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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청년에겐 애 낳을 권리, 노인에겐 네트워크를 許하라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5-08-13 13:44
조회 : 2,590  


한때 KBS ‘동물의 왕국’의 열렬한 팬이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주름잡는 동물들의 생태를 보면서 인간과 문명의 한계를 통감하곤 했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인구의 급증으로 수많은 종들이 멸종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고, 다른 종과 공존할 수 있는 인구는 2억 정도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지구의 인구는 72억쯤 된다.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조만간 두 배로 늘어날 거란다. 그와 더불어 수많은 종들이 사라질 것이고.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종양’이라는 생태주의자들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룡도 그랬고, 바퀴벌레도 그렇다. 초원의 사슴도 그렇고, 도시의 길고양이도 그렇다. 자기 종의 개체수를 스스로 조율하는 경우는 없다. 천적과 먹이사슬이 필요한 이유다. 인간 또한 그 점에선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인간에겐 천적이 없다. 심지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대체 이 종의 ‘무한증식’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헌데, 언제부턴가 아주 색다른 ‘인구론’이 등장했다. 저출산이 그것이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은 두손 들어 반길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라나. 어떤 점에서? 노동인구가 대폭 줄면서 산업생산력이 현저히 약화된다는 것, 또 시장 자체가 축소되기 때문에 일본에선 심지어 도시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있다는 것.

결혼조건 갖추고 나면 생명력은 저하

자, 여기서부터 좀 헷갈린다. 그럼 지구의 생태계를 위해 인구폭발을 막아야하는 사안이랑 이 저출산은 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게다가 저출산 문제랑 항상 짝이 되는 단어가 있다. ‘고령화’가 그것이다. 요컨대, 청년인구는 줄어드는데 노인인구의 비율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 유럽은 이미 겪고 있고, 한·중·일 삼국도 고령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나. 이 점도 역시 혼란스럽다. 그동안 100세 인생을 문명의 혜택인 양 예찬해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선 장수로 인해 나라의 장래가 암울하단다.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100세 인생을 문명의 축복으로 누려야 하는가 아니면 ‘장수병’이라며 한탄해야 하는가. 그야말로 진퇴유곡이 따로 없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 문명의 수준이다. 기술과 생태, 물질과 정신, 청년과 노년, 이 이질적 항목들을 두루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태평성대는 오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문명의 오만이 자초한 일종의 자업자득이다. 먼저 인구절벽에 대하여. 청년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간단하다. 교육기간이 너무 길어진 탓이다. 100년 전만 해도 결혼과 임신적령기는 ‘이팔청춘’이었다. 남자는 16세, 여자는 14세. 인생의 봄, 곧 에로스가 가장 충만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교육과정이 대학, 대학원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결혼적령기는 점점 지연되어 현재는 30대 중반에 이르고 말았다. 무려 두 배로 연장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신체적으로는 성숙하지만 사회적으론 미성년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운명이다. 내 안의 자연과 문명의 척도가 심하게 어긋나게 된 것. 그러면 몸이 어떻게 될까? 일단 성욕은 항진되는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장이 없다. 이 어긋남을 안고 30대에 이르면 당연히 생명력은 저하된다. 거기다 성공에 대한 스트레스로 생식에 필요한 정기는 고갈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몸이 사막화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껏 결혼을 할 수 있는 조건-직업과 아파트, 차-을 갖춘 다음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불임에 유산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요컨대, 정력이 넘칠 때는 임신을 엄두도 못 내고 조건이 대충 만들어지면 몸이 말을 안 듣는 형국이다.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가 등장할 수밖에. 이런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언제나 경제적 지원이다. 일자리와 복지가 늘어나면 아이를 낳을 거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오만이다. 그렇게 돈으로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이런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메시지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기간을 줄이면 된다. 즉, 모든 10대가 대학을 향해 달려가는 이 어이없는 질주를 당장 멈춰야 한다. 지성의 향연을 원하는 이들은 대학을 가고 나머지는 직업학교를 가면 된다. 그렇게만 되어도 10대와 20대가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엔 미혼모, 혹은 비혼자녀를 적극 우대해야 한다.

어이없다고? 지금이야 혀를 차겠지만, 앞으로 인구절벽이 점점 심화되면 10대들에게 제발 아이만 낳아달라고 간청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여고생들에게 일단 아이부터 낳고 학교를 오라고 한다든가, 혹은 대학을 가려면 아이 둘은 낳아야 한다든가. 인문학 강연장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다들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통념이 전복되는 데서 오는 쾌감 때문이리라.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장안에 화제를 몰고온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이미 그런 징후가 포착되고 있지 않은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딩들’이 아이를 낳고 돈과 권세로 압박해오는 기성세대와 맞짱을 뜨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요 컨셉이다. 계급투쟁과 세대갈등이 오버랩되어 온갖 풍문이 난무하는데, 그 풍문의 배후조정자는 다름 아닌 ‘아기’다. 아기의 생명력이 그 모든 사건을 야기하고 이끌어간다. 생명의 리듬을 다시 회복해야할 때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징조가 아닐지.

그 다음, 고령화가 왜 문제인가? 노인이 많다는 건 그 사회가 훨씬 여유있고 부드럽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것이 왜 그림자고 어둠이고 재앙인가? 노동과 생산, 소비를 척도로 하는 시선 때문이다. 노인은 산업의 전선에서 은퇴한 세대다. 아니, 은퇴해야 한다. 노인인데도 전선에서 뛰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인생을 오직 노동과 투자를 위해서 사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있는가? 젊어서는 자립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공동체에 복무해야 하지만 노인이 되면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비참한가?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생명은 곧 질병과 공존하는 것이고, 생은 죽음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게 어디 쉽냐고? 맞다. 청년들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힘들 듯이, 노인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청년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제의를 겪어야 하듯, 노인들 역시 생사의 경계를 넘는 우주적 제의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에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구성될 수 있다. 노년의 지혜와 청년의 열정이 순환하는 것, 문명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경지다.

청년은 아기 낳고 노인이 키우는 시스템

10대에게 결혼과 임신의 권리를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면, 당장 이런 반응이 나온다. 애는 누가 키워? 간단하다. 마을에서 노인들이 함께 키우면 된다. 노인의 양생에 아기의 울음소리만큼 좋은 것은 없다. 더구나 동네 도서관, 마을회관, 노인정 등 전국 곳곳에 공적 자산들이 차고 넘친다. 이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노인들과 청년세대, 아기들이 공존하는 지혜를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럼 비용은 어쩌구? 맞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의 양이 아니라 용법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 해일에 휩쓸려 금괴가 떠내려 왔다고 한다. 그 금괴의 주인은 대부분 노인세대였다. 노인들이 현금을 꽁꽁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왜?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고립될까 두려워서다. 개인이라는 단위로 살아가야 하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과 생산의 관점에서만 고령화사회의 담론이 구성되면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노인들은 불행해진다. 가난하면 짐이 되고, 부유하면 적이 될 테니까. 하지만 노인의 삶에 필요한 건 부가 아니라 관계다. 관계의 결핍만큼 서러운 게 또 있는가. 하여, 노인과 노인, 노인과 청년이 순환하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다방면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이 순환의 장이 활성화되면 돈은 절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노인들이 외롭지 않으려면 자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복지가 거창한 게 아닙니다. 노인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해요.”(탤런트 박근형) 그렇다. 마을이 탄생하는 곳도 여기고, 정치적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대책 없는 한탄보단 유연한 상상력 필요

언급했듯이, 인구는 이미 폭발상태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지구가 스스로 조율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어쩔 것인가? 그 흐름을 되돌릴 기술 따위는 없다. 천지는 사계절로 운행한다. 봄에는 솟아나고 여름에는 피어난다.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씨앗으로 수렴한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도 위계도 없다. 봄·여름이 있으니 가을·겨울이 오는 것이다. 문명 역시 이 주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동안 줄기차게 상승하고 뻗어나갔으니 이제는 안으로 거두어야 할 때다. 바야흐로 가을이 도래한 것이다. 가을에 필요한 건 봄·여름에 대한 회고가 아니고 이 가을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그래야 겨울의 적막을 거쳐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으므로. 요컨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 없는 한탄이 아니라, 이 수렴의 리듬을 유연하게 탈 수 있는 상상력이다. 유쾌하고도 발칙한!


(201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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