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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8] 3주차 후기 : 반시대적 고찰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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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씨 작성일17-03-09 10:44 조회2,7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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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분샘 후기 받아서 대신 올립니다.^^ 샘이 롸긴이 안 되신대요~~



속물 수령 슈트라우스의 기이한 용기 까발리기 2탄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니 이 신앙을 검증해보자고 팔을 걷어붙입니다. 신앙 검증의 잣대는 셋입니다. 첫 번째가 천국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두 번째는 삶에 어떤 용기를 부여하나, 세 번째는 어떤 원전을 써내는가.



7장은 파렴치한 슈트라우스의 용기를 지적한 6장에 이어 독특한 용기 곧, 비겁함을 말합니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직업적으로도 단련되었겠지요. 슈트라우스는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고, 울리지만 정화는 되지 않고,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말뿐이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발언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 저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는 데서 특히 비겁함이 잘 나타나는데, 이는 말로부터 지독한 진지함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기피하는 태도입니다. 



가령, 다윈을 찬양한다면서도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해가지요. 대담무쌍한 진리를 도출할 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강자의 특권-이런 말을 끌어당기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자기편인 속물들에게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을 것이라 니체는 단언합니다. 여론의 적을 감당하는 데는 어떤 종류의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건가요? 



슈트라우스는 “원숭이나 바다표범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라.” “인간(단순한 자연존재가 아니다)임을 한순간도 잊지 말라. 다른 모든 사람도 동등하다-이것이 도덕의 정수다.”고도 합니다. 이는 설명 방식이 아니라 비약적인 명법일 뿐입니다. 발전 과정에 개인적 차이가 있는데, 인간 종의 이상인 천재처럼 살라는 압박은 무엇이며(저는 기울어진 운동장 떠올렸습니다), 강자 생존했다(-발전 과정에 개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개인적 차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할 수 있나? 이는 다윈이 기본 명제와도 충돌하는 것이요, 여기 어디 도덕 이론이 있고, 용기가 있다 할 수 있냐고 따져 묻습니다.



헤겔처럼 이성적인 것을 숭배하는 교육을 받은 슈트라우스는 세상과 존재는 혼돈이 아니며, 삶, 이성, 선의 법칙에 따른다고 합니다. 슈트라우스는 이를 우주라 부르고, 새로운 “신”앙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동시에 몰락, 비이성, 악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슈트라우스는 기괴하게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은 우연이 비이성적인 세계일 수도 있지만, 이성 자체는 필연이라 얼버무립니다. 세계의 무질서, 비이성, 몰락, 악, 고통을 이런 경계선에서 슬쩍 껴안는 것이지요. 슈트라우스의 용기는 이 한계선 앞에서 몸을 돌려세웁니다.



슈트라우스는 여론 즉, 고상하고 부유한 “우리”가 불안과 방황을 달래고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달콤 푹신한 구름집을 짓는 ‘형이상학적 건축가’라는 기괴한 역할자일 뿐이요 그의 <새로운 신앙>은 언감생심 최선, 차선조차도 아니었던 겁니다. 이러한 형편없고 절망적이며 참으로 경멸할 만한 속물 근성은 미래 세대의 삶마저도 포기케 하는 최상위의 악이라며 분노하는 니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이 원조 멍청이의 집요한 기질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인가. 슈트라우스의 특이한 용기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



슈트라우스의 두려움, “우리”의 불안, “우리”의 슈트라우스에 대한 환호, 니체의 슈트라우스에 대한 분노, “우리”에게 던지는 일침, “우리”에게 물드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  19세기 양상에 대한 지적일 뿐인데, 21세기의 제가 왜 이리 뜨금 화끈하게 되는 것인지요? 


나의 슈트라우스는 누구인가?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여론은 정당한 답인가? 나는 니체의 블랙리스트 명단 - 대담함과 연약함, 무모한 말과 비겁한 순응의 합일, 어떻게 또 어떤 문장으로 속물을 감탄시킬 수 있을까 또 어떤 문장으로 속물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를 섬세하게 생각하는 이러한 신중한 검토, 겉보기에 힘과 성격이 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결여된 성격과 힘, 경험과 우월함과 성숙을 잘난 체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혜의 결함-에서 제외될 수 있을까? 나는 천재가 아님을 부인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 이런 질문을 끝까지 물어뜯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스럽습니다. 생각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일은 천재를 압박당하는 고역입니다. 아주 잠시만 잠깐만 자세를 바꾸겠습니다. 냉장고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찾아야겠습니다. …… 없습니다. 이게 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없는 탓인 불쾌한 감정에 기쁘게 감염되며, 컴 화면을 퐁 오프합니다. 니체 쫌 신랄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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