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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후기 입니다.^^
 글쓴이 : 한정미 | 작성일 : 19-04-12 21:48
조회 : 550  
오찬영샘 (모비딕)
 
   우리의 삶을 이성으로 온전하게 어디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가? 이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에 영향력을 깨우칠 수 있는가? 허먼맬빌의 모비딕처럼 작가의 피,,눈물의 결과물처럼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왜 종교를 가졌었고,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이번 장자스쿨에서 탐구하고 싶다25살 까지 종교생활을 신실하게 계속해 왔던 찬영샘, 어느 순간부터 이게 아니다 싶어서 그만두었는데, 전환점의 시점에서 나는 도데체 무엇을 믿고 있었던가? , 신실하게 붙들고 있었던가? 종교에서는 굉장히 깔끔하고 심플한 답정너”?가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왜 살고 왜 죽는지? 당연히 하나님이 우리의 피조물 이니까, 또 살면서 겪는 비극들, 그것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불결한 인간이기 때문에...신앙을 떠난 후 정신적인 충격을 겪었고 심플했던 답들이 하얀 공백으로 다가왔다. 회사를 당장 내일 왜 가야 하는지?부터 다가왔다. 신이 사라져버린 후 만나게 된 사주명리와 감이당에 만난 자기구원신과 인간에 대한 의심을 놓치지 않는 모비딕을 만나게 되어서 더욱 운명과 자기구원에 대해 탐구하고 싶다.
 
(코멘트)
   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부흥된 것, 현재 도시인들에게 공감능력보다 답이 정해져 있다는 안도감, 내세에 천국을 간다는 것, 이런 종합선물셋트가 되어버린 종교,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순간 종교 자체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영적공감능력이 무감각해져 있다. 자신의 질문조차 잊어버리는 상황들이 생겼다. 신이 떠난 자리에 자연이라는 카오스가 왔는데, 동양은 음양오행, 운명을 컨트롤하는 자연의 법칙 대한 오랜 알고리즘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데, 서양은 아예 없기에, 자연이 뭐지? 질문이 있다. 그 흰고래, 자연이라는 난폭함, 영리함, 예측 불가능함, 내가 그것을 맞서야 운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운명을 개척한다든지, 주관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흉한일은 피하고 좋은 일은 받는 걸로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을 만났을 때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죽을 것을 아는데 기꺼이 간다는 것, 이러한 액션을 하는 인간만이 자기 구원이 가능해 진다. 그럼,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뭘까? 본인의 문제가 뚜렷하기 때문에 굉장히 장점이다. 자기의 문제를 텍스트와 잘 매칭시켜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종교에서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길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문희샘 (루쉰-외침)
   
송사를 그만두었다. 또 다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았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입을 다무는 관료조직의 현실을 보고 싶다. 새로운 방식으로 동료들과 대화하고 싶다. 지난시절 일도 열심히 했고 가정에서도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코멘트)
열심히 살았다는 안에 열심히 라는 안에 보편적이 윤리가 설정이 안되면, 나의 자아가 가 굉장히 결합이 되어 있다. 이만큼이 스트레스로 온다. 열심히 산다는 것을 엄청난 그레이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24시간 안에 사는 우리는 똑같다. 잠 줄인 것 밖에 없다. 서로 방향만 다를 뿐이다. , 명예, 며느리로써의 위상, 나에 대한 레벨이 높아짐, 선악이 없다. 길을 잘못, 또는 인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것에는 내 자아가 없어야 한다. 내 과거에 대한 전제 를 덜어내야 한다. 일에서도 사건에서도 란 전제를 없애야 한다. 자기를 힘들게 하는 또는 남을 힘들게 하는 번뇌 속에서 길을 찾아내야 한다. 루쉰은 세상이 변해도 관료주의의 습성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데 이런 시선을 배워야 한다. 무능함과 유치함이 관료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꿰뚫어본 루쉰,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할 때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얘기한 루쉰, 작은 사건에서 생명의 기준을 정확히 분석하는 시선이 필요하며 자기해부를 통해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다. 그 보는 힘을 체험을 못했다.
 
이세경샘 (안티 오이디푸스) 
-회사에 최적화된 신체가 되어가는 듯한 생명력이 고갈되어서 힘들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절실함이 없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라는 기로에 서 있다.      
(코멘트)
가족문제가 빠져있다. 부양을 한다는 것은 의식주에 기본이 되는 것인데, 지금 교환관계인 가족관계들(주로 돈) 남편과 아내,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가 가족이라는 관계를 그런 것들로 소외시켰다. 자본주의가 소외를 견디게 하는 사회라는 기계체가 고장나지 않게 광고, 드라마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체를 주입한다. 부모님과 형제의 가족관계 또는 억압과 소외를 봐야한다. 지금 인생에 질문이 없는데, 그렇다면 활발하고 편안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지금 무기력한 것은 자기 자신 한테 속고 있는 것이다. 번뇌가 없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건데, 대체로 만족 하는 것은 없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무기력한 것이다. 무기력한 것은 소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성이란 것은 지금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외부와 접촉하게 되고 외부와 공감하려고 하고 내 것을 덜어내거나 그런 것으로 유지 할려고 하는 것이다. 순환을 하기 위해서는 너의 생명력을 사람들에게 뿜어내어야 한다.
 
 
주역강의
 
한승희(풍천소축,천택리) 윤순식(천화동인,화천대유) 고혜경(지산겸,뇌지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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