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자리서당>폭포수가 머리에 떨어지던 순간 > 세미나

세미나

홈 > 세미나 > 세미나

<혈자리서당>폭포수가 머리에 떨어지던 순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달집 작성일13-06-13 23:21 조회4,396회 댓글1건

본문

혈자리팀을 또다시 멘붕시킨 책, 베르그손의 <시론>을 지난 주에 끝냈어요.
마지막 장에서 자유에 대한 베르그손의 열렬한 언사가 폭포수처럼 제 머리로 떨어졌어요.
정말 통쾌하고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유가 이런 것이구나!!!!!!!!!!(느낌표 백 개)
머리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하튼 온몸이 리플래시되는 순간이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자유에 대한 망념이 싹 걷히고 새 세상을 본 것이지요.
자유는 순간이고 지속(운동 그 자체, 베르그손의 시간개념)이고
온전한 현재일 수밖에 없기에 뭐라고 설명할 수도 정의될 수도 없는 것.
그래서 자유는 어떤 출구가 아니라 오로지 지속을 사는 것입니다.
폭포수가 머리에 떨어지던 순간, 베르그손의 문장 하나 소개할까요.
부디 여러분도 자유를 만끽하시길. 

자유로운 행위는 흐르고 있는 시간에서 일어나지, 흘러간 시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는 하나의 사실이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들 중에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 문제의 모든 난점들과 문제 자체는 지속에서 연장성과 동일한 속성을 찾으며, 계기를 동시성으로 해석하고, 자유의 관념을, 그것을 번역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언어에 의해 번역한다는 것으로부터 탄생한다.(272)
 

KB국민~1.JPG

 
이번 주부터 정화스님이 쓰신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와 운슐트가 쓴 <의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
서양철학의 시간을 베르그손의 지속으로 경험했다면 이번에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시간을 경험할 차례입니다.
이 책은 세친 보살의 <유식 30>을 풀이한 책입니다.
유식(唯識)의 유는 오직 유()자를 써서 오직 식 뿐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식은 좀 설명이 필요합니다.
식은 8식이 있는데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여섯틀이 일상의 인식의 장을 이루는 전6식입니다.
안이비설신, 다섯가지(5)가 의()에 의해서 법화(法化, 보편적인 인식틀)되어 있는 것이죠.
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전6식의 작용입니다. 혼자 이것저것 생각할 때 인거죠.
7식은 각각의 관계를 분별하여 독립시키고 고정시키는 힘,
곧 법화작용 가운데 자아를 인식의 주재자로 틀 지운 것을 말합니다.
이때 자아를 세우게 되니까 동시에 타를 세우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자타가 서로 대립하게 됩니다.
8식은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체의 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식은 모두 하나가 된 장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답니다.
매순간 전체의 식이 동시에 흐르면서 변해 간다고 하네요.
유식은 유가 수행자들의 체험이 기록된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란 만남의 조건에 따라 매순간 변하는 연기관계의 세계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나만의 세계를 고집할 근거가 없어지면서, 나와 대상이 항상 어우러져 있는 전체 속에서 창조적인 나를 키워 갑니다. 수행을 하여 라는 조건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삶의 고정화로 인한 소외와 선악시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지혜와 자비의 열린 세계로 나아감을 말합니다.(50)
 

여기서 창조란 능력이 출중하게 된다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겠죠. 관계 속에서 충만함을 키워 라는 조건을
변화시키는 힘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또 어떤 변화가 닥칠지도 모르겠군요.(ㅎㅎ)
 

운슐트의 책은 동서양의 의학을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세련되게 글을 잘 썼는지
그냥 술술 읽히는 책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깔린 사회정치적 배경들이
지금의 언어로 잘근잘근 소화해서 뱉어내고 있어요. 기가 막힙니다요.^^
운슐트는 단순히 의학만 보지마라, 여기에 깔린 배경을 봐야하지 않느냐, 어떠한 외부적 원인이 이런 토양을 만들었느냐,
그것의 타당성은 뭐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어요. 아주 노련한 의사처럼 말이지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을 질서로 번역한 것이에요. 아주 탁월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의 의학이 탄생하려면 과학의 탄생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질서의 염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질서의 염원은 사회정치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발휘되었다는 거지요.
중국은 사회정치적 현실 참여의 의지로, 그리스에서는 자기결정권과 정치적 해방을 향한 의지로 말이지요.
이렇게 사회정치적 이상과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지향이 일단 자연에 투사된 뒤에는 자연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75)는 거지요.
이 해석이 법칙이 되고 이론이 되어서 의학에 적용된 거지요 

의학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과학, 즉 특정 법칙을 따르는 질서가 자연을 지배한다는 이론이 먼저 발달해야 했다. 이러한 법칙은 인간이나 신들이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패턴으로서 동일한 원인에 대하여 언제나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일단 그러한 규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하고, 다음으로는 그 전형적인 특징을 규정한 후, 마지막으로 인체의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을 알아내는 일련의 과정, 이것이 바로 중국 고대 의학의 발전단계였다.(51)
 

의학을 바라보는 운슐트의 시선이 다층적이고 농밀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도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내밀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여하튼 재밌고, 재밌어서 자꾸 읽고 싶은 책입니다.
 
1047644600.jpg

정화스님의 책에서는 법을, 운슐트 책에서는 질서를, 합쳐서 법질서. 이런 조합도 가능하군요.ㅋㅋㅋ
 
다음 주 세미나(6/18) 발제자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 효진
<의학이란 무엇인가> - 예진
수궐음심포경 곡택 자료조사 - 영희
그럼, 수욜 만나요.^^
댓글목록

얼음마녀님의 댓글

얼음마녀 작성일

- 매순간 현행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베르크손과 불교의 가르침은 통하고 있더군요.
자꾸만 습관적으로 과거의 원한 감정을 끄-을-고 다니면서 살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연결된 모든 존재를 괴롭게 만드는 기억들을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겠어요.
- 혼란스러운 사회에 질서를 가져오고자 하는 염원이 자연에도 법칙이 있음을 발견하도록 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운슐트의 시각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그런 자연법칙에 근거해서 의학적 가설들과 이론들이 나온거라는 이야기도요. ㅎㅎ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그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게 깊이 공감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위에 나온 법, 질서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모습은 영~~아니다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