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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行설水설]‘투명 가방끈들’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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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1-10-28 08:07 조회5,30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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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갔지만 스마트폰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스마트폰화’한다. 이제 이 지구상에 스마트폰보다 더 해박하고 똑똑한 존재는 없다. 그 어떤 천재도 박물관도 스마트폰과 경쟁할 수는 없게 됐다. 그럼 이제 대학은 어떻게 되는 거지? 대학은 과연 이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학은 지성의 광장이 아니다. 청춘의 야성이 들끓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지성과 야성을 포기한 지 ‘오래, 너무도 오래’됐다. 자타공인하듯이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중계소에 불과하다. 하지만 취업을 위한 지식이나 정보는 스마트폰에 다 있다. 아니, 더 많다. 게다가 지금같은 추세라면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취업에 유리한 것 같지도 않다. 대학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청년실업자 아닌가.

그럼, 대체 뭣하러 대학을 가는 거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여가면서. 사는 게 꼭 그런 거냐고, 학교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배우는 곳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건 대학이 가장 먼저 포기한 항목이다. 경쟁력과 스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람과 인생’이라는 가치를 가장 먼저 내팽개치지 않았던가. 요컨대 실용적인 것을 위해 다 버렸는데 가장 비실용적인 것이 되어버린 꼴이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말투를 흉내 내보면, “우라질!”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라고 이제 청년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중퇴한 20대들로 구성된 이들은 대학거부선언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제목은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진 게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수백만원의 등록금에 숨이 막혔습니다.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정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사무친다.

우리 시대의 교육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직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 즉, 10대는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없고 대학 입학을 위한 과도기에 불과하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학 갈 때까지 참으라고 한다. 대학에 가면? 이젠 취업할 때까지 참으라고 한다. 취업을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모을 때까지, 그 다음엔 다시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결국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참고 또 참고. 그럼 대체 언제 인생의 이치를 배우고 세계를 탐구한단 말인가? 죽은 다음에? “이런, 우라질!” 이 ‘스마트’한 세상에 이렇게 ‘스투피드’한 코스가 또 있을까?

배움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자들과의 향연, 그를 통한 존재의 대반전, 그것이 곧 배움이다. 하여, 배움에는 반드시 스승과 벗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 그것은 곧 사제지간이다. 일찍이 양명좌파를 대표하는 동양철학사의 이단아 이탁오가 갈파했듯이,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아니고, 친구면서 배울 바가 없다면 그 또한 친구가 아니다.”

스승이면서 친구인 관계, 사우(師友)! 이 네트워크가 살아 숨쉬는 곳이 곧 대학이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누구도 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배움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지복이자 운명이다.

따라서 배움에는 어떤 목적도, 대가도 필요하지 않다. 자유와 행복, 이보다 더 원대한 목표가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확실한 대가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대학은 이 원초적 동력을 모조리 망각해버렸다. 하여, 배움의 열정을 위해선 대학을 박차고 나와야 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망한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모든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이 소박하고도 단호한 외침이 대학의 무지와 탐욕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경향신문, 10/27, 고미숙
댓글목록

곰숙님의 댓글

곰숙 작성일

<p>하하. 아이 덕분에 엄마가 엄청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그래서 자식은 웬수고, 보살이라고 하는 건가 봅니다. 달인 콘서트에서 만나여~~</p>

양력 2024.3.29 금요일
(음력 20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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