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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에티카4부후기(정리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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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생의친척 작성일15-04-05 10:24 조회2,59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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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힘이 세다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생각이었다. 그동안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어쩔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쩔쩔매다가 시간이 지나면 묻어버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내가 부딪혀서 넘어지는 돌부리는 비슷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융의 성격유형을 통해 나의 열등기능이 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이성적으로 살려고 하다가도 결국 사소한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누피의 스피노자 세미나에 뒤늦게 합류한지도 어느덧 2개월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쉽고 말랑말랑하게 내가 이해하기 쉽게 요리된 책들만 읽었을 뿐이지 실제로 철학자가 쓴 것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즉 남들이 가공한 것들을 통해서만 철학자들을 이해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게 된 것은 나에게는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나 이수영씨의 자유와 긍정의 철학을 읽으면 오히려 스피노자의 주장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실제로 내가 읽을 때는 딱딱한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어 과연 이것이 그런 의미였나 당황스럽기만 했다. 나에게 에티카는 그렇게 불친절한 책이었다. 내가 관심 없어 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인 기하학을 생각나게만 하는...
 
 그러다가 이번에 4인간의 예속 및 감정의 힘에 대하여를 정리 32부터 정리 45까지 발제하게 되었다. 그동안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다른 분들이 준비해 오신 발제들을 들으면서 쌩뚱맞은 질문만을 던지던 내가 이제 발제를 해야 한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고, 또 노트에도 적어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다만 읽고 또 읽었을 뿐이다. 간단히 정리해자면 4부의 앞의 정리 31까지 인간이 왜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게 되는가?’에 대한 감정의 물리학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내가 발제를 맡은 정리 32부터 정리 45까지는 첫째, 사람이 감정에 지배를 수동적으로 받게 될 때에는 자연권을 제약받으며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사회에 종속되게 된다는 것과 둘째로 인간에게 유익한 감정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 어떤 신체가 되어야하 는 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사람들이 수동적 감정의 지배를 받을 때. (정리32~34)
  사람들은 수동적 감정의 지배를 받는 한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서로 반대될 수 있으며 동일한  인간도차도  변덕 
  스럽다. 예를 들어  베드로와 바울이 동일한 것을 원한다고 할 때, 베드로가 가진 것은 바울에게는 슬픔이  된다. 
  베드로와 바울이 추구하는 기쁨이 같다고 해도 한 사람이 이를 먼저 가지게 되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슬픔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동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는 한 두 사람은 본성상 일치될 수 없다.
 
2) 덕과 무능력에 대하여 (정리 35~36)
 이성에 따라 생활하는 한 본성상 필연적으로 일치하며,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이란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며, 덕을 따르는 사람들의 최고의 선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는 선과 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감정에 의해 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에 따라 생활하는 이고 이것의 반대는 이 아니라 무능력이다. 무능력이란 덕을 행하지 못하는 상태, 인간이 자신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면서도 외부에 있는 사물에 휘둘리고 외부상황이 요구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다.
 
3) 자연 상태와 시민 상태(정리37)
자연 상태에서 각자는 자기의 본성의 필연성에 나오는 것들을 최고의 자연권에 의하여 행한다. 각자의 뜻에 따라 자기의 이익을 꾀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보존하고 자기가 미워하는 것을 파괴하려 노력하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이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한다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이 자연권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감정에 예속되어있는 한, 이러한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은 더 강력한 감정이나 이에 반대되는 감정, 보다 큰 해악에 대한 두려움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두려움을 작동시키기 위해 법률을 정하고 이를 어겼을 때 형벌을 가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게 된다. 이것이 시민상태이다. 따라서 시민상태에서는 일반적 동의에 의하여 죄가 정해진다. 따라서 정의와 불의는 정신의 본성이 아니며, 외면적인 개념일 뿐이다.
 
4) 유능한 신체 (정리39~40)
인간의 신체로 하여금 외부의 물체에 많이 자극받아 변화시키도록 만들고 또한 외부의 물체에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유익하다. 또한 신체가 이러한 일에 유능해질수록 정신도 그만큼 유능해진다. 신체의 부분들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선이다.
 
4) 유익한 감정, 해로운 감정, 그리고 현자의 생활 (정리 41~45)
기쁨은 직접적으로 선, 슬픔은 직접적으로 악이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다.
유쾌와 쾌감의 차이는 유쾌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같은 비율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신체의 활동 능력이 증대되거나 촉진되는 것이나 쾌감은 신체의 한 부분 혹은 몇몇 부분만이 자극받아 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쾌는 항상 선이지만 쾌감은 과도할 경우 악이 될 수 있다. 쾌감이라는 감정의 힘은 신체의 나머지 작용을 능가하며 신체에 끈질기게 달라 붙어서 신체가 다른 방식으로 자극받아 변화될 수 없도록 클 수가 있다. 이런 경우, 고통이 쾌감이 과도하게 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신체가 덜 유능하게 되는 것을 막는 고통이라면, 그러한 한에 있어서 고통은 선이 될 수 있다. 사랑과 욕망도 과도하게 될 경우, 우리는 이러한 동일한 감정에 끈질기게 사로잡힐 경우 해가 될 수 있다. 또한 증오의 감정도 그러하다. 따라서 모든 과도한 감정은 인간의 신체를 과도하게 한 부분에 집착하게 하므로 해롭다. 이에 대해 현자의 욕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알맞게 요리된 맛좋은 음식과 음료, 향기, 녹색식물의 아름다움, 장식, 음악, 스포츠,연극,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누구라고 이용할 수 있는 이런 다양한 종류의 것으로 자신을 상쾌하게 하고 생기 있게 하는 것이 현자이다. 인간의 신체는 본성을 달리하는 매우 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 전체가 본성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똑같이 유능하게 될 수 있도록, 따라서 정신도 많은 것을 동시에 유능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생활방식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런 생활방식을 가진
자가 바로 현자이다.
 
후기를 마치며...  
많은 자극을 받아 변화될 수 있는 유연한 신체를 만드는 것, 신체의 모든 부분의 활동능력을 증대시키도록 살아야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발제를 마치면서 알게 된 유익한 것이다. 또한 나의 신체가 발제를 하라는 자극에 반응하여 이번 발제를 할 수 있는 신체로 변화된 것이 의미가 있었다. ^^
댓글목록

송씨님의 댓글

송씨 작성일

발제준비하시면서 신체의 변용을 느끼신 것 같았어요^^ 발제 준비도 정성껏 해주셨는데, 후기까지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