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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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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amchol 작성일21-07-31 11:12 조회5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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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1 / 통즉불통세미나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건우

 

 

산다는 건 고통과 함께함을 알아가는 길이 아닐까

 


이번에 통즉불통세미나 발제를 준비하면서 책만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고통을 겪을 수 있었다^^ 책에 의하면 고통 자체는 설명 불가능한 것이지만 고통을 어떻게 경험하고 사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발제에서 질문을 만드는 과정은 곁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 만약 이 사회가 언론과 재벌과 같은 권력자들에 의해서만 이렇게 만들어졌다면 이 사회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구성원이다. 사회적 존재감, 친밀감, 내적 존재감의 많고 적음은 달라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각자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어떤 것들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2.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 사회의 모습은 출구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 책을 읽은 후에도 사회에 나가 활동해야 한다. 사회의 민낯을 몰랐을 때는 나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지만 이 책을 통해 나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알았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았을 때는 알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고통의 매커니즘을 알았다. 고통을 받는 다는 것은 같지만 매커니즘을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는 뭔가 다른 것을 느낀다. 그것은 무엇일까?

 

 

3. 나는 우리나라 4대 사회서비스(환자,노인,장애인,산모)의 하나인 장애인활동지원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은 고통 받는 대상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 개개인의 고통은 다르다. 적어도 나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자는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서 고통의 곁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고통의 곁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의 장애인활동지원을 받는 이용자가 스스로 고통을 이야기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고통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고통 안에서 우리는 제어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 말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고통의 곁은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통의 곁은 곁과 곁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이번 책을 읽고 고통의 곁에 있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도 장애인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언어는 상대방의 개인활동을 공개하는 범죄행위가 아니라 신중한 언어를 갈고 닦아야만 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었다. (신중한 언어를 갈고 닦은 훈련은 다양한 책을 읽고 세미나하고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나의 일에서의 존재감을 고양시키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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