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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주역 빌헬름 일요반 2주차 후기 - Ch'ien, The Creativ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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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nowbird 작성일23-05-25 02:11 조회24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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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주역 빌헬름 일요반 2주차 후기

중천건으로 공부한 두 번째 시간, 지난 시간에 비해 영어는 비교적 평이했으나 디테일로 들어가보니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내 경우, 지엽적인 내용 파악에 급급해서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는 실수도 여전했다. 

처음 세경샘이 맡은 The Image(대상전)에서 시선을 끄는 대목이 the superior man makes himself strong and untiring이었는데 이게 그 유명한 자강불식(自彊不息)이라고 했다. (이 유명한 말이 주역에서 나왔다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세경샘이 이 자강불식이라는 구절이 중국의 명문 청화대 교정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더라고 해서 검색해보니 과연 이 대학의 교훈이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彊不息 厚德載物)이었다. 자강불식은 주역의 중천곤괘에서, 후덕재물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중지곤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중국이 대학이라고 하는 틀은 서양에서 들여왔으되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신들의 고전에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구호에 불과한 것을 확대해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렇게 막 갖다 쓸 문화유산이 있는 중국이 문득 부러웠다.

이어 初九에서 잠룡이 나왔고 아직은 때가 아니니 기다리라는 익숙한 내용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 잠룡이라는 단어가 주로 선거철에 대선주자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될 뿐 다른 어떤 분야의 신인에게도 루키나 다크호스같은 표현은 쓸지언정 잠룡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러니 현룡, 비룡은 말할 것도 없고 잠룡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에라도 이 중천괘는 평범한 범부중생과는 무관한 괘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 대해 도올은 비룡이 제왕이나 대통령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우리 삶의 지향처가 비룡’(도올 책, 147)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혹시라도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오면 부정탔다 여기고 엎어버릴 것 같다.

 初九 마지막 문장 One need not fear least(lest) strong will should not prevail~을 형진 샘이 좀 헷갈려했는데 오타 least 때문에 나 역시 좀 어리둥절했던 문장이었다. 김 빈 샘이 강한 의지가 승리하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할 필요 없다’(맞게 기억했나요?)로 바로잡으며 마무리되었다.

 다음의 九二에서는 효사 見龍在田, I見大人 I見大人에 해당하는 It furthers one to see the great man이 문제가 되었는데, one이 누구를 가리키냐는 질문을 김 빈 샘이 던진 것이었다. 도올이 잠룡의 단계를 벗어난 현룡이 스승인 대인을 만나야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다’(도올 책, 143)고 했으므로 그의 해석대로라면 one은 현룡이고 the great man은 스승, 즉 대인이다. 하지만 빌헬름의 해석은 the great man이 아직 지위는 없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출중한 존재이며 운명적으로 세력을 얻고 세계의 질서를 구축할 사람이라고 하고 난 후, Therefore it is favorable to see him(따라서 그를 만나는 것이 이롭다)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great manhim은 동일인이고 great mandragon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one은 그냥 일반인이 되어 도올의 해석과 달라져버린다. 돌이켜 생각하니 김 빈 샘이 이 점을 지적한 것 같은데 내가 성급하게 도올을 해석을 들이대서 결과적으로 논의가 더 진행되지 못하고 끝나버리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된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I見大人It furthers one to see the great man의 구절은 九五에서도 반복되는데 여기서도 도올과 빌헬름의 해석 차이는 분명하다. 도올은 이제 비룡이 제왕의 지위에 올랐으나 ... 자만에 빠지지 말고 너를 끊임없이 일깨워줄 큰 인물을 만나야 이롭다’(도올 책, 147)라고 하여 용이 대인을 만나는 것으로 풀어내고 있다. 반면에 빌헬름은 the great man이 하늘에 이르렀으며 그의 영향력이 만천하에 미치게 되었다, 누구든 그를 만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대인과 용은 동일인이며 일반적인 사람 one이 대인(=)을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되어있다는 공자의 이야기로 급전환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는다. 그런데 물은 습한 곳으로 불은 마른 곳으로’, 이 부분이 문헌전의 유명한 대목이라고 형진 샘이 귀뜸해 주었다.)

 빌헬름이 주역을 오역한 것인가, 아니면 주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일 뿐인가? 만일 후자라면 빌헬름의 해석은 너무 밋밋하다. 수퍼루키 현룡이든 이미 정점에 도달한 비룡이든 이런 엄청난 존재를 만나는 게 길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못 만나서 탈이지, 이걸 굳이 조언이라고 할 수 있나? 하지만 현룡이나 비룡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도모할 수 있는 건 없다, 반드시 대인(스승, 혹은 조력자)을 만나야 한다 라고 풀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며 끊임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거, 이게 내가 주역에서 기대하는 조언이고 지혜에 더 가깝다.

이 대목에서 형진 샘이 관계야 말로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지적이다. 또 도올은 인간은 어디까지나 의 존재이며 리견대인의 윤리가 유교문화의 핵심적 가치’(도올 책, 144)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중건괘 6개의 효 모두가 노양일 때를 빌헬름은 When all the lines are nines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장으로 노양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이와 별개로 6개 효 모두 노양일 때 빌헬름은 6효가 노양이므로 모두 음으로 변할 가능성을 갖는 까닭에(극하면 변하므로), 음과 양, 강함과 유함이 조화를 이루어 길하다고 한 반면에 도올은 머리가 없는 용은 내가 으뜸이라는 우월의식을 버렸다는 뜻이며 불교의 無我와 상통’(150)하므로 길하다 했다. 두 해석 모두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올 쪽이 에고를 경계하는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내게는 더 울림이 크다.

 형진 샘이나 세경 샘이 도올 책이 좋다고 누차 이야기했어도 그닥 실감을 못하다가 이번에 도올 책이 잘 쓴 책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평생 한학을 공부를 업으로 해 온 학자의 주역 공부와, 전혀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선교사 신분의 아마추어 주역 공부를 같은 눈높이로 비교하는 게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 우리 모두는 주역의 진면목에 다가가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모였고 그런 우리에게 유용한 길안내가 되어 준다면 어느 쪽이든 그것으로 충분히 고맙고 귀하다.

댓글목록

세경님의 댓글

세경 작성일

처음 만난 주역을 찬찬히 읽어보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매주 다같이 자강불식해요^^

형진님의 댓글

형진 작성일

오호~~ 성실함이 듬뿍 담긴 디테일한 후기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