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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간]에 대한 참고자료
 글쓴이 : 고구마꽃 | 작성일 : 18-09-09 18:48
조회 : 27   추천 : 0   비추천 : 0  
   횡간.hwp (16.5K) [2] DATE : 2018-09-09 18:48:14

37~38권 사이에 나오는

횡간에 관련하여

첨부 자료하나 붙입니다


횡간이란 조선시대 국가의재정 세출 예산표 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세출 예산표는 가로[]로 기재하여 가로·세로로 대조해 보는 서식(書式)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형태 때문에 세출 예산표를 횡간이라 불렀다. 정식 명칭은 경비식례횡간(經費式例橫看)이었다.

횡간에는 왕실 경비, 각사의 경비, 국상(國喪)에 쓰이는 제반(여러 가지) 경비,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 경비와 외국 사신 접대에 필요한 경비, 관료들의 녹봉, 구휼, 군기감이 수취하는 군기물(軍器物) 등이 수록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건국 초기부터 출납·회계에 관한 감찰 규정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경비식례는 없었다.

이 때문에 경비의 지출은 방만하게 운영되었다.

방만한 경비 운영은 필연적으로 백성에게 많은 공물을 거두어들이게 하였다.

횡간을 제정한 것은 방만한 경비 운영과 과다한 각사의 경비 책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고하는데요


1426(세종 8)에 방만한 경비 운영과 과다한 중앙 각사의 경비 책정을 바로잡고자 경비식례의 제정을


추진했고, 세조는 호조와 상정소에 명하여 세종대에 제정된 일부 각사의 경비식례를

궁궐에서부터 지방 고을에 이르기까지 확대 제정하게 하였다[세조실록21030]고 합니다


세조는 횡간 작성을 위해서 친히 그 예산 규모를 내려 주기도 하였고, 직접 횡간을 교정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조의 열성적 노력으로 마침내 1464(세종 10) 정월에 횡간이 완성되었다[세조실록10127].

횡간의 제정은 지금까지 일정한 지출 계획 없이 관례에 따라 경비를 지출하던 것에서 벗어나

지출 예산표에 따라 경비를 지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식례횡간의 상정에는 여러 관리가 동원되었지만, 이것이 완성되기까지 깊이 관여한 사람은

호조 판서 조석문과 김국광(金國光)이었다. 호조에서 아뢴 차자에 조석문의 이름만 있으면

그 내용을 살피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세조는 그를 신임하였다.

그는 재정에 대한 식견과 세조의 신임을 배경으로 1459(세조 5)부터 1466(세조 12)까지 호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김국광은 여러 각사[諸司]의 횡간을 상정할 때 그 추진 과정과 내용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업무에 정통하였다.

   

그런데 이때 완성된 식례횡간은 너무 빠른 시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조는 이를 개선하고자 횡간을 친히 열람하기도 하였고, 여러 차례에 걸쳐 횡간의 틀린 곳을 개정하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조가 죽음으로써 횡간의 문제점은 개정되지 못하였다.

 

그 후 성종은 세조대의 횡간을 토대로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473(성종 4) 9월에 이르러

횡간조작식(橫看造作式)을 완성하였고[성종실록4920],

다음 해 횡간식례(橫看式例)를 완성하였다[성종실록5년 윤626].

고 하는데 성종실록 37, 38권은 횡간조작식이 정립된 이후, 다시 횡간 식례를 완성하기 까지

과도기의 기간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치를 싫어하고, 절약을 강조하는 성종 시대에 이미 '절약하는' 횡간을 성종시대에 마련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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