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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세미나] 숫타니파타 2주차 후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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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나 작성일18-03-07 21:53 조회1,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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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주차 발제를 맡았던 근아입니다 :D
이번 불교세미나는 작년보다 더욱 화기애애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고민들을 스스럼없이 나누고 있어요 ㅎㅎ

이번 시간에는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숫타니파타나 다른 불경들에서도 '감각적 쾌락을 버리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감각을 추구하다보면 소박한 것이 구려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분별력은 그 사람을 오히려 '생활의 왕따'로 만들 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불경을 다 외웠을 때, 다른 사람 말이 안 좋게 들리는 것처럼요
요즘 사람들은 치우친 감각과 그로인한 재능보다 '평범한 몸'이 기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저도 몰랐는데 이제부터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발제문 같이 첨부합니다~


초기불교세미나 / 숫타니파타 / p.578-640 / 2018.2.25. / 오근아


오랜만에 만난 초기불교 이야기

 

2-12. 방기싸의 경

스승 니그로다 깝빠의 열반에 대한 의혹

 

방기싸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사람의 두개골 형상을 관찰하고 전생의 그 소유자의 윤회에 관해 알아맞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많은 재물을 모았던 그가 알아맞힐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윤회하지 않기 때문에 맞히려야 맞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놀라웠는지 그는 부처님의 제자인 니그로다 깝빠를 친교사로 하여 출가한다. 하지만 나중에 스승이 열반에 들었을 때, 그는 의문에 휩싸인다. 왜냐하면 스승의 손을 뒤틀어 말라 올리고 잠자는 습관을 보고 번뇌를 부순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생전에도 탁발하러 갔다 돌아오면,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이런 것도 밖으로 의심을 만들어 내니 수행하는 사람은 자는 것도, 방에 가만히 있기도 힘들 것 같다.

의혹이 든 사람 입장에서 이것을 무작정 그냥 흘려보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이런 의혹을 가지고 계속해서 수행해나갈 수 있을까? 방기싸는 이런 의혹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그는 바람이 뭉게구름을 걷어 버리듯, 사람이 번뇌의 티끌을 털어 버리지 않는다면, 온 세상은 뒤덮이어 암흑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한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이 물을 찾듯묻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찾아 묻는 것이 번뇌를 자아내는 의혹을 끊는 방편임을 방기싸의 경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2-13. 올바른 유행의 경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그룹은?

 

이 경은 위대한 모임에서 설해졌다. 로히니강에서 물을 공급받는 싸끼야국과 꼴리야국은 가뭄이 들자 분쟁을 일으켰다. 부처님은 그들이 같은 부족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려 분쟁을 그치도록 설득하셨다. 분쟁을 조정한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각각 250여명의 젊은이들이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했다. 이들이 깨닫고 나서 붙여진 이름이 위대한 모임이다. 여기서 재밌었던 것은 그들의 아내들이 다시 돌아오라고 유혹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들을 히말라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하나는 자신의 가르침에서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그룹과 그럴 수 없는 그룹이었다.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그룹은 또 6개로 나눠진다. 여기에 속하는 그룹의 몇몇 성격이 특이했는데, 6개 중 3개는 탐욕스러운 자들, 분노가 많은 자들, 어리석은 자들로 눈에 띄었고, 나머지는 사유하는 자들, 믿음이 있는 자들, 지혜로운 자들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탐진치가 있는 자들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그룹에 있는 것이 그저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탐진치가 있어야(?) 배울 것이 있고, 그러니 말 그대로 그 유익함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맞춤형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1. 출가의 경

- 어려운 말, 출가

 

아난다는 이 경에서 세존의 출가에 대해 말한다. 그는 눈을 갖춘 님께서 어떻게 출가를 했는지, 어떻게 생각한 끝에 그가 출가를 기뻐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처님은 맨 처음부터 마냥 출가를 기쁘게 여기시지는 않았던 걸까? 어떻게 생각한 끝에 기뻐할 수 있으셨을까? ‘출가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석에서는 출가란 재가의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가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나중에 승원이 건설되고 나서 승단에 들어간 자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집을 나와 승단에 들어간다는 공간의 이동 외에도 기존의 삶의 한계, 즉 소유의 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경에서 나오는 빔비싸라는 마가다국의 국왕이다. 그는 15세 때 왕위에 올라 52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신도가 되어 공덕도 많이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가자로서 소유의 매임에서 벗어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가진 지위의 딱 정반대 편에 있었다. 그의 아들 아자따삿뚜는 부처님 승단의 데바닷따와 공모해서 아버지와 부처님을 죽이고 왕국과 교단을 장악할 음모를 꾸몄다.’ 빔비싸라 왕은 이를 다행히 피해갔으나 결국 또 다시 음모를 꾸민 아들 아자따삿뚜에게 유폐 당하여 결국 굶어 죽게 된다.

빔비싸라 왕은 화려한 수레를 타고 아직 깨닫기 전의 부처님을 만나러 왔다. 그는 부처님에게 장군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하면서 그의 태생을 묻는다. 태생, 출생, 가문은 한 사람을 외적인 소유를 통해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의 물음에 부처님은 꼬살라국의 주민으로 재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출가했다고 말한다. 소유에 존재를 매이지 않겠다는 결심이 바로 출가가 아닐까? 이때의 소유는 물론 물질적 소유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각적 소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드는 의문은 앞에서 아난다가 말했듯이 어떻게 생각한 끝에 그가 출가를 기뻐할 수 있었을까이다. 부처님은 이 짧은 경의 마지막에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의 재난을 살피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러 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이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괴로움과 번뇌를 속속들이 알고 그것을 여의는 것이 평온한 상태임이 생각 끝에 정립되어 있어야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 내 마음이 기쁘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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