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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들8] 3주차 후기 : 반시대적 고찰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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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성 작성일17-03-10 14:07 조회2,6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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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대적 고찰> 8장 발제 후기

8장에서는 4장에서 니체가 던졌던 질문 가운데 마지막 질문인 그는 그의 책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저술가로서의 다비드 슈트라우스에 대한 것이네요. 니체가 보기에는 속물의 신탁안내서일 뿐이지만 당시에 그의 책은 6판이나 인쇄되면서 학자들 뿐만 아니라 학생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는 그의 책이 마치 새로운 세계 고찰인 것처럼 속물 교양이나 학자들에게 비쳐졌고 낙천주의나 명랑성과 같은 가엾은 자기만족에 충실했기 때문이겠죠. 또한 학문적 인간의 모순으로서 삶이 잉태하는의문들과는 무관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듯한 편협한 지식 축적을 비판합니다. 마치 낭떠러지에 둘러 쌓여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현세적인 학문에만 몰두하고 있는 학자들의 모습이지요.

니체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가장 중요한 물음들(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나? 어디로 가고 있나? 어디에서 왔나?)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학문이 문화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학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묻습니다. ‘우리 삶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세계는 오직 예술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라는 니체의 화두와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예술)가 없는 상태는 곧 야만이고, 이는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 불쾌한 휴식, 오락의 기쁨, 소란스러운 인기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학식 있는 노동자 신분속물 문화가 결합되는 근거는 변화를 거부하는 대중들의 현실 만족 성향과 학자의 손에 의해 획일화되고 체계화된 문화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심미적 오류 불가능성으로 귀결되는데, 이럴 경우 실제로는 오류일지라도 다수의 획일적 믿음에 저항하기가 어려워지겠죠.

고전적 저술가이기를 스스로 원했던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일반적인 교양 있는 속물보다 한 단계 덜한 겁쟁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매우 한정된 경계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 속물의 용기는 덕과 과실의 중간에 위치할 뿐입니다.


근원적 의문과 같은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 가엾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동시대의 대중들(속물 교양)에 반하여, 심층적 질문들에 직접 대면하려고 하는 반시대적 지성으로서의 니체의 고민이 엿보이는 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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