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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 '신을 위한 변론'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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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베어헉 작성일18-12-19 00:14 조회1,6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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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와 내년 사이에 2개월 가량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주저함 없이 감이당을 클릭했다. 카렌 암스트롱 밖에 가능한 것은 없어 보였다. 세미나를 끝내고 보니 내게 꼭 필요한 것이 거기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먼저 유튜브로 만난 카렌 암스트롱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황금룰을 실천하라.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고등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핵심교리이며 세계 4대 성인들의 공통된 말씀이다. 긍정적 표현방식으로는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며 부정적 표현방식으로는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이다. 또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랍비 힐렐은 ‘황금룰이야말로 토라(유대교의 율법)의 핵심가치이며 나머지는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을 위한 변론의 핵심 내용을 생각해본다. 내가 카렌에게서 받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실천하라, 자비를 실천하라’일 것 같다.


신영복 샘의 책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실천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 때도 실천에 대한 고민을 했었는데 카렌의 책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왜 자비와 공감을 선택했는지 설명해주고 신학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자비의 뿌리를 하나하나 훑어 주니 비로소 자비와 공감을 깊이 이해하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조금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한 믿음이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종교적 열망이라고 하며 서양에서 약 17세기 경부터 단어의 의미가 좁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의 믿음이란, ‘사랑하고, 존중하며, 소중히 여긴다'였다. 또한 ’나는 약속한다, 나는 참여한다‘는 뜻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 즉, 종교적 교리들을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믿음은 전지전능한 타자로서 신의 존재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어 주는 단순한 지적동의가 아니라 자비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스스로의 내적 의지를 확고하게 해주는 본래의 뜻을 살려낼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비를 실천할 때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가장 존귀한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공부를 해야 하는 큰아이를 일 년 동안 보아 내야하는 내게 카렌의 ‘공감, 공간 비워두기, 너로 인해 나 바꾸기’ 등은 당분간 꼭 필요한 나의 생존전략이 될 것 같다.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대화법을 감히 흉내낼 수는 없을지라도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한 번쯤 떠올려보고자 하는 욕심은 부려보고 싶다.


신을 위한 변론을 읽었으나 누군가 그래 신이 무엇이더냐 묻는다면 불행히도 그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책에서 말한 겸손스러운 모르겠다나 그 가없음을 모르겠다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가 평소에 쓰는 용어 모르겠다이다. 존재한다고 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 아니한다라고도 할 수 없는, 모든 표현을 부정적으로 밖에 할 수 없다고 하는 알쏭달쏭한 그 에너지(도 아니겠지만)


다만, 책을 읽은 후로부터 내가 찾을 수 있는 신은 기복의 신이 아니라 작복의 신이될 것임은 확실할 것 같다.


그러므로 잠시 스치는 인연으로 만났던 감사한 학동님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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