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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감정의 미래 전반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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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하늘 작성일21-08-18 17:22 조회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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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미래 처음~150

황제내경 258~268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느끼는 것들.

까톡(온라인)으로 연락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다원쌤은 발제문에서 까톡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연락하는 것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하셨다. 다른 쌤들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볼까 나누는 시간이 곧 이어졌다. 까톡 연락에 대한 많은 에로 사항이 나왔다.

-       빨리 답변 하면 빨리 답변 하는대로 대충 대답하는 것 같고, 충분히 생각하고 답변하면 그만큼 답변 시간이 늦어 그것대로 또 고민이다

-       단톡방에서 알게 된 사람과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느끼는 괴리감.

-       단톡방으로 시작하는 관계에서 나는 어떻게 대화를 풀어가야 하는가? 이 온라인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       생각이 필요한 답변이라면 생각해 볼게라고 일단 답변하기도 한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온라인 세상에서 서로 가까워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빈도수이다. 메시지를 보내는 빈도수, SNS에 콘텐츠를 업로드 하는 빈도수. 질보다 양이 더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은 이런 관계가 과연 진짜인지, ‘좋아요만으로 측정되는 관계가 진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VR, 가상현실의 세계의 장단점.

많은 모금과 후원이 필요한 단체들에서는 VR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불행을 부각시키고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이를 이용한 업체에서는 그전보다 모금액이 더 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보연쌤은 이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이고, 결국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상황과 입장을 느껴볼 수 있는 VR을 바탕으로 우리는 뜨거운 감정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감정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질까? 고민해볼 문제이다.

 

또한 책에 언급되었던 죽은 사람과 만나게 해 주는 VR 같은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는 좋은 의도 뒤에는 이미 지나간 관계에 집착하게 되어 오히려 현실 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며 자라는 현대 아이들의 공감 능력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전 세대들의 공감 능력보다 더 낮다는 여러 통계자료를 보여줬다. 첨단 기술은 우리 삶을 확실히 편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타인과 교류하며 느끼는 공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어떤 업체들에서는 디지털 디바이스로 감정을 의도적으로 학습시키는 앱과 프로그램까지 출시하고 있다. 과연 기술로 공감이라는 것을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가상현실세계의 단점을 이야기하다 우리는 경순쌤의 또다른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공감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타고나는 것이 다르다는 것. 어떤 이는 그것이 굉장히 낮은 채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배워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기에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요즘 같을 때, 특히 코로나 시대에 기술로라도 서로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지적하셨다.

사실 나도 이것에 일정 부분 동의하는 것이,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기 전이라도 아이들은 이미 방과후에 이런저런 학원으로 내몰렸다. 내가 어렸을 적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 모여 피구와 고무줄을 하던 시절은 진작에 사라졌다. 온라인이 오기 전에도 이미 내 아이가 이러한 스펙을 가져야 한다고 학원과 과외로 내몬 부모들이 여러 감정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학원이 아닌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던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할까. 나는 이것이 꼭 온라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세상에서 이렇게 기술로라도 감정을 배우려는 시도에 감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책에서는 실제로 온라인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아이들끼리도 어느 정도의 도덕적인 판단을 하고 서로를 도우려 하는 사례를 많이 발견했다.

 

온라인 세계가 만든 공감의 환상.

좋아요는 과연 정말 공감의 의미인가? 우리의 소통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바디랭귀지이다. 인간은 내용보다도 바디랭귀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바디랭귀지 없이 몇 마디의 말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본질을 놓치지 않고 전달/소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말은 듣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그 누구의 진짜 동의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이 SNS이다. 그리고 이미 디지털시대가 시작되었기에 SNS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사실 이 모임에 모인 사람들 중 상당수 역시 SNS를 통해 감이당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SNS, 디지털 프로그램, 기술 등은 공감을 키워드로 등장할까? 우리는 타인과 소통하고 만나기 위해 SNS를 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대부분 하는 일은 그들을 훔쳐보는 일이다.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까지. 여기서 우리의 인정욕망이 극대화된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찾아 다니고,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슷한 이야기를 지속한다. 마치 그들의 좋아요를 구걸하듯이. 나에게 동의하는 사람들하고만 있는 것이 과연 공감일까?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기꺼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 아닐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일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보연쌤은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나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 이것은 공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지 않을까?

 사실 익명성을 띄는 SNS이기에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배설하듯 글을 쓴다. 그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것에서 문제가 일어난다.

 불교는 진즉에 인간이 감각적 쾌락에만 빠지는 것을 경고했다. 도파민의 보상체계 안에서 사람들은 더 크고 강한 쾌락을 원한다. 우리의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 기술의 가장 큰 목표이다. 이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자본이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사람, 회사 즉 자본의 입장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이른바 약자를 체험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 나(프로그램의 생산자와 이용자) 그리고 프로그램 속 인물이 나눠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산자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장점을 가지되,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좋은 작품이라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모든 것을 구분하려 하지 않고 융합하려 하였던 고전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황제내경

 

황제내경을 시작하며 경옥쌤이 시간이 지나며 낫는 병도 많은데 우리는 너무 조급해 한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굉장히 공감되었다. 지나치게 약에 의존한다든가 빨리 나으려고 괜히 이것저것 하면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떠올랐다.

 

보연쌤의 남편과의 소통과 관련된 발제문에 대해 한수쌤이 남편의 입장을 재미나게 풀어주셨다. 이어 황제내경시간답게 남녀의 차이를 몸의 차이로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남자의 XY염색체 중 Y 염색체는 짧다는 것. 이것이 공감능력이 빠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남자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공감을 하고, 여자는 본인이 경험하지 않는 것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를 동의보감 식으로 풀어보면 양기가 강한 남자는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경청에 약하다), 음기가 강한 여자는 흡수하는 기운이 강해 경청을 잘 하는 편이다.

 

장금쌤은 현대 사회에서 모든 것은 감각적 쾌락을 쓰는 데 맞춰져 있고 그렇게 정기신을 다 쓰다 보니 어쩌면 모두에게 치매가 예고된 상태는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만 한 게 아닌가 싶은 지적이 나왔을 때 아라쌤은 본인의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하셨다. 쌤의 경우 학교에서는 들어주지 않는 본인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었고, 그곳에는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인정 받는 게 즐겁다고 하셨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대 후반부터 친구들과 다른 관심사가 생겼다. 하지만 기존의 친구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 없는 이들과 그것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브런치라는 SNS에 글을 쓰며 내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이 쌓여 나중에는 책을 쓰고 상담, 강의 등의 일도 하게 됐다. SNS와 기술을 통해 나의 관심사를 키우고 발전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하였듯 기술은 우리의 감각적 쾌락에 집중하며 인간이 중독이라는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인 예전보다 더 많고 다양한 정보와 타인에게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 각자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SNS 덕분에 감이당을 알게 되고, 기술 덕분에 팬데믹 상황에서도 세미나를 할 수 있으며, 지방 및 해외에 사는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다.) 그리고 기술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 세미나 시간 말미에 나온 그 기술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각자의 가이드라인과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도구에 먹히지 않고 도구를 잘 이용해서 사람들과 더 행복하고 즐겁게 소통하며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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