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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당신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01-02 17:09
조회 : 1,637  

2016.12.19

당신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뭐든 배우려는 열망으로 덤벼드는
모든 것이 당신의 공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느 순간 책을 덮었다. 뭔가를 올려놓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곳은 이제 책상이 아닌, 식탁 혹은 화장대 정도가 됐다. ‘공부’는 학교 다닐 때나 하던 것이거나, 혹은 ‘아이의’ 공부를 대변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아이’ 말고 ‘당신’의 공부를 말하려 한다. 공부라는 단어를 들은 지가 너무도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라는 이들에게도, 또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 당신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공부는 비단 책을 펼쳐 밑줄 긋고, 단어 외우고, 시험을 치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하든, 기술을 연마하든, 뭐든 배우려는 열망으로 덤벼드는 모든 것이 당신의 공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 그 자체가 공부다
고미숙(고전 평론가)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 설립자, 현재는 ‘감이당’을 이끌고 있는 고전 평론가이자 작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여자, 고미숙. 그녀에게 ‘공부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공부가 없으면 기본적인 베이스를 가질 수가 없어요. 배운다는 사실이 없으면 그냥 먹고 배설하고 고생하고 즐기고 끝이죠. 여기서는 허무밖에 없어요. ‘이것이 무엇인가’ 질문할 때, 그때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 거예요.”

고미숙은 박사 학위를 따고도 교수 임용이 안 됐다. 소위 ‘박사 실업자’를 모아서 지식과 생활의 일치를 추구하는 지식인 공동체 ‘수유너머’를 만들었다. 고미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9년에 수유너머를 정리하고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을 열었다. 지식인들만의 공간이 아닌, 인문학을 기초로 ‘대중 지성’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다. 고미숙은 “인문학 공부의 장을 처음 열어젖힌 건 바로 주부들이었다”고 말한다. “자식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자식 공부에 올인을 하다가 문득 굉장한 공허감 같은 게 온 거예요. 나도 공부를 많이 했고, 자식도 공부를 많이 시키는데 왜 내 인생에 대해서는 스스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뚫고 나가지 못할까. 이런 질문을 먼저 진솔하게 던진 게 주부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애를 어떻게 공부시킬까’ ‘우리 애가 왜 내 뜻대로 안 될까’ 하는 단순한 질문이었다가, 내 삶에서의 질문이 안 풀리니까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된 거죠. 요즘 인문학과 힐링이 오버랩돼 있는 이유가 힐링을 위해 인문학의 장으로 들어오거나, 또는 인문학 강의를 듣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왜곡됐구나’ 알게 되면서 치유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공부의 목적은 삶 자체라고 말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공부는 이미 기술이다. 취업이나 시험을 위한 공부는 그걸 얻는 순간에 정작 사라져버린다. “돈이 내 뜻대로 있어주나요 남편이, 자식이 내 뜻대로 되던가요 자신과 대상 사이에서 질문을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책을 읽고 책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쓰는 걸 공부의 구체적인 현장이라고 한다면, 이건 삶의 버팀목이거든요. 하루에 10분이든 얼마든, 질문의 순간을 가져야 해요.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 그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거기에 접속하는 것. 그게 바로 충전입니다. 그 시간이 없으면 완전히 방전이에요. 잘나가는 정규직이 어느 순간 방전되잖아요.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하면서. 무형의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유하고 말하고 읽고 쓰고. 공부와 삶이 분리되면 삶이 위험해져요. 미래가 불안하다면 지금 나는 무엇으로 충전하고 있는지 질문하세요. 그건 공부와 지성에 있다는 걸 환기했으면 좋겠어요.”

공부 후, 삶이 단조로워지다
김혜은(주부)

김혜은은 의류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MD로 10년을 근무한 후 유아 교육 관련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다. 사업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못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몰입도가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다 보니 현실의 문제를 잊을 수 있었지만 ‘이게 과연 책일까’란 지적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고, 정말 제대로 된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올랐다.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싶었는데 저의 지적 수준이 미치지 못해 바로 읽을 수는 없었어요. 독서법에 관련된 책부터 찾던 중에 고미숙 작가의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를 만났는데, 책을 읽는 것도 고도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리고 어렵다 생각한 공부는 혼자 끙끙댈 게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서 하는 것이란 사실도 함께 말이죠.”

그녀는 서울 서교동의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 및 세미나에 매주 나갔다. 니체의 책부터 사서([대학][맹자][중용][논어]) 등의 고전을 읽고 나서 글을 한 편씩 써 가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어려워도 한 주도 빠짐없이 글을 제출했다.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오는 사람이 태반이었으니 살림하는 주부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독특해 보였는지 대안연구공동체 대표가 “공부를 한 다음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냐”고 먼저 물었다. “언젠가 ‘주부도 책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의 책을 써보고 싶다고 하니 ‘그럼 쓰면 되지 뭘 고민하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함께 공부하던 두 주부와 의기투합해 인문학 공부 길잡이인 [공부하는 엄마들]이란 책을 내게 됐죠.”

그 뒤로도 그녀는 공저로 『독학자의 서재』 한 권과 인문학 에세이 [책 읽는 식탁] 한 권을 더 썼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지난 6년간 3000여 권의 책을 읽으며 쌓은 내공이 발현되고 있는 것. “주위에선 ‘여태 한 게 아까운데 대학원을 가라’ ‘관련 자격증을 따라’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어요. 공부는 나를 바꾸는 과정이지, 어떤 거창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거든요. 전 앞으로도 단순히 좋은 책을 읽고 싶어요.” 그녀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달라진 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인문학 공부 자체가 호흡이 길어서 공부하기 전엔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제 마음가짐은 여유롭고 평온해졌어요. 또한 삶이 단조로워졌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의미 없이 길에서 흘리는 시간을 줄이게 됐고 저를 어지럽게 하는 잡념들이 사라졌어요.”

가르치며 배우다
나종민(바라봄 사진관 대표)

나종민의 은퇴 전 마지막 회사는 ‘오라클’이었다. 40대 초반에 글로벌 IT 회사의 전무를 역임했으니 남들에 비하면 빠른 성공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2007년, 마흔넷의 나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의 연봉은 자그마치 2억원이었다. “영업직으로 뛸 때는 참 재미있었어요. 내가 회사와 제품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기획해서 움직이고, 성과를 올리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게 마치 게임 같았거든요. 근데 관리직에 앉아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들을 닦달해야 한다는 게 저와는 맞지 않았어요. 계속 매너리즘에 빠지느니 과감해지자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죠.”

처음 1년은 마음 편히 놀았다. 시간이 지나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평소의 관심사이던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사설 학원에서 사진의 기본부터 배웠고 집에선 웹 서핑하며 필요한 정보들을 스크랩해 자신만의 공부 노트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많이 부족했죠.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최고의 공부는 가르치며 배우는 것’이란 말이 떠올랐고 노인 복지관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사진 수업을 시작했어요. 모르는 건 ‘다음에 와서 대답해 드리겠다’고 한 후, 해답을 찾아서 말씀 드리곤 했죠. 그때가 가장 사진 기술이 많이 늘었던 시기였습니다.”

사진 봉사를 다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를 만나 “중증 장애인이 사진을 찍을 만한 사진관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 든 그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편히 출입할 수 있는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을 열었다. 일반 고객이 사진을 찍으면 그 비용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 계층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1+1 프로젝트’와 한 달에 한 가족을 선정해 인근의 미용실, 음식점과 함께 헤어&메이크업부터 사진 촬영, 식사까지 무료로 지원하는 ‘오로라 프로젝트’ 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현재는 많은 기업이 사회 공헌 활동(CSR)의 일환으로 바라봄 사진관을 지원함으로써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은퇴 후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에서 비롯된 ‘해피 바이러스’다. “지적 호기심에 의한 지적 확장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는 건 지속성이 떨어져요. 그런 공부는 우리도 학창 시절에 다 해봤잖아요. 무엇이든 공부를 하면 써먹어야 합니다. 공부한 지식을 활용해 무언가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얻고서 그다음 어떻게 공부할지를 생각하는 것. 그런 게 저에겐 ‘공부’입니다.”

길거리에서 배우다
김민섭(작가)

새벽에는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대학 강단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던 남자. 그가 노동자의 기본 대우도 받지 못했던 대학 강사 8년의 경험을 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동시에 내부 고발자로 찍힌 그는 평생을 바치고 싶었던 대학이라는 공간을 영영 떠났다. “대학을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강의실에서 배우고 가르친 인문학보다도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더 많아요. ‘연구실은 오히려 대학 바깥에 더 크게 마련돼 있구나’ 느꼈죠. 우리는 맥도날드와 대학을 비교했을 때 대학이 당연히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공간일 거라고 믿잖아요. 근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는 결혼을 했지만, 시간강사는 4대 보험 보장이 안 되니 혼인 신고도 못하고 피부양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출생 신고까지 미룰 순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날, 그는 혼자 산부인과를 걸어 나오며 길에 붙은 구인 광고란 광고는 모조리 살폈다. 그중 ‘4대 보험 보장’이라는 공고를 봤고, 그게 맥도날드와 인연의 시작이었다. 새벽부터 점심까지, 그중에서도 3개월도 안 돼 사람이 바뀐다는 힘든 물류 하차 일을 1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와 샤워를 하고 다시 강단에 섰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든데 학생들을 보는 제 태도가 확 달라졌더라고요. 누구를 보든 ‘저 사람도 존중할 만한 삶을 영위하고 있겠지. 자기 자리에서 하나의 자아로서 열심히 살아가겠지’ 그런 감정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올라오더라고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 건강보험과 50만원의 생활비 때문에 일한 곳이었지만, 제가 새롭게 배우게 된 삶의 태도 때문에라도 맥도날드를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교수 남편’ ‘교수 아빠’. 그라고 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그 날,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훨씬 편했다.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아버지가 이런 길을 걸어왔다고 얘기할 수 있다면 대학교수가 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들여다본 아이의 눈을 아직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 그는 맥도날드를 나와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지난 5개월의 그 기록이 [대리사회]라는 책으로 나왔다. “예전에 대학에서 제가 썼던 연구 논문들은 누구나 이어서 쓸 수 있지만, 지금 제가 쓰는 글들은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보고 배운 게 아니라 거리에서 보고 배운 것들, 거리의 문법이니까요. 전 지금이 훨씬 가치 있는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한테는 이게 훨씬 더 좋은 공부 같아요.”

공부해야 내 것이 된다
전수진(제과·제빵 강사)

전수진은 대학 졸업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결혼했다. 가사에 전념하던 그녀는 아이들에게 직접 간식을 만들어줄 생각에 서울시 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홈 베이킹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빵과 과자를 만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 빵엔 어떤 버터를 쓸지 결정하려면 각종 버터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유기농 녹차 케이크를 만들 때 녹차 가루만으로 선명한 녹색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를테면 클로렐라와 같은 식재료를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누군가에겐 제과·제빵이 단순히 취미였지만 그녀에겐 새롭게 시작하는 공부였다. “단순히 빵 만드는 법만 배우려 했는데 식재료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다양한 빵을 만들 수 있으니 식재료도 연구해야 했어요. 그러고는 제과·제빵 기능사 과정만으로 배울 수 없는 초콜릿, 슈거 크래프트, 버터 플라워, 케이크 디자인과 같은 기술도 배우러 다녔죠. 많이 할 땐 한 번에 3시간씩 주 5일을 배우러 다녔어요. 집에 와서도 직접 만들어봐야 하니 눈 뜨고 있는 시간에는 계속 빵을 구웠습니다.”

그녀는 한 센터에서만 5년을 공부했는데 그러고 나니 센터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보통 강사들보다 빵 레시피를 더 많이 갖고 있는데 직접 가르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듣고 목동청소년수련관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제과·제빵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빵 만드는 법뿐만 아니라 빵의 유래, 식재료 사용법 등을 함께 배우는 ‘스토리텔링 홈 베이킹 수업’을 준비해 입소문이 퍼졌고 6년이 지난 지금은 화일초등학교와 상암고등학교를 비롯해 총 6곳에서 파티시에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학창 시절엔 공부가 즐거워 직접 찾아다니며 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근데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바로 내가 원하는 분야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공부니 게을리할 수가 없죠. ‘평생 공부’란 말이 ‘평생 공부를 잘해라’가 아니라 새로운 배움이 필요한 순간에 하는 공부들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주부가 꼭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결혼을 빨리 했던 터라 동창회에 가면 미혼인 친구가 더 많았어요.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저만 남편이 해준 얘기, 애들한테 들은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니고 주체적인 나로서 삶을 살고 싶다면 무언가 배우세요. 공부를 해야만 내 것, 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출처: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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