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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8주차 후기
 글쓴이 : 라뇽 | 작성일 : 19-09-22 23:57
조회 : 140  

3학기 8주차 장자스쿨 후기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처음 장자스쿨에 들어와 엄벙덤벙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학기 마지막 시간이라니요! 태풍 타파가 스산한 바람과 음울한 대기를 드리운 토요일이지만, 예외 없이 수업은 계속됩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등판한 타자 두 분은 송형진쌤, 강지윤쌤이십니다.

 

1. 송형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니체

 

*강의안

대지에 충실하라

 

1. 무엇을 믿는다는 것

- 고정불변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의지와 위로, 안식과 유의미함을 부여한다.

 

2. 형이상학 지반의 해체: “신은 죽었다

- 고정불변하며 절대적인 존재는 없다.

- 신을 탐구하며 절대적 기준과 목적지를 설정하는 형이상학/도덕/목적론은 해체되었다.

- 살면서 무언가를 믿으려 하는 신앙적인 자세와 태도를 극복하라.

 

3. 믿음의 오류

- 세상은 우연에 의해 생성된 것일 뿐이며 객관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하여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성에 의존하는 안락과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데, 사실 행복이란 인간 힘의 상승과 고양의 부산물이다. 여기서 신체성과 감각이 강조된다. 감각과 욕망은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4. 믿음을 뛰어넘어라! 자기극복을 위한 니체의 처방들

- 운명애: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 세계는 놀이터

- 지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 시도와 물음, 그 모든 것이 너의 행로가 될 터이니.

 

5. 다르게 산다는 건 뭘까?

- 자기 극복을 체험하면서 순간이라는 성문을 계속 지어나가는 것

- 신념과 믿음이 내 삶의 충일감과 상승 의지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감히 물어 뜯어버려야 할 뱀대가리일 뿐.

- 영원회귀의 질문: “삶의 모든 순간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반복되기를 원하는가?”

 

*곰쌤 코멘트

: 대중지성의 중요한 지점은 내가 철학을 배우고 삶의 기술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이다. ‘니체가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의 기술로 쓰느냐를 표현하는 거다. 그게 대중지성의 글쓰기다. 이 강의안은 원고 쓰기 전에 정리 메모 단계에서 나와야 한다. “대지에 충실하라!”고 니체가 말했다면, 내가 왜 대지에 충실하지 못하게 살아왔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가진 대지적이지 못한 사유가 있다. 그럼 니체를 읽고 나는 어떻게 그걸 바꾸지? 이렇게 질문을 던질 때 내 언어가 나온다. “대지에 충실하라”, 이 말은 아직 니체의 언어다. 여기에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의 언어가 혼합될 때, 비로소 니체를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니체를 만난 대중지성이다.

금토성 포함해서 서양철학을 고전으로 선택한 학인들의 특징이 있다. 서양철학 고전들이 말을 너무 멋있게 해서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동양철학 고전들은 또 말이 너무 소박하다. 그래서 착하게 사세요.’라는 진부한 말 밖에는 안 나온다. 여기서 어떤 힘이 나오겠는가? 그런 말을 읽고 누가 자극을 받는가?

언어라는 건 사회적 장에서 유동한다. 지금 내 삶을 팽팽하게 조이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이게 대중지성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글쓰기다. 교수들은 문헌학적으로 개념을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이게 아카데미다. 삶의 기술로써 철학을 무기로 쓴다는 건 아카데믹하지 않은 방식으로 고전에 접근하는 것이다.

1번에 무엇을 믿는다는 것’, 이 문장을 한번 보자. 믿음이 나쁜 건가? 모든 것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대중지성도 믿음 없이는 안 된다. 발심이 필요한 것이다. ‘저것이 진리다, 저것이 나의 비전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나쁜 게 아니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쓰면 안 된다. 이분법, 이원론이 핵심이다. 그럼 제목이 이분법을 타파하라던지, ‘이분법을 넘어서같은 제목이 나온다. 내가 왜 이분법에 사로잡혔을까? 거기에 딱 맞는 말이 나와야 니체와 나 사이에 사유의 케미가 생겨난다.

그 다음, 2. ‘형이상학 지반의 해체’. 이렇게 설명식으로 하면 안 된다. 니체는 너무 많이 알려진 철학자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다들 대충은 알고 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니체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를 보여줘야 한다.

독자들에게 단순히 니체 이론을 요약한 수준이 아니라, 어떤 임팩트를 안겨주고 자극을 주려면 결국 나한테 물어보는 글을 써야한다. ‘이게 왜 나한테 절실한 문제인가?’ 이 질문에서 나오는 말들을 써야 한다. 그게 목차를 구성해야 한다. 지금의 목차는 레포트를 쓴 것이다. 니체한테 끄달려서 단어만 따라가는 글쓰기를 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독자가 그냥 니체 책을 사서 읽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화두를 던지면 니체의 말을 모두 관통하여 엮을 수가 있는데, 화두가 없으니 정리하는 데 치중하고, 뭐 하나 빠뜨렸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목차만 보면 대학원 신입생의 레포트다. 정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 이건 오히려 내가 책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소화를 했다면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내 언어로 글을 쓰게 되고, 내가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매여 있는 것에 대해서 매여 있다고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철학이고 진리다. 5번 마지막 부분은 삭제하라.

여러분은 책을 써야 한다. 책을 쓴다는 건 무차별적인 대중과 마주한다는 거다. 세상에 나가서 강의를 해야 한다. 이게 싫으면 여기서 공부하는 의미가 없다.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학원 가서 편하게 공부해라. 그런데 대중지성의 글쓰기는 삶의 기술로써의 인문학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야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고도,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사람에게도 철학의 이로움을 알려줄 수 있다. 내 사상적 고투가 드러나야 한다.

 

*후기

: ‘이렇게 쓸 거면 대학원에 가세요!’라는 곰쌤의 일갈에 덤덤하게 목차를 바꾸겠습니다!’로 맞받아친 형진쌤. 두 분께서 티키타카하시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3학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고전의 지혜와 내 질문을 섞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장자스쿨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생각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던 학인 분의 모습도 스쳐 지나갑니다. 아마 곰쌤의 오늘 코멘트가 그 해답이 되었을 거예요. 곰쌤은 대중지성이란 무엇인지, 대중지성의 글쓰기는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어떤 지점에서 분명히 구분되는지, 우리는 왜 고군분투하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글을 쓰고 강의를 해야 해요.”라는 곰쌤의 말에 움찔한 건 그 자리에서 저 혼자뿐이었을까요? 독자를 상정한 글쓰기와 대중 앞에서의 강의, 이 두 가지가 저한테는 아직도 너무나 낯설고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저의 철학 공부는 그저 스스로 만족하고 혼자 지적 즐거움을 누리는 딱 그 정도에 멈춰선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감이당에서의 공부는 결국 누구나 왕래하면서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깊은 우물이 되어가는 것, 수풍정 괘의 지혜를 담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형진쌤 역시 니체의 사상을 깔끔하게 정리하셨으니, 이제 형진쌤의 문제의식과 니체가 섞이는 소화의 과정만이 남은 것처럼 보입니다. 형진쌤의 화두, 586세대가 안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낡은 신념들은 니체를 통해 거침없이 뜯겨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침내 뱀대가리를 물어뜯고 세상에 없던 웃음으로 웃었던 목동처럼 통쾌함을 안겨다 주는 형진쌤만의 글을 기대해 봅니다.

 

 

2. 강지윤, <앙띠오이디푸스> by 들뢰즈, 가타리

 

*강의안

심리상담은 당신을 치료하지 않았다.

 

1. 치료의 끝은 어디인가?

- 정말 상담은 치료를 하는 것인가?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면 치료인가?

 

2.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재 양성

- 원죄 성립, 사제의 심리학

- 자본주의 사회가 바라는 것을 욕망하도록 길러지는 유순한 주체 생성

 

3. 결핍의 아이콘

- 욕망은 결핍이 아님.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모든 관계를 가족화시키며, 이로써 모든 욕망을 가족 삼각형 구도로 환원시킴.

- 상담은 이 환원주의를 더 강화시킴. 아빠-엄마-자녀, 핵가족 삼각형 구도 강조

 

4. 이윤을 창출하는 단절

- 주변과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되면서 상담이라는 자본 채널만이 운용됨.

- 모든 욕망은 사회적인 것임을 아는 것이 단절을 접속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힌트가 아닐까?

 

5. 다르게 살고픈 욕망기계들

- 내담자는 욕망의 흐름을 바꾸고 싶은 욕망기계들

- 살면서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곰쌤 코멘트

: 설명적이다. 시야가 넓은 데서 점점 좁혀 들어가며 논증하는 게 아니고 그냥 심리 상담그 자체에만 골몰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심리 상담이 거부할 수 없는 위상을 지니게 된 이유를 계보학적으로 되짚어 보면서 심리상담은 치료가 아니라 무엇이다라는 전개가 필요하다.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말하는 심리 상담과 나의 심리 상담이 섞인 게 아니라 심리 상담에다가 안티오이디푸스를 꽂아 넣었는데 그게 빈곤하게 진행된다. 치료가 아니면 뭐지? 인재양성인가?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오이디푸스화로 인해 주체화가 더욱 공고하게 심화된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런 말은 서류 작성할 때 쓰는 말이다. 상담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를 안티 오이디푸스의 렌즈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글에 안티 오이디푸스가 계속 깔리며 드러나야 하는데, 잠깐잠깐만 등장한다. 송형진쌤의 목차는 오로지 니체만 나오는데, 정반대로 강지윤쌤의 목차는 자기 상담만 있고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리라이팅이 없다.

2번에서 원죄 성립이라고 썼는데 서양 사유의 핵심이 바로 원죄 의식이다. 원죄를 갖고 태어난 존재에게는 신을 대리하여 죄인을 구원하는 사제가 필요하다. 프로이트가 그 원죄 개념을 끌고 왔고, 심리 상담에서는 사제가 바로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가 된다. 이렇게 설정된 구조를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보여주는 것이고, 완벽한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여기서 비롯된다. 계속해서 스펙을 쌓아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 이런 사제의 심리학은 궁극적으로 오이디푸스 구조에 재포획되게 만든다. 다시금 오이디푸스를 욕망하게 한다. 지금 너의 문제는 비정상적인 가족이 문제인 거야, 이런 식으로. 불만족과 결핍이 생성된다. 엄마가 나를 잘 돌보아도 너무 간섭한다며 싫고, 또 엄마가 나를 내팽겨 쳤어도 싫다. 부모가 금수저면 당연히 간섭이 많지 않나? 그런데 부모가 흙수저라고 또 난리를 치고. 금수저인데 어떻게 자녀를 자유롭게 두지? 흙수저니까 내버려둔다. 그게 축복임을 모른다.

오이디푸스라는 건 갚을 수 있는 죄가 아니다. 그래서 맨날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아야 한다. 뭘 해도 영원한 결핍과 불만족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사제의 권력이 나온다. 내가 스스로 자유롭게 신과 교통하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겠다는 의지가 없어지니까. 자본주의는 지금 가족에 이 원죄를 전가한 것이다. 결핍이 생산되면서 내가 생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망각하게 되고, 복종하는 신체가 된다. 일단 욕망의 생성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이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성욕 같은 것들도 죄악시하게 되는 것이다(욕망의 터부시, 금기화). 그런 식의 가장 전형적인 종교적 프레임이 자본주의 안에서 오이디푸스로 형상화 된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이 세계가 오로지 가족밖에 없어지고 단절된다. 내 욕망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 즉 수다를 떨고 왁자지껄하게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전부 사라진다. 그래서 당연히 상담자가 필요하게 된다. 예전에는 사제한테 가서 고해성사를 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상담가다. 말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걸 역이용해서 상담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상담을 하면 털어놓으면서 힘이 난다. 그럼 힘이 난 후에는? 더 좋은 가정을 만들겠어, 더 좋은 애인을 만나야 돼. 그럴려면 예뻐야 돼, 돈이 많아야 돼. 이런 식으로 사유가 흘러가버린다. 그게 자본주의가 사람의 욕망에 간접 투자를 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다. 직접 조종하지 않고, 가족을, 사랑을, 외모를 욕망하게 만든다. 우회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하는 건 과거 안기부나 하는 짓이다. 지하실에 데려다가 마구 패고 고문하면서 , 가족을 원할래, 안 원할래? 결혼할거야 안 할 거야?” 이렇게 안 한다. , 자발적으로 원하게 만든다’.

현대에서 상담이라고 하는 배치가 어떻게 개개인의 욕망을 조종해서 가족으로 편입시키는가, 이런 분석을 실제 상담 사례와 연결시켜서 아주 적나라하게, 낱낱이 드러내라. 안티 오이디푸스의 개념을 활용해서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게 되면 5번은 4학기로 넘기면 된다. 안티 오이디푸스 자체가 그런 책이다. 심리상담과 자본주의, 오이디푸스가 욕망을 어떤 길로 인도하는가. 안티 오이디푸스의 철학적 개념과, 상담의 실제 사례와, 현대 심리 상담의 배치, 이게 결합이 되어 자신만의 언어가 나와야 한다.

 

*후기

: 심리 상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안티 오이디푸스를 들여다보시는 지윤쌤을 1학기 때부터 지켜봐 왔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저 스스로 얼마나 프로이트적인 눈과 자본주의적 신체로 세상을 해석하고 내 욕망을 대했는지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이름만 들어봤지 그 이론이나 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자본주의 역시 막연한 개념이라 생각했었는데, 이토록 프로이트화 되고 자본주의화 된 존재가 바로 나였음을 알게 되는 거죠. 지윤쌤과는 지하철을 함께 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친구라서 항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티 오이디푸스는 저희의 대화에 좋은 소재가 되어줍니다. 그때마다 직업과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고민하는 지윤쌤을 봅니다. 저는 제 일에 대해 별 생각도, 열정도 없는데, 자신의 일을 철학적 테두리 안으로 가져와 이렇게 글을 쓰고 토론할 수 있다니, 지윤쌤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주어진 것 아닐까요? 욕망은 결코 결핍되어 있지 않고,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선언은 그야말로 프로이트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결정타인 것 같아서 자꾸만 되새겨보게 됩니다. 내담자를 결핍되고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의지로 작동하는 욕망기계로 새롭게 보게 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상담 방식과 태도가 크게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런 상담은 없었다! 다른 상담가의 탄생!

 

*후기를 마치며

: 2교시는 조별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수업이 끝나고 발표만 남은 상황이니만큼, 목차 작성을 마무리하고 10주차에 있을 렉쳐 준비에 한창입니다. 곰쌤은 교실을 나서며 모든 발표를 촬영할 건데, 괜찮은 사람은 강감찬 tv에 올릴 거고, 아닌 사람들은 각자에게 동영상을 나눠주겠다!”라고 말씀하셨더랬죠. 모두들 동영상을 나눠주는 게 벌칙 아니냐고 웅성거렸습니다. 벌칙(?)을 피하려면 목차를 잘 구성하는 수밖에 없겠죠? 두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이며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꼼꼼히 글을 봐주었습니다. 점점 침침해져 가는 눈, 피곤해서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눌러가며 마지막 수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금성과 함께 개인 낭송과 주역 16괘 시험을 진행합니다. 단체 낭송이 없으니 훨씬 부담이 덜하네요. 모두들 무사통과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상으로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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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고은비   2019-09-26 15: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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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가 살아 숨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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