탈기관체, 혼효면, 추상기계
1. 탈기관체 : 현실성은 기관들의 분절체계이다.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것은 현실적 분절체계가 아닌 다른 분절체계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이다. 탈기관체를 향한 운동이 있는 그곳에 욕망도 있고, 그 욕망이란 무언가를 생성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고전은 언제 어떻게 누가 접속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강도를 창출해내고 다양한 사유를 생산해낸다. 결국 고전이란 고정된 분절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탈기관체를 향한 운동이 가능한 배치이다.
2. 혼효면 : 탈-기관의 운동은 곧 조직화의 면이 초월적으로 규제하는 상황으로부터의 탈주이다. 이 탈주를 가능하게하는 지평이 곧 혼효면이다. 이 면에는 홈이 패여 있지 않으면 따라서 탈주선들이 그어질 수 있다. 홈 파인 공간은 우리의 욕망도 하나의 회로를 따라가게 만든다. 감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쉽게 분노하거나 혹은 원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 우리안에 그런 감정의 회로가 만들어져서 그 회로를 따라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다양한 감정 or 욕망이 있을텐데 그 다양한 것들 중에 몇가지만 쉽게 일어나도록 구조화되어(혹은 스스로 구조화한 것)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구조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리좀적으로 해체한 후 회로를 바꾸면 감정 or 욕망이 좀더 능동적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이런 해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평이 혼효면이다.
3. 추상기계 : 추상기계의 예시로는 '판옵티콘'과 '경기' 두 가지를 다뤘다. 야구경기, 축구경기, 배구경기 등 다양한 경기들이 있지만 그 안에는 승부, 선수, 규칙, 관중 등이 경기-기계를 이루는 것이다. 추상기계는 배치의 잠재성이다. 현실태를 가로질러 작동하는 공통분모. '판옵티콘'은 좀 복잡했다. 학교, 감옥, 군대에서 작동 가능한 판옵티콘은 감시자는 피감시자가 보이는데 피감시자는 감시자가 보이지 않는 기계적 배치와 훈육과 감시라는 언표적 배치를 아우른다.
 감옥이라는 건축물과 법학이라는 담론은 완벽하게 실재적으로 구분된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전제하고 서로 관계 맺음으로써만 온전한 배치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형벌 중에 독방을 쓰게 만드는 형벌이 새로 생긴다면 이에 따라 감옥에 독방도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세미나를 통해 탈영토화, 탈코드화가 더 본래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나'라는 존재도 60조개의 세포가 서로 인지적으로 통합되어 있기에 끊임없이 변이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결국 영토화가 탈영토화를 힘겹게 누르고 있다.
 
댓글목록

시나위님의 댓글

시나위 작성일

<천개의 고원>은 오르기 힘든 만큼 '오르기'의 뿌듯함이 크리라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숨가쁘게 서둘러 오르기에만 급급하지 않고 싶습니다. 오르는 길에, 여기저기 피어 있는 다양체들과 같은 속도로, 차이 생성의 기쁨을 맛보며 오르고 싶습니다.

임경아선생님, 말씀 듣고 장자의 <제물론> 읽어봤습니다만 여전히 혼효면의 개념상이 잘 그려지지는 않네요. 3장과 다시 접속해봐야겠습니다. ^L^

경금님의 댓글

경금 작성일

들뢰즈의 박식(해 보여서 기죽음)은 박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하튼 그의 그런 면모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의 그런 언어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

약선생님의 댓글

약선생 작성일

영토화가 탈영토화를 힘겹게 누르고 있는 것처럼, 소인의 마음이 우리들의 진면목, 군자의 마음을 힘겹게 누르고 있는거겠죠? ^^

임경아님의 댓글

임경아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쵸. '무지에의 욕망'이 고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을 어렵게 어렵게 누르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