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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7주차 후기
 글쓴이 : 한정미 | 작성일 : 19-09-15 20:11
조회 : 109  


3학기 7주차 장자스쿨 후기

 

 

발표자 1조 이문희 (루쉰 외침”)

2조 오찬영 (허먼멜빌 모비딕”)

1조 이세경 (들뢰즈, 가타리 앙띠 오이디푸스”)

 

* 발표자의 큰 제목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혁명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문희-

 

1. ‘그게 그거라고?

2. 외침소리를 들으려면 어떻게 하지?

3. 각성

4. 일상에서의 혁명

 

곰샘 멘트 :

- 틀은 기본으로 하더라도 내용 전체를 분류하지 말고, 항목의 두드러지는 줄거리를 가져오도록 하고 다른 부분에 섞여 있는 것들을 잘 분할해서 유연하게 배치해야 한다.

- 2번째 항목에서 왜 루쉰이 100년 이전의 글들과 차이가 없냐고 했던 것을 드러내도록 해야한다. 혁명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 혁명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혁명이후의 사람들의 마음이 옹색하고 더 노예화됐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해당된다.(: 야단법석, 두발이야기가 해당)

- 3번째 항목은 그럼, 혁명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는 가? 그것을 루쉰은 묻는다. 작은 사건이 나오고 광인일기 등에서 나오는 내가 식인에 동참했다라는 것처럼 큰 각성을 하는 것, 루쉰의 고향에 나오는 길은 원래 없고 누군가가 가면 길이 된다”.는 것처럼 고향과 결별하는 자신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스스로 고향으로 갈 생각이 없어진 그 상태를 표현한 것, 그런 각성이 나오는 것처럼 2-3편 정도로만 정리.

- 그럼 결국은 혁명은 일상인데, 일상은 결국 내 욕망과 습관 2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바뀌어야 혁명이라는 것, 욕망과 탐욕과 광적인 열정, 향수병에 휩싸여 있으면 바뀌지 않는다. 습속, 관행, 그런것들이 제일 심한 것 아니냐? 습속에 쩌는 집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습속의 견고함과 투쟁하는 것, 루쉰을 읽으면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것, 그런 스텝으로 내가 아는 만큼 이해되는 만큼 진솔하게 표현하자.

 

 

<고래사냥, 두 개의 항로를 따라서>

-오찬영-

 

1. 문명의 무지, 야만의 앎

2. 에이허브, 광기의 날개를 단 프로메테우스

3. 이스마엘, 바다 위의 방랑자

4. 광인과 방랑자의 교차로

 

곰샘 멘트:

 

- 스토리는 재미가 있다. 논리적으로 메워야 한다. 문명의 무지와 야만의 지혜겠지. 여기서 핵심은 문명에서는 죽음, 이것을 모르면 두려움에 빠진다. 무지와 두려움은 하나 다. 생을 모르니 죽음도 두려운 것이다.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숙명이다. 이것을 벗어 나려면 생사의 원리를 마주할 수 있어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허브는 어떤식으로 자기의 운명과 마주했고 이스마엘은 어떤 식으로 마주 했다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 서양 사유에서 운명과 마주한다는 것이 동양과 다르다. 동양은 자연과 소통 융합하는 길을 가는데, 서양은 자연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카오스로 느낀다. 그것이 리바이어던이다. 자연은 대책이 없고 종잡을 수 없고 압도적이다. 또 신은 이것으로 인간을 시험한다. 성경에도 그렇고 여기에 복종을 하거나 신을 경배함으로써 두려움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내가 이 괴물과 맞서겠어하는 인간들을 영웅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자연, 카오스는 에로스적 충동이다. 대책도 없다. 광기다. 연애에 빠지면 이성을 잃는 것처럼, 이것이 모비딕이다. 자연과 싸우려면 내 안의 광기 카오스로 싸워야 한다. 더 쎄게 더 강하게 끊임없이 약탈하고 멈추는 것이 없는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남근주의)이 있다. 그것이 서양문화의 근원이다. 정력이 좋을수록 더 결핍을 느낀다. 내안의 야만을 끌어내서 이 괴물과 싸우는 것이 신의 시험에 맞짱을 뜨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이길 수 없기에 죽음충동이라고 한다. 그것을 영웅화 시키는 것이 서양문명이다. 기본패턴이다. 그런데 죽으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그런 것이 감동을 주는 것이다. 무한한 확장을 위해서 맞짱을 떴는데 그 순간 다 내려놨는데 나중에 되면 목표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지고 모비딕과 일체가 되는 느낌, 그래야 결핍이 생산되지 않고 해방감을 느낀다. 에이허브, 프로메테우스의 행로, 결핍, 확장, 대결, 죽음, 시지프스, 저주의 수레바퀴 즉 윤회다. 왜 인간은 이토록 결핍을 감내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괴물을 마주해야 하는가? 마주치고 싸우며 죽는 그 순간에 자유를 얻는 짧은 시간, 비극적이고 숭고함, 그것에 대한 분석을 조금 더 해야 한다.

- 그렇게 다른 흐름의 설정, 지와 사랑, 에로스와 로고스, 미친 듯이 광기와 열정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 옆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는 존재들이 있다. 이스마엘 같은 늘 비주류, “이 아니라 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전환, 그렇게 방향을 바꾸면 모비딕은 두려움이 아니라 귀여운 고래가 된다. 다른 흐름의 설정, 영지주의 같은 것, 범신론적인 문명을 대하는 다른 태도를 가진 존재들이다. 이렇게 에이허브와 이스마엘은 두 개의 길을 가지만 공통점은 운명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 부분은 4학기로 넘기더라도 두 개의 행로에 대해 깊이 있게, 문화사적 인식의 구조, 그 지점을 조금 더 심화를 시켰으면 한다.

 

 

 

<욕망 기계들, 혁명적 삶을 열다>

-이세경-

 

1. 우리의 뜨거웠던 혁명은 어디로 사라졌나?

2. 자기 포기의 인간이 태어나는 곳, 스위트홈

3. 자본주의 만세! 돈을 가진 만큼 세상과 연결되리라

4. 이름을 갖는 자의 숙명, 미친 파시스트

5. 혁명, 내 앞의 기관 없는 신체와 욕망 기계 사용하기

 

곰샘 멘트:

 

- 철학을 생산하는 것이 나와야 한다. 제목 1-4까지는 앙띠오이디푸스 개념을 요약해 놓았다. 그것은 너의 노래가 아니다. 철학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개념이 활용이 되어야 하지만 요약은 그런 개념들이 난해해져서 설명하려고 애를 쓰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해를 했다면 주체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써야 한다. 기관 없는 신체도 개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그 반대가 유기체인데 유기체가 되어버리면 결합한 상태에서 굳어버린다. 유연성이 없어지면서 하나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같이 사라진다는 유기체적인 움직임이다. 그래서 주체로 귀환을 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애기들은 주체가 없기 때문에 온몸으로 기능, 표현을 다한다.

- 이 글의 문제는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혁명이 없고 글의 에피소드도 전형적인 자본주의 생산이다. 이 글이 문제의식이 잘못 되었다 보니 나머지는 자연히 설명을 많이 하게 되어있다.

- 스위트홈, 화폐, 주체에서 자신이 혁명하고 싶은 어떤 것인가? 욕망기계가 뭔가? 내안에 결핍이 아닌 순수한 생산으로써의 욕망이 작동한 적이 있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 봐라. 그것이 곧 내 안의 68혁명이다. 자신의 혁명의 내용이 나와야 한다. 결핍에서 생산인지, 소유에서 창조인지, 주체에서 기관 없는 신체인지, 내용성이 뭐가 있어야 한다. 내 욕망을 결핍으로 만드는 것이 무얼까? 돈인지, 주체인지, 어느 것인지 선명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철학을 해서 내가 새로운 주체든 창조가 일어나는 그 과정을 보여주면 그 개념은 거기 다 들어가 있다.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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