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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길 신간 <비참함으로부터 탄생한 위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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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01-23 09:40 조회8,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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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에 태어난 위고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격동기를 온몸으로 관통하면서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한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이 당대와 지금까지 특별한 지위를 누리며 명저로 평가되는 이유는, 위고가 그의 정치적 여정에서 줄곧 놓지 않았던 민중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기적과도 같은 서사들 속에서 묵직한 울림을 전하기 때문이다.

작은길출판사의 '고전 찬찬히 읽기'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는 <비참함으로부터 탄생한 위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은, 원작의 스토리를 온전히 전달함과 동시에 현재적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책이다. 

누구나 다 안다고 자부하는 빤한 스토리가 얼마나 협소하고 때로는 왜곡되어 있었는지, 그 굵직한 줄기의 스토리가 얼마나 많은 우회로를 거쳐 서로 아귀 맞도록 창조된 정교한 서사들의 집합체인지, 또 그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프랑스와 유럽은 혁명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헤쳐가고 있었는지, 무엇보다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처절한 비명을 질렀을 필부필부들은 혁명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등을 이 한 권 안에서 풍성하게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 머리말 : <레 미제라블> 탐사 지도를 드리며

1. 위대한 이상주의자, 낭만을 그리다
프랑스 혁명: 1789~1848
‘민중’을 주인공 삼은 이야기
<레 미제라블>이라는 대하大河에 이르기까지

2. 장 발장, 사회가 낳은 레 미제라블
정답 없는 세계-의인 미리엘 주교의 싸움
내 이름은 24601번
절망의 또 다른 이름, 도형수
도형수, 신의 아들이 되다

3. 새로운 인생, 마들렌느 아저씨
‘까르띠에 라땡’이 낳은 여자 레 미제라블
몽트뢰이유-쉬르-메르, 위고의 이상 도시
법적 정의인가, 인간적 정의인가
내가 도둑놈 장 발장이오!

4. 운명적 조우
역사의 경첩, 워털루 전투
두 별이 만나다
두 번째의 하얀 경험-꼬제뜨
빠리 시를 누비는 도망자와 추적자

5. 도시의 음화陰畵
빠리는 이면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고르보 누옥의 부르주아 청년
청년 마리우스, 혁명그룹 아베쎄와 접속하다
떼나르디에, 내가 두고 온 어둠

6. 1832년, 이틀간의 혁명
한쪽에는 사랑이, 다른 한쪽에는 고통이
혁명의 아들, 가브로슈
마리우스의 결단, 장 발장의 결단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기까지
하수도, 제2의 빠리

7. 위대한 인간의 탄생
자베르 형사의 변곡점
마지막 전투
마지막 밤, 위대한 인간의 탄생
<레 미제라블>, 위대한 인간들의 탄생

● 함께 읽은면 좋은 책들
● 빅또르-마리 위고 연보
● <레 미제라블> 원목차

 최근작 : <일러스트 레 미제라블>,<비참함으로부터 탄생한 위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레 미제라블 2> … 총 396종 (모두보기)
 소개 :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
 최근작 : <비참함으로부터 탄생한 위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인물 톡톡>,<고전 톡톡 : 고전, 톡하면 통한다>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남산강학원 Q&A〉 연구원이다. 대학에서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실에 더 오래 있었고, 덕분에 전공 공부는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만 2년 동안 재직했고, 지금도 연구실 안에서 가능한 십대 인문학을 기획, 시도 중이다. 도스또옙스끼와 마르께스, 위고 등 아주 많은 작가들과 매번 사랑에 빠지고, 그 덕분에 글 쓰고 강의하며 먹고 산다. 같이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가 있다. 


프랑스인이 자부하는 프랑스 문학과 공화국 정치사의 영웅
빅또르 위고의 불후의 명작을 ‘새롭게, 찬찬히’ 읽는다!

2002년 빅또르 위고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첫 수업시간에 위고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으로 새해를 열었다고 한다. 그때 교육부 장관이던 자끄 랑은 빠리 달랑베르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위고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한국의 국립현충원 격인 ‘빵떼옹’에 안치된 수많은 혁명영웅과 대문호 들을 제치고 위고가 프랑스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까닭은 뭘까? ‘폭동의 시절’ 혹은 혁명기로 불리던 대혁명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시절은 프랑스인, 특히 빠리지앵치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없던 시절이었다. 7월 혁명을 그림으로 남긴 들라크루아처럼 혁명을 지지하는 예술가들도 많던 때였다. 그럼에도 위고가 남다른 위치를 점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행보와 문학적 유산에서 발견되는 ‘민중’에 대한 굳건한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다. 지금 세계가 위고의 ‘역사 대로망’에 환호하고 위안을 받는 것도 언제나 앞장섬에도 좌절하고, 그러나 다시 일어서서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비참한 이들(레 미제라블), 즉 이름 없는 민중에게서 나옴을 직시한 작품이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레 미제라블>의 영토를 안내하는 친절한 지도
위고의 작품 <빠리의 노트르담>을 ‘노틀담의 곱추’ 이야기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 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이야기로 통한다. 빵을 훔쳐 감옥살이를 한 뒤 석방된 다음, 한 신부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다시 수감될 수도 있었지만 신부가 베푼 용서와 자비로 크게 회개하여 선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는 줄거리. 한 권의 동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이야기는 원작의 ‘스토리’중 극히 일부만을 절단하여 인간적인 감동을 선사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었다. 대대로(!) 우리는 이 작품을 그렇게 읽는 데 만족해 왔다. 하지만, 작정하거나 혹은 우연한 기회에 심심파적으로 원작을 읽게 되노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우리에게 친숙한 장 발장 이야기가 원작에서 떼어 낸 작은 동강에 불과한 점, 둘째로는 장 발장의 출연 분량이 주인공임에도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 셋째로는 정치·사회 평론, 서사시와 역사 비평이 결합된 독특한 구성 때문이다. 
위고는 작품 전체의 구성을 시종일관 그렇게 가져 간다. 2부의 첫머리를 여는 <워털루 전투>가 대표적인 예다. 1부 결말에서 꼬제뜨의 어머니 팡띤느가 숨을 거두고, 마들렌느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던 장 발장은 자베르 형사에게 체포된다. 이야기의 속개를 기다리는 독자들의 궁금증은 내버려 둔 채, 위고는 뜬금없이 장장 80페이지에 걸쳐 워털루 전투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 간다. 대하소설이나 초장편 고전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작법은 독자들을 곧잘 좌절시키고 미로를 헤매게 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이러한 장애물을 너끈히 돌파하게끔 돕는 탐사지도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히말라야를 능숙하게 안내하는 셰르파처럼, 이 책의 저자는 원작에 대한 오랜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한 탐사지도를 작성할 수 있었다. 원전 전체를 끌어가는 스토리의 전모를 담아냄은 물론, 앞서 언급한 미로 같은 원전의 구성으로 인해 독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매끄럽게 안내한다. 더불어 원작 곳곳에 피력된 위고의 질문과 비전까지 채굴하여 저자의 안목에서 현재적 의미를 짚어내는 작업까지 완수하였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책을 한 장의 지도 삼아 원작의 영토로 찾아가 그곳을 두루두루 탐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구성의 특징을 일별코자 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의 부록에 수록된 원전의 원목차가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비참한 이‘들’을 주인공 삼은 이야기
‘레 미제라블’은 불어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제목이 복수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원작의 큰 틀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물론 위고의 비전을 대변하는 핵심인물은 단연코 장 발장이다. 그럼에도 장 발장 일인이 아니라 장 발장‘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보다 원대한 위고의 야심에서 비롯된다. 
<레 미제라블>은 미리엘 주교 이야기로 문을 연다. ‘은촛대’ 에피소드로 유명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사제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에서 하나의 교구를 책임지는 높은 직위에 있다. 그가 1부 1편 전체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도둑놈 장 발장이 앞으로 내내 선善의 행보를 걷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또한 미리엘 주교는 사회의 격랑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사회의 신흥귀족 출신으로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그가 대혁명의 발발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은 부귀영화만이 아니었다. 존재의 기반에 대한 철저한 박탈. 그러한 무자비한 경험은 한 인간을 두 개의 극단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증오와 원한 아니면 근원적인 성찰. 다행히 미리엘은 후자의 방향을 선택한 상류층 인사였다. 그의 사랑과 자비는 마땅히 비참한 사람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그 도정에서 장 발장을 조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장 발장을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도둑놈 장 발장에서 신의 아들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주인공들은 장 발장, 팡띤느 그리고 그녀의 딸 꼬제뜨일 것이다. 위고의 인식 하에서 이들은 분명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로 인해 잉태된 레 미제라블이었다. 
쓰레기더미 속을 여기저기 뒤져 빵 껍질을 찾아내 먹기 전에 닦아 내고, …… 그레브 광장에서의 사형 집행이 아니면 다른 여흥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 굶주림 때문에 도둑질을 하고, 도둑질 때문에 그 외의 일을 하는 불쌍한 녀석들, 열두 살에 유치장에, 열여덟 살에는 도형장에, 마흔 살에는 단두대에 보내지는 계모 같은 사회 밑에서 자라는 아무런 상속권 없는 아이들 ……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재산의 분배에 있어 가장 변변찮은 몫을 받은 자기의 구성원들”에게 사회는 최선의 도움과 관용 대신 “일거리의 결여와 처벌의 과도함”을 안겨 주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도록. 잘 알다시피 오래된 구조적 모순은 일거에 해소되지 않는 법이다. 대혁명은 루이 16세를 권좌에서 축출했으되 사회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뿌리 깊은 불행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 역사에서 몇 차례의 혁명과 크고 작은 소요, 정치적 부침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은 빠리꼬뮌이 실패하는 1871년 5월 이후의 상황이었다. 그 이전 최소한 1848년 2월 혁명 이후 제3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의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비참한 삶의 형태”가 존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혁명과 공포정치, 떼르미도르 반동, 워털루 전투, 복고왕정, 7월 혁명과 2월 혁명……. 장 발장은 이렇듯 힘겹게 몸을 뒤척이는 프랑스 땅에서 그 고통의 현현顯現인 양 등장했다. 자신의 신념과 명분, 욕망을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19세기 프랑스 한복판에서 그 역시 처절하게 부딪히고 깨지기 바쁘다. 1796년부터 1815년까지 도형장에서 도형수로 살아야 했던 그 19년이 장 발장에게는 도저히 흐르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사실상 프랑스는 제1공화국을 거쳐 제1제정, 그리고 왕정복고로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출감하고 보니 프랑스의 꼭대기에는 다시 왕이 앉아 있었다. (본문 42쪽)
작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1795년부터 1833년은, 위에서 언급된 대혁명부터 2월 혁명까지의 시간적 스펙트럼 속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편폭 안에서 위고가 추출해 내는 인물 군상은 참으로 다채롭다. 민중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비참한 사람들’에 마리우스와 자베르도 포함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각색된 영화와 달리 원작의 마리우스는 출신상으로는 비참함이나 혁명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상류 부르주아에다 극성 왕당파인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던 터였다. 그런데 우연히 공화파 장군 출신인 생부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외조부로부터 이탈하여, 대학가의 청년혁명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요컨대 마리우스는 가문 내 정치적 입장의 극단적 대립이 빚곤 했던 불운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장 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베르 형사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도형수였으며, 카드점을 치는 어머니 역시 수감자 신세였던 터라 그는 감옥 안에서 태어났다. 장 발장 못지않게 “사회의 완벽한 변방”에서 태어난 그. 헌데 그는 지독히 엄하고 냉정한 경찰이 되었다. 마치 “자신이 법의 화신이라고 느낌으로써만 자기 출신성분을 잊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위고가 창조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은 이들 외에도 많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이름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평범한 사람의 전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 즉 민중”이라는 사실이다. 위고가 극중의 마리우스처럼 왕당파에서 공화주의자로 정치적 신념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견지하게 된 낭만주의 문학정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집합적 존재로서의 민중에게서 프랑스의 미래를 보게 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가난하고 무지하여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이, 살아가는 내내 무수한 시련과 시험대 앞의 유혹을 정면 돌파하면서 어떻게 고귀함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 
한쪽에선 고귀한 인간이, 다른 한쪽에선 위대한 민중이
원작을 접한 독자라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1832년 6월 5일과 6일의 시가전 장면임을 놓치지 않는다. 역시나 그 대목에서도 위고의 역사 평설은 빠지지 않는다. 그는 역사가 소홀히 한 이틀간의 소요에 대해 폭동이냐, 반란이냐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논박한 다음 자신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 이틀의 소요는 무엇보다 혁명이다. ‘폭동의 시절’로 일컬어지는 당시 프랑스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은 넘쳐난다. 그런데도 위고가 유독 이 날의 시민봉기에 주목한 것은 그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있어 그것이 요긴했던 까닭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저자는 <레 미제라블>을 상공에서 조감한 듯 커다란 두 폭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두 폭의 그림은 이틀간의 혁명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져 완성된다. 그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한쪽에서는 고귀한 인간의 초상화가, 다른 한쪽에서는 위대한 민중의 역사화가 각기 펼쳐지다가, 이 지점에서 합류하여 비로소 완성되는 웅장한 화폭!
위고가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을 이 시간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 사건이 특정 지도부에 의해 조직되고 동원된 것이 아니라 하층계급 자신들의 분노로 인해 자발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조직된 봉기였다는 점에 있을 터이다. 그들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도형장에서 암흑 속을 헤매는 장 발장이고, 장 발장으로 몰려 죽을 뻔한 샹마띠외이며, 가난 때문에 사형에 처해진 실존 인물 끌로드다. 그리고 콜레라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내몰린 1만여 명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본문 212쪽)
32년 6월의 이 혁명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마도 역사는 아주 간략한 기사만을 남겼을 터인데, 그 기록에서 위고는 민중을 발견했다. 허나 그들은 더 이상 캄캄한 사회 밑바닥에서 굼실대던 비참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해 도형수가 되고 사형에 처해지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매일의 안부를 묻듯 혁명을 준비하면서 자발적으로 89년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었다. 위고가 발견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작가의 낭만적 상상력은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들을 그 사건 속에 모조리 배치시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더 나은 삶에의 갈망과 위대한 공화국의 이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도록 만들었다. 
이 혁명 속으로 소집된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은 혁명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 말고도 더 큰 의의를 지닌다. 마리우스는 좌절된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 위해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 그리고 바리케이드에 닥친 중대한 위기를 두 번이나 막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운다. 자베르는 혁명군으로 위장하여 침투해 있었지만 곧장 경찰임을 발각당해 처형될 위기를 맞는다. 자베르의 총살을 자청한 장 발장이 그를 풀어줌으로써 자베르의 내적 갈등은 극에 달하고,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두 가지 숭고한 의무를 감당키 어려웠던 자베르는 투신 자살한다. 그의 선택은 도형수 장 발장이 보여 준 숭고한 인간애에 대해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보답이자 찬미였다. 
우리의 장 발장은 어떠했나? 사실 그는 혁명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그를 꼬제뜨에게로 보내기 위해 바리케이드로 들어갔다. 미리엘 주교를 만난 이후 장 발장의 삶은 실로 꼬제뜨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꼬제뜨는 그에게 모든 것이었다! 장 발장만의 꼬제뜨여야 했던 그녀 앞에 나타난 청년 마리우스. 그는 사윗감이 아니라, 경쟁상대이자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덕분에 장 발장은 이전의 어떤 갈등과 시험보다 몇 갑절 고통스러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꼬제뜨를 빼앗기다니! 고로, 그가 바리케이드로 간다는 건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난관을 넘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즉, 마지막으로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자신이 도형수였음을 마리우스에게 고백하고 이해와 관용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입만 열지 않으면 영영 묻혀버릴 진실을 굳이 마리우스에게 알릴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만큼 힘겹게 살았으면 그 정도의 비밀을 덮어둔다고 해서 누가 그를 탓하겠는가! 
장 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미리엘 주교의 바람대로 “선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 그저 행복을 구가하며 사는 것쯤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흡족하고 싶었노라고 고백했다. 그 밋밋하고 아름다운 도덕적 표현이 실은 그동안 그에게 얼마나 가혹한 채찍질이었을지…… 이로써 장 발장은 위고의 의도대로 비참한 도형수에서 존엄하고 고귀한 한 인간의 자화상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고전 찬찬히 읽기, ‘고찬찬’ 시리즈!
고전이 교양인의 필독목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깊이 있는 해설서와 공들여 번역한 완역본들이 출간될 때마다 고전 독자들은 고마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낀다. 풍요로운 고전의 바다에 이제 여기, 고전읽기의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내놓는다.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겠지만 고전읽기에는 다른 왕도가 없다. 고전이라는 텍스트가 본래 그렇게 쓰였듯, 그 느린 걸음과 깊은 호흡을 온전히 음미하며 ‘찬찬히’ 읽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이다. 점자를 배우듯 시대의 낯선 언어와 이질적인 삶의 요철들을 나의 손끝으로 하나하나 더듬어 실감해보자. 고찬찬 시리즈는 찬찬히 읽는 방법에 딱 맞춤한 장편고전 텍스트를 첫 탐사지로 선정했다. 남산강학원의 고미숙 선생을 필두로 패기 넘치는 필진들이 가세하여 장편고전 세계로의 탐사여행에 멋진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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