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basic
청년 & 장년
양력 2019/10/16 수요일
음력 2019/9/18
사진방
장자 스쿨
홈 > 청년 & 장년>장자 스쿨

3학기 6주차 후기
 글쓴이 : 한수리 | 작성일 : 19-09-02 01:06
조회 : 188  
3학기도 벌써 중반을 지나 가네요.
시작하지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네요 ㅎㅎ

오늘은 승희샘, 혜경샘, 순식샘 세 분이 발표 하였습니다.
요즘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후기를 빨리 쓸까 하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타이핑을 해서 하는 방법을 써봤답니다.

날 것 그대로 담다 보니 길어졌네요.
너무 기신 분들은 진한 글씨만 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


<한승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안에 울려 퍼지는 생(生)의 목소리
- 용감하고 진실하게 자기를 창조하라


1. 연민, 창조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사랑
  1) 연민이 문제가 되는 이유 ; 삶을 부정하는 허무주의
  2) 삶을 부정하는 자들이 꿈꾸는 이상 ; 피로, 고통, 번뇌가 없는 삶, 단 한 번에 도약하                                         여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한 삶, 안락한 노동의 삶

2. 오직 삶이 있을 뿐!
  1) 차라투스트라의 비판 ; 배후세계를 신봉하는 자들,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
  2)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하나 ; 자기의 신체에 귀를 기울여라. 
    
3. 삶의 명령, 더 높은 자기를 창조하라
  1)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목소리 ; 창조의 힘의지
  2)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둘 ; 위버멘쉬가 되는 길 
     - 생명 안의 힘의지를 발견하라
     - 벗 안에 있는 위버멘쉬를 발견하라. 서로에게 용기 있게, 진실된 말을 하라.       
  
4. 위버멘쉬, 삶을 영원히 긍정하다.
  1) 언제든 다시 빠질 수 있는 허무주의 : 덧없이 사라지는 삶, 연민, 피로감, 우상 숭배
  2) 영원회귀의 수수께끼를 통해 배우는 삶의 윤리; 끝없는 수정, 영원한 창조

------------------------------------------

처음 한 것보다는 구체화가 되었어.

부제를 다는 건 자신이 없다는 거고 도움이 안 돼.

이렇게 써버리면 궁금증이 없어져.

그리고 부제인 용감하고 진실하게 하는 창조가 어떤 창조인거지?

 

연민에서 시작한건 좋아.

연민에서 벗어나는 게 핵심인 거지.

 

창조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는데

창조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서 사랑하는 건가?

사실 그게 아니잖아

 

문제는 약자가 약자를 연민하는 게 문제야

위버멘시에게는 약자가 없어.

 

동정은 같은 약자끼리 하는 거야.

그 안에 삶에 대한 허무와 우열감 만족이 있지

불쌍하다고 하면서 느끼는 위선적 만족이 있어.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하는데 그걸 교묘하게 아닌 척해.

그래서 누가 그걸 집어주면 싫어 한다고.

 

연민은 절대 나보다 뛰어 날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거야.

저 사람이 더 훌륭하게 개척해 산다는 전제가 있으면 절대 안하지.

 

우리가 지금도 많이 쓰고 있잖아.

장애인이나 쪽방촌 사람들을 마음 놓고 동정을 하면서

조금만 뛰어난 사람이 나오면 돌을 던지기 시작해.

 

어떻게 저 상태에서 성공을 했지 뭐가 있을 꺼야 하면.

 

이런 부분들을 섬세하게 해야 해 사랑이라고 퉁 치면 난감해

 

약자들은

삶에 대한 허무가 있다. 인간이 스스로 창조할 수 없다고 하는 전제가 있는 거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이끌려 져야 한다고 전제 해버리는 거야.

 

그 허무주의 하고 여기에 아까 이야기한

누군가에 의해서 구세주가 와서 영원한 행복 안락한 삶을 줄 꺼야.

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걸 될 때까지 하는 게 약자인거야.

 

허무주의는 모든 결핍을 찾아내는 거야.

스카이 캐슬에 살아도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

이런 설정이 있으니까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

끊임없이 기다리는 게 허무주의지.

 

지금 니가 보고 있는 연민의 늪 이게 일어나는 사례를 알려줘야 해.

그래야 이게 삶의 기술이구나를 알 수 있어.

너무 수사적으로 가지 말고.

나는 어떤 연민을 발휘하다가

드디어 창조적으로 발언을 했다는 식의 예를 들어봐.

그래야 이 철학이 무기가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 수 있어.

 

니체의 말을 수사학적으로만 바꾸면 듣기 좋은 말일뿐이야

 

이것 때문에 겪은 번뇌가 포함이 되야 철학이 살아 움직이게 돼.

 

오직 삶만 있다.’ 이걸 하는 거다.

 

죽음을 설교하면서 저 어딘가에 뭐가 따로 있다고 느끼는 이런 것들에 대해 동경하고 처다 보고 우상화 하는 것을 끊어야 해.

연민을 지배했던 가치를 깨부수는 일을 해야지.

 

삶은 안락하고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냐

생명은 변화, 봄여름 가을 겨울을 겪어 나갈 뿐이야.

봄은 봄으로써 충분해. 여름은 여름으로서 충분하고.

 

그런 식으로 확실하게

니체의 말을 내가 재해석을 해줘야 해.

니체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

그건 책임을 방기하는 거야.

너만의 언어로 바꿔줘야 해.

 

과거에 대한 미련에 빠지지 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에 치우치지 않는

그럼 내 신체의 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돼.

 

이걸 가지고 어떻게 상황을 타계하고 생각을 바꿨는가 그걸 말해야 해.

 

거기서 경험한 자산을 가지고 이제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게 뭔지가 있어야 하지.

 

세 번째가 중요한데

생명에 귀를 기울였더니, 더 높은 자기, 초인이 되라고 했는데

여기가 문제야

 

나에게 귀를 기울였어.

이 창조하는 힘의 의지가 뭘까

그게 내 몸 안에 어디 있어?

 

신체 생리학에 관심을 가진 게 니체의 특이성이야.

 

생식의지 에로스, 성욕

그걸로 창조하는 거야.

그걸 아니면 뭘로 창조하겟어?

 

색스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복잡하지.

그런데 아이를 봐.

저 겸제를 보면 거기에 죄의식, 죄책감이 없잖아.

생산을 하잖아.

 

니체를 보면 생식의지와 출산. 암송아지 타령이 많이 나와.

 

남자는 애를 못나, 물론 여자도 애를 못날 수 있어.

그러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니체는 그걸 생식에 비유하는 거야.

가치도 성욕에서 나온다고.

뭘 낳고 싶은 게 에로스고 성욕에서 나오는 거야.

 

삶을 창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몸의 호르몬이 하는 거지.

 

이걸 용감하고 진실하게라고 하면 애매해져.

 

니체는 분명히 말을 했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그게 생명을 창조하는 메커니즘과 같기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종교적인 현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거야.

부처는 자기 성욕을 바꿔서 연기법을 깨달았어.

그게 없으면 못해.

그 욕망 자체가 없으면 할 수가 없다고.

 

 

금욕은 욕망을 누르는 거야 우리는 그게 종교라고 착각하지

 

하지만 진짜는 욕망을 바꾸는 거야.

기독교는 생리적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비판 한거야.

 

모든 금욕은 실패해.

다이어트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식욕을 눌러서는 실패하지.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가치도 창조하지 않으면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결합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가치를 창조해야지.

다른 건 없어.

 

부처 공자 노자가 깨달은 이유는 그만큼 남자는 성욕이 절박하기 때문이야

 

여자는 애를 낳으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생명창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서 문제지

 

요즘은 여자도 애를 안 낳으니까

다 철학을 해야 해.

 

철학하지 않으면 계속 결핍이 생기고 나만 손해가 돼지

그게 연민에 빠지는 거고, 서로를 동정하면서 감동을 연출하고 박애주의로 가게돼.

 

생식, 생산, 암소를 확실하게 봐야해.

여성을 비하하는 것 같지만

다시 잘 읽어 보면 생산이 핵심이야

 

신체를 자기가 본다는 건 명료한 거지 애매한 게 아니야.

힐링이라든가 자기계발은 이런 말을 몽롱하게 하니까

말이 안 되지.

 

위버멘쉬 그러면 엄청 슈퍼맨이 되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거야.

모두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거고

확장하면 부처고 공자가 되는 거고.

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것

그게 바로 결핍이 아닌 생산이야.

 

그렇게 창조를 하는 거야.

어제 못 했으면 오늘 다시.

어제 못 했어 그럼 실패 했어가 아니라

오늘 상황에서 다시 리셋하고 시작하는 거야.

 

아이가 실종 된지 9일째라면

오늘 내가 태어났는데 애가 실종 된 채로 내가 태어난 거야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하자하는 거야.

 

태어나면 엉망진창인 채로 시작하잖아.

뭘 내가 정할 수 있어.

부모도 환경도 다 정해진 채로 태어나잖아.

새로운 하루의 시작도 그런거야.

처음 태어난 거나 매일 깨어나는 것은 같아

 

거기서 부터 사는 거야.

 

아이는 삼시세끼 먹고 몸을 키우고 하면 하루를 살아.

 

이게 자연의 창조와 리듬을 타는 거야

엄청난 창조를 하고 도약하는 게 아니다.

 

니체의 한계는 말을 너무 멋있게 해가지고 속아 넘어가게끔 돼있다는 거지.

 

그걸 넘어서려면 자기 자신이 경험을 해봐야 해.

그럼 여기에 쓸 말이 많아 질 거야.

 

영원회귀는 여기서 핵심이 아니야.

여기서는 연민을 극복해서 창조로 가야 해

그런 제목이 나아.

 

4번은 영원회귀 대신 마무리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네.


-------------------------------

 <고혜경, 장자>

통념을 넘어

1. 진정 잊어야 할 것. 

 “사람은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을 잊으니 이것을 일러 ‘진짜 잊는 것 성망’   이라고 한다.” 

* 수레 천 대를 그늘로 덮는 나무---처음엔 재목이라 생각하고 반함.

* 지리소(못난이)---그의 뒤틀린 모습을 보고 비웃었으나 그는 누구보다 일상을 잘 살아냄

* 뒤집기의 달인 장자---애태타(추남), 인기지리무신(절름발이에 꼽추. 언청이), 옹앙대영(커다 란 혹부리) 이들의 공통점은 군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 군주는 이들의 모습을 기준으로 함. 정상, 비정상 등의 경계가 흐려짐 

* 특정한 방식에서 벗어나면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우리는 형체를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요즘은 ‘봄’의 선입견을 줄이기 위해 블리인드 면접


2. 외발로 우뚝 섬

* 자기 수양에만 전념했던 왕태-- 사람들은 빈 마음으로 가 무엇인가를 가득 안고 돌아온다. 그를 본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 백혼무인의 제자 외발이 신도가와 ‘대신’ 정자산 ---정자산의 ‘대신’ 정체성이 신도가에 의해 깨지며 정자산도 한 인간으로 돌아온다.


3. 우리 모두 옹앙대영. 혹과 혹들의 부딪힘.

* 부득이한 각자의 현실들---시공간, 보고 듣는 것의 제한 된 조건이 큰 혹을 짊어짐과 같음. 이 혹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

* 관계로 만들어진 삶에 마주치는 상황들---이미 만들어진 고정관념을 절대기준으로 삼으면 경계만 굳어져 폐쇠적이 됨.


4. 현장을 한 발짝 떠나보기

* 덕충부의 마무리 성인무정---인간은 누구나 감정과 그에 대한 반응을 함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감정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장자의 뜻은 감정에 시달려 삶을 훼손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을 일러 ‘성인’ 이라함.

* 무정---대상을 나의 자의식이 투영된 특정한 가상의 존재로 여기지 말 것. 시비를 조망하는 것. 나와 타자 사이의 간격.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음. 


장자는 모두가 정치, 정복전쟁을 얘기할 때 개인들의 삶을 논했다. 장자가 품은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각자가 소통과 공감이 원활하며 존재들이 커지기를 바랐다. 우린 다른 형체와 구체적 현실을 살아간다. 서로 다름을 다른 방식으로 공유하고 실재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무정이라 생각한다. 

----------------

통념을 넘어라는 제목이 전혀 전달이 안돼.

통념이나 전제를 뒤집는다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뭐가 통념인지가 나와야  하고 그게 어떻게 뒤집히는지 나와야지.


감정에 거리두기 한다...

통념이 감정인가?

어떤 걸 넘어 서는 것인가?


외형에 대한 가치 판단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돼는 거야.


이미 결정이 돼있으니까


옜날 미스코리아는 키가 작았어


시대가 그렇게 결정해서 주입을 받은 것 그게 통념이야

눈에 보이는 거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거에 분별하는 세팅이 되있는 거지


키크고 가슴이 크고 이런 걸 미리 세팅해서 미추를 결정하는 거야.


이건 통념을 인정하는 내용이야


스스로 제목을 다시 생각해야 해.


잊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걸 선명하게 정리를 해야 해.


잊어야 할 게 통념이겠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장자가 얼마나 신랄하게 했는 지를 쓰고

예로써 외발로 서는 존재.

왕태 신도가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통념이 전복이 되나 봐야지.


생명이든 기운이든 뭐가 통념을 전복시키는지 그걸 정리해야지.


혹들의 부딪힘은 계속 어떤 혹과 혹 사이에 부딪친다는데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

변화무쌍하다는 건가?


여기 설명들은 그냥 장자를 읽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을 말하고 있어.


자아를 덜어내는 대 초점인건지

혹을 내려놓는 것인지

견해를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주장이 무엇인지 선명해져야 해.


성인 무정...

무정하다는 건 사사로움 감정과 이해관계에 시달리지 않는 것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건 너무 뻔해

감정이 뭔지가 또 문제고.


감정은 내 소유와 쾌락을 증식시키려는 게 대부분이야.

이런 게 선명하지 않아.


그런 것으로 부터 벗어나는 차별과 우열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자유

그런게 장자의 이야기지.


뭔가 쓰려는 순서는 알겠는데

이런 식의 사유가 내 삶의 어떤 유용함이 되는 가가 나와야 해.


장자 안에는 사례가 많이 되니까 내용을 충분히 쓸 수 있는데

나는 왜 통념을 벗어나려고 하는 건지.

어떤 삶에 묶여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 이런게 연결이 되야 하는 거지.


혹 달고 살고 외발이로 살고 극단적인 예야.

그러면 장자와 내 삶이 따로가 돼버려

공중에 떠 있는 거지.


본인이 어떤 통념과 전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가 명료해야 해.

그래야 제목이 나오게 돼.


두루 뭉실하고 애매한 건 생각을 거기까지 밖에 안 한 거야.


남은 시간 동안 말이 되게 해볼 것!

--------------

<윤순식, 도덕의 계보>

정경부인, 체통(體統)을 벗고 자유를 만나다



1. 내 삶엔 내가 없었다

- 바깥만 살피느라 보지 못한 ‘나’. 너무 오래 외부 세계만 바라보며 살았다.

-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영 부자연스럽다. 시도 때도 없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 내가 선택한 건 금욕적 삶 : 순종, 희생, 친절, 겸손, 친절, 동정, 열심

- 더는 대가가 보상되지 않자 무기력한 중년이 되어 허무에 빠지다. 


2. 병든 공기, 금욕적 이상주의  

- 니체가 말하기를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의 충족을 금지하는 금욕주의자는

 ⓵자신의 의지나 욕망 자체를 제거하고  ⓶기계적인 활동에 몰두하며  ⓷무리를 형성하고

 ⓸자신의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고 ⓹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선한 인간’을 지향한다. 

- 내가 살아온 삶이 그러했다. 바깥에 집중하느라 내 욕망은 완전히 거세된 정경부인의 삶. 나는 왜 금욕적 삶을 추구했던가? 금욕을 통해 어떤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 이 모든 금욕을 추구하는 행위로 얻은 ‘아주 하찮은 우월감’이라는 행복감은 더없이 강력한 위안제이다. 주변인들의 칭찬과 부러움, 집안에서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 선한 사람이 권력자라는 굳건한 믿음...

- 그러나 금욕적 이상주의는 성직자들이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무기력에 빠진 약자들에 주는 마취제 같은 것, 그들이 말하는 내세나 유토피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다. 약자들 이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가족, 성공 등) 고통을 견디면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 니체는 금욕적 이상주의를 병든 공기라 했다. 병든 자가 건강한 자를 병들게 한다. 


3. 금발의 야수 VS 길들어진 인간

- 금욕적 이상은 현세를, 삶을 부정한다. 왜 우리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향해 가는가?

  현세를 긍정하는 도덕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가 어떤 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지 봐야한다. 

  → 가치의 가치를 물어라. 이것이 과연 진리인가? 그것들이 여전히 가치 있는가? 

- 하나의 진리란 없다.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진리란 초월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외부에 

  있지도 않다. 자신 이외의 어떤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의 윤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을 강자(주인, 금발의 야수)라고 했다. 반면에 외부의 도덕이나 규율에 굴복하며 사는 사람을 약자(노예, 길들어진 인간)라 했다. 

  나는 주인으로 살 것인가? 영원히 노예로 남을 것인가?

-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의 윤리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 자기의 관점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방향을 바꾸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물어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


4. 정경부인, 체통(體統)을 벗어던지다 

- 니체는 내가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행함으로써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 했다. 진정한 해방은 우리를 구속했던 것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발전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 이제 니체를 통해 내 금욕의 계보학을 되짚어본다. 나를 엄숙한 금욕으로 옥죄었던 가치를 하나하나 바꿔나가고, 거기서 어떻게 생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자. 진정한 강자로서 삶을 지배하기 위해 내가 키워야 하는 건 ‘나의 선함’의 계보를 따져 보는 것. 

  그래야만 약자 도덕이 아닌 강자, 주인의 도덕으로의 길이 펼쳐질 것이다. 

----------------


지난 번 레포트에서 많이 달라졌네.


자유를 만난다고 하는데

어떤 자유를 만난거지


뭘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거야?

금발의 야수는 왜 나왔지?


자기 윤리를 만든다고 했는데

윤리를 만들어야 체통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자유가 되는 건데


자기가 했던 걸 금욕적 이상주의로 분석하고

니체의 말로 요약을 했어.


그걸 적용했더니 이런 게 있어

계보학적 탐구를 해서 금발의 야수 강자가 되겠다 하는데

그러면 어떤 윤리를 창조하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 창조를 하는 거지?


분석을 한 거에 비하면 

사슬을 뚫고 나가 서있는 모습이 너무 초라해


감정대로 산다?

그건 철학을 배우기 전 단계야.

내가 모든 걸 다하고 권력을 틀어쥔 건 권력 욕망을 가지고 산 거야.

자기 권력을 막 휘두르고 산거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는데 금욕적 이상주의라는 건 안 맞아.


다시 자유와 감정에 충실하자 하는 건

철학 하나마나야.

어떤 윤리와 자유를 창조하는 가 그거를 여기서 자세히 풀어야 해.


내가 근거한 가치의 근원을 뒤엎는 것

그걸 하는 게 핵심이야.

그걸 벗어났을 때 윤리와 자유에 대한 방향은 설정은 돼야해


기껏 벗어나서 감정대로 쾌락대로 살라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게 선명하게 잡히지 않고 있어.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망치를 휘두르고 있지 않아.


지금 철학으로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로 들어가지 않고 있어.

달라진 건 권력의지를 발휘할 상황이 없어진 것 뿐이야.

시부모가 돌아가시면서 휘두를 때가 없어진거지.


그러면 그것이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이 행동할 거야.


권력의지가 아닌 생의 의지로 바꾸는 전환점에서 계보학이 중요한 거야.


니체의 철학적 업적은 바로 계보학이야.

이전 철학은 어떻게 좋은 가치를 구현할 까만 생각했지.


그런데 니체는 처음으로 이 가치 자체에 물은 거야.

‘이런 게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지?’


내 권력의지가 충만하니까 상식적인 가치와 덜컥 부딪히지


지금 까지는 권력의지를 사용하며 살았지.


내가 오랫동안 제사를 했으니까 다른 가족들도 해야.


그러면서도 저 사람이 나만큼 하기를 바라지 않아.

그래야 내가 이 비난의 근거를 가지고 있을 수 있거든


그 사람이 나만큼 하기로 바랬어?


친절, 희생이 문제야.


이런 식으로 사는 아줌마들이 많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살고 나중에는 식구들에게 따돌림 당하지.


그러면 이 사람이 약자인 것 같지만 옆에서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어.


생색내고 사람들을 휘두르니까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질리지.


드라마라면 또라이 동서를 놓아서 연민하게끔 만들지.


우리가 그런데 쩔어 있다구.


내가 생색낼 때 제가 나보다 못 할때 좋아하지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제는 저거 보라고


우리의 천박한 탐욕이야.


이런 걸 봐야 변해.


충분히 망치를 휘둘러서 파고 들어가야 경계가 늘어날거야.


-----------------

주역 시간에는 건, 해, 손, 익, 쾌 다섯 개의 괘를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저번 2학기 낭송 대회 때 패스하지 못한 멤버 들은 벌칙으로 패스한 순식샘은 자원봉사로 함께 카페 청소와 청을 담았답니다^^



page.jpg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한승희   2019-09-02 12:48:32
답변 삭제  
완전 음성지원 후기네요ㅋㅋ 확실히 생생합니다ㅋㅋ 쓰느라 고생하셨어요 성준샘^^
맨앞이전다음맨뒤
이전글 다음글
목록

감이당| 주소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79-66 깨봉빌딩 2층   전화  070-4334-1790

copyright(c) 2012 gamidang.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