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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선 작성일10-05-14 14:00 조회4,9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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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야생의 사고] 4장 토템과 카스트 그리고 5장 범주, 원소, 종, 수의 발제를 맡았으나
4장 밖에 하지 못했다. 책이 다소 어렵긴 해도 함께 얘기할 기회였을텐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서 거듭 사과 드린다.
기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게 맞다. 나는 발제를 준비하려고 수요일까지 알바 몇가지를 해치우고
목요일부터 비워놨다가, 막상 목요일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책을 접고 뛰쳐나가 남산 일대를 산책했으며
그와중에 후암동에서 오래된 빵집을 발견, 달콤한 각종 빵을 사재기하기도 했다.
나의 일상이 대개 이러하고 지금으로서는 그런대로 즐거워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같이 공부하는 분들께 폐를 끼친 건


잘못했다.


 


대학때부터 도서관에서 여러번 빌렸었던 레비-스트로스의 또다른 저서 [슬픈 열대].
그랬던 이유는 실천적인 언어학자 촘스키에 비견될만한 업적과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곤충과 개구리 같은 것들을 좋아해서
사발모자 눌러쓰고 밀림을 누비는 생물학자나 인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조금 더 커서 한비야를 인생의 롤모델(멋진 사람)로 삼으면서, 그가 인류학자는 아니지만
세계를 나와바리로 삼아 생을 즐기고 나누고 활동하는 오지랖에 더욱 그러고 싶어졌었다.
그래서 인류학에 관심이 있었다. '인류'를 연구하겠다는 학문의 이름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인류학과에 가지는 못했다.
[슬픈 열대]에 끌린 또한가지 이유는 왠지 서글퍼지는 제목 때문이었다. 그 사연이 궁금했다.


 


 


아무튼 그런 레비-스트로스의 또다른 책 [야생의 사고]는 읽기 수월하진 않지만 재미있다.
다만 나는 불어를 모르긴 해도 제목이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말이지만 어감이 다른 '야생적인 사고'나 '야생적인 생각'으로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다른 참고자료를 보면서
이런 제목이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방식을 뜻하며 그는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고 보았음을 알게 됐다.


 


이번에 주목하게 된 점은 그가 '관계성'을 중시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있다.
불교의 연기법과 통한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레비-스트로스는 어느정도 직관적으로
우주의 이치를 감지하고 가설을 세웠고 평생에 걸친 학문탐구를 통해 이를 규명해내고자 했던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단위가 아니라
주로 결혼이라는 여성의 교환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런 단위들 사이의 '관계'라고 보았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음운체계와 마찬가지로 친족체계도 마음에 의해 생성된다는 관점이다.
그는 언어가 생기면서 모든 형태의 교환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언어적 의사소통체계가 다른 모든 교환이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야생의 사고]에서 다루고 있는 '토템' 또한 미개인, 원시인들의 미신이 아니라
각 부족의 특징적인 습속을 상징하고 부족간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사고)가 담긴
하나의 기호이자 논리적인 도구에 해당한다.
자연에 대한 오랜 관찰과 경험의 결과인 개념들이 언어를 통해 부족들의 명명법이 된다.
5장 분류학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관계성이라는 측면과 관련되는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 4장에서 내혼제, 외혼제 등을 통해 근친상간에 대한 것을 다루었다.
근친상간 금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다른' 부족과의 결혼(족외혼)을 의무화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인류 최초의 규칙이라고 했다고 한다. 내게는 이것이 비단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뿐 아니라
인류의 대표적인 관습이자 과업 중 하나인 결혼제도의 근원에 대한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읽혔다.


 


유추와 대조 등의 방법을 통해 문화적인 관습을 비교함으로써,
인류를 움직여온 '마음'을 이해하고 인류가 움직여가는 궤적을 탐사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가 흥미롭다.
공부가 짧아, 이만 줄여야겠다^ㅡ^


 


 


이번 세미나가 끝나지 않았지만 미리 후기를 덧붙이자면
이 세미나는 내게 수행으로 다가왔다.
내 나름의 목적이 있었고, 짧다면 짧지만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여러 감정이 일어났다가 지나갔다(생주이멸).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말주변이 없어서 아마 버벅될테고
글로 쓸 생각도 처음엔 했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 마음- 누구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마음대로 그린 상 -때문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세미나 전에도 알고 있었고, 그게 씨앗인지도 모르겠다. 옹졸함을 진짜 참회한다.
하여간 나를 비우고 부질없는 자의식 같은 건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를 길들이기'란
나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다는 핑계로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우리의 그릇은 유동적이다!

댓글목록

잎싹님의 댓글

잎싹 작성일

<p>현선씨! &nbsp;후기도 잘 읽었고요.</p>
<p>세미나 끝나고 남산 애래 아담하고 운치 있는 그대의 &nbsp;집에서 주신 다과도 고마웠어요.</p>
<p>함께 공부하고 얘기 나누니 참 좋네요^^<img alt="emoticon" src="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msn/msn034.gif" editor_component="image_link"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