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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차 후기입니다
 글쓴이 : 준희 | 작성일 : 19-04-23 11:31
조회 : 477  

20194138주차 후기입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1. 송형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발표 때 질문을 바탕으로 왜 출구를 찾고 싶어 하는가어떤 가치를 다루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감이당 홈피에 있는 일상에서 혁명하기가 흥미롭게 느껴져 감이당 공부로 이어졌다.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직업적인 활동가, 직업적인 혁명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40대 초반까지 생활인의 사회운동이란 모토로 직장인 사회운동 단체에서 왕성히 활동했다. 몸 상태, 정치 상황 등 시절이 바뀌면서 길을 잃고 답답해하던 차에 동의보감과 열하일기를 계기로 감이당과 접속하게 되었다. 지금은 출구의 문제를 삶의 태도와 자세의 문제”, “가치 전도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나를 바꾸는, 나를 극복하는 문제로 전환되었다.

그동안 사회운동을 하면서 대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의식이 들었다. 니체가 말했던 신앙을 갖는 관념과 내가 대의와 신념을 갖는 구조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신앙적인 인간의 자세와 태도, 신념을 가지고 살려는 자세와 태도로 비교하면서 탐구해보고 싶다. 이것을 내가 극복해 가야 할 친구이자 적으로 삼고 싶다.

<곰샘 코멘트>

논점이 산포되어 있다. 운동권 이력을 얘기했는데 어떤 사회를 꿈꾼 것인가? 그것과 일상에서 혁명하기가 어떻게 이어지는가가 문제로 선명하지 않다. 사회운동이나 혁명을 신앙적인 태도로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부분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혁명이라는 프레임으로 갖고 있었던 것인가? ‘개인과 조직이 충돌할 때 개인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이렇게 생각하는 게 이미 담론 안에 전제되어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데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감수해야 할까.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은 왜 멈추지 않고 나오나? 나름의 이런 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섬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니체의 말이 내 삶에서 어떻게 전복이 되는 지 알 수 있다.

지금 발표는 이미지가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어 리라이팅보다는 감상적 에세이가 되기 쉽다. 특히 일상에서 혁명하기가 눈에 들어온 것은 거기에서 생긴 결핍이나 균열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운동을 하면서 대의나 신념이 어떻게 신앙화 되어 갔는가. 이후의 일상에서는 왜 현실과 타협을 했나. 이 과정이 논리로서 포착 되어야 한다. 좀 더 깊이 내면에서의 변환지점을 들여다봐라. 망상에서 벗어났을 때는 망상기제를 이해해야 한다. 586세대로서 사회운동을 하다가 일상의 혁명가로 변환하는 자기탐구와 더불어 시대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해봐라.


2. 강지윤 <안티 오이디푸스>

나는 상담사 자질에 대한 이야기와 상담사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울컥한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17세부터 결심한 이후 상담사가 되려는 동기도 높았고, 자격을 취득하는 교육 과정도 충분했다. 나름 상담사로서 사명감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상담할 때 불편감이 생기나? 상담이 잘 안될 때마다 인간 강지윤이 문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성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상담이 잘 안된다고 귀결된다. 이 부분이 상담 내내 나를 힘들게 한다.

상담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내담자의 자살이다. 동료 중에 이로 인해 고통받는 친구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너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 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주체라는 측면을 확대시켰다. 자본주의에서는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에 괴로운 일들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모든 문제를 가족 삼각형 안으로 귀속시켰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은 억압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자유로우면서도 허탈했다. 한편으로 나는 상담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자본주의 안에서 상담이란 것이 무엇이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다.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상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

 <곰샘 코멘트>

문제 설정에 자기 삶의 성숙, 자기 내적 해방이 빠져있다. 상담이 직업이라고 해도 이 직업을 통해 나의 인간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그 안에 나의 성숙과 해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욕망은 오로지 상담을 잘하고 싶다이다. 그 안에는 내가 답을 말해주고, 내가 의도한 대로 내담자가 치료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이것은 실적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 설정을 하면 철학을 하는데 제한이 있다. 이런 의제 설정 자체가 의미가 없다. 나는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이 흐름을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배치에 들어갈 뿐, 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실적에 몰두하면 그걸로 자기를 검열하게 된다. 좋은 상담사는 결과가 반드시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상담을 통해 내가 성숙하고 세상과 접속하는 게 너무 좁아진다. 상담이 아니라 수행이 되어야 한다. 상담이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 상담을 통해 내가 변형되어야 한다. 그러면 상담할 때 자세가 달라진다. 그게 아니니까 내가 불편한 것이다. 삶을 탐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이걸 통해서 상담이라고 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배치가 바뀌는 방향으로 찾아야 한다. 왜 나를 탐구하지 않는가로 문제 설정을 해봐라.


3. 최소임 <도덕의 계보학>

지난번 발표에 그렇게 많이 누리면서도 불모의 땅이 되었다라고 나를 진단했었다. “공부하는 것은 창조적인 활동으로 안 보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굉장한 가치전환인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의 공부가 삶을 바꾼다기보다는 삶의 결핍된 부분을 해소하는 정도로 여겨 기존의 삶을 더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하는 아닌가?”라는 학인들의 추가 질문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통해 나는 그동안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었기에 스스로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상태라고 진단을 내렸을까? 나에게 공부는 뭐였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서 오게 됐지만, 감이당에서 공부를 하면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없었기에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세미나, 연극 등의 활동까지 하게 되면서 작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치열하게 보낸 한해였다. 그런데 연말이 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구원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나름으로 열심히 했는데 나는 왜 하루하루가 충만하거나 나를 긍정하지 못할까? 왜 나를 불모의 땅이라고 진단했지? 바쁘게 공부하면서 힘들게 하던 고민들도 가볍게 넘겨지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생각이 바뀌니 문제도 다르게 보이는구나.’라고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밑바닥에 있는 불안들은 해소되지 않았다. 계속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 있었다. 여기서의 공부가 내 삶을 다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니 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러니 긴장을 하게 되어 몸이 경직되고 불면증도 생겼다. 살도 많이 빠졌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이다. 공부할 여건이 다 갖춰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나를 불모의 땅으로 만든 것 같다. 열심히만 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인정을 갈망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전형적인 노예의 삶이다. 니체를 통해 내가 어떻게 노예적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면밀히 검토해보고 다른 길을 찾고자 한다.

<곰샘 코멘트>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도 중요하지만 왜 나로부터 안 나올까?’가 중요하다. 내가 주관을 해야 한다면 이때 나는 어떤 나인가? 인정 욕망에서 벗어나려면 지금의 나와 다르게 구성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멋대로 할 거야와 뭐가 다른가. 거기에선 나의 변형이 없다. 감이당조차도 하나의 조직체로 생각하고 조직에서 인정받는 것을 내적으로 스스로 검열을 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공부는 견고하게 자기 패턴을 가진 것이다. 어디를 가도 자기식으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했던 거다. 감이당에서의 공부는 특별히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각자 자기에게 맞게 하면 된다.

감이당에 처음 왔을 때 들은 자기 구원의 공부를 해야겠다.’ 이 마음이 초발심이다. 이 마음을 키워야 한다. 이를 두고 제도적 매뉴얼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그 패턴 안에 들어갔다. 열심히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닌데 스스로가 노예도덕으로 만들었다. ‘열심히 했는데 몸이 아프다이렇게 인과설정을 하는 것은 감이당을 신앙적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공부를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이렇게 하면 내가 일생을 의탁할 수 있겠어?’라고 설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모랄을 자기 스스로 정한 것이다. 이는 생리랑 심리가 심각하게 자기 소모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부를 평생 하겠어!’라는 초발심이 빠져있다.

진리나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겠다는 마음으로도 내 안이 충만해져야 한다. 그러면 내 몸이 조급하고 휘달릴 필요가 없다. 그게 빠지니 몸이 아프고, 말이 부정적으로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네트워크, 즉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면서 리듬을 어떻게 타느냐다. 그것은 우선 나의 신체가 열리고 풍만해져야 한다. 내가 왜 7년이 되도록 감이당 공부를 하고 있는가. 이게 나의 본성이다. 엉뚱한 결핍을 더 만들어내지 말고 이 부분을 일깨워야 한다. 결핍이 있어야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충분하다면 외부로 시선을 돌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결핍을 겪을까?’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내가 터득한 걸 가르쳐줄 수 있는 힘. 이렇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를 명랑하게 즐기려면 내가 왜 이 공부를 선택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본래 자기의 모습이다. 이게 있어야 도덕의 계보학이 풍부하게 보일 것이다. 노예도덕이란 잣대로 자기반성, 자기검열을 하면 죄책감을 갖기 위해 니체를 읽는 것이다. 니체는 죄책감을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나로부터 한다는 것을 멈춰버리고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공부를 할까이 부분을 고민해라. 이것이 평생 이 길을 갈거야라는 감이당 비전과 만나는 것이다.

 

<주역 수업>

오찬영샘이  지천태(소통과 안정), 천지비(정체와 단절)

이세경샘이  천화동인(동지와 연대), 화천대유(풍족한 소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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