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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이 좋다는 신화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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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1-10-12 13:23 조회3,7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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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이 좋다는 신화의 붕괴

 





[2011.10.17 제881호]




[표지이야기]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분석한 ‘의료기관별 사망비’ 국내 최초 공개…
더 비싼 병원비 받는 ‘빅5’ 등 상급 종합병원이 사람을 더 살리지 못하지만, 병원간 사망비 격차는 3배 달해


 


어려운 결정이었다. 기자의 손에 들린 자료는 ‘의료기관별 중증도보정사망비’(이하 사망비)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도 사망한 확률을 담은 자료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병원 성적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병원의 의료 수준을 종합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환자들은 “이 병원 크더라” “그 의사 용하더라” 수준의 입소문을 따라 병원을 떠돌았다.

 

대한민국 환자에게 의료 시장은 방대했지만, 활용할 정보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한겨레21>은 민주당 정책위원회의 사망비 자료를 입수했다. 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자료를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내용이었다.

 

자료가 불러올 역풍은 적지 않을 터였다.

 

특히 사망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의료기관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그 가운데는 이른바 ‘재벌병원’도 있었다. 병원 사망비 통계는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논쟁을 낳는 주제이기도 하다.

 

심평원은 지난해 가을 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이 넘도록 공개 일정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여기, 사망비 자료를 공개한다. 일부 대형 병원들이 오래 숨기고 있던 정보가 국민에게 고루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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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뜻밖이었다.

 

심평원 자료는 기대와 한참 달랐다. 큰 병원이, 유명한 병원이 환자를 잘 고칠 것이라는 통념은 깨졌다. 적어도 심평원의 사망비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은 예측을 무시했다.

 

한 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대형 병원인 이른바 ‘빅5’의 사망비를 살펴봤다. 빅5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연건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을 가리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서울을 방문하는 지방 환자의 절반 이상이 빅5를 찾았다. 전국 환자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5개 병원의 막강한 흡입력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사망비만 보면 성적은 초라했다. 5개 병원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학교연건병원 2곳만 사망비가 평균을 밑도는 양호한 성적을 냈다(표1 참고). 나머지 서울삼성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의 사망비는 전체 평균 수준에 머물렀다. 수치만 보면, ‘좋은’ 병원이 아닌 ‘평범한’ 병원이었다. 이 병원들 앞에는 ‘숨은 실력자’ 충북대병원, 충남대병원, 순천향대학교천안병원 등 지방 종합병원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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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원들의 중증도보정사망비를 질환별로는 공개하지 않았다. 단 응급구조와 관련한 일부 지표는 공개해 병원별로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급성심근경색 치료 부분에서는 경북대학교병원 등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 대학병원 수술실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전국 환자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5개 병원의 막강한 흡입력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사망비만 보면 성적은 초라했다. 5개 병원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학교연건병원 2곳만 사망비가 평균을 밑도는 양호한 성적을 냈다.





1250억원 값을 못한 상급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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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빅5와 밀접히 관련된 병원들도 명성에 못 미쳤다. 빅5 관련 병원 가운데 사망비 통계가 유의미하게 낮게 나온 곳은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울산대학교병원뿐이었다. 그 밖에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릉아산병원, 강북삼성병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원주기독의원(연세대학교 부속 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등 7곳이 평균 수준에 속했다. 창원삼성병원, 성빈센트병원(가톨릭대학교 부속 병원)은 오히려 사망비가 높은 그룹에 속했다.

 

빅5 관련 병원을 모두 합하면 사망비가 낮게 나타난 상위권에 속한 곳이 4곳, 중위권이 10곳, 하위권이 2곳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이 된 66곳 가운데 16곳(24%)이 상위권에 속한 점을 고려하면, 빅5 관련 병원 가운데 사망비가 낮은 그룹에 속한 비율(25%) 역시 큰 차이는 없었다. 한편 사망비가 높은 그룹에 빅5 병원이 속한 경우는 단 2곳(15%)으로, 전체 평균(32%)보다 낮았다. 종합하면, 빅5 병원의 사망비가 전체 평균에 비해 약간 낮지만 뚜렷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른바 ‘3차’와 ‘2차’ 의료기관을 가리키는 상급 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사이에 사망비 차이도 미미했다. 먼저 상급 종합병원의 의미부터 잠깐 살펴보자. 보건복지부는 병원의 규모 및 중증질환 환자 비율 등을 고려해 종합병원 가운데 일부를 상급 종합병원으로 지정한다. 상급 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좀더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병원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상급 종합병원은 일반 종합병원보다 4%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를 ‘요양급여비용 종별 가산금’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2010년 상급 종합병원은 약 1250억원을 환자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더 받았다. ‘수준 높은’ 의료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상급 종합병원들이 과연 ‘돈값’을 했을까. 사망비만을 놓고 보면, 상급 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사이에 수준 차이는 거의 없었다(표2 참고). 빅5 병원을 제외한 61개 병원의 사망비를 보면, 상급 종합병원 가운데 사망비가 평균 수준이거나 평균보다 낮은 병원의 비율은 65.8%였다. 이는 종합병원의 비율(65.2%)보다 불과 0.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상급 종합병원들이 지난해 종별 가산금으로 추가적으로 벌어들인 액수는 병원당 30억원 정도였다.

 

병원에 따른 사망비 격차도 무척 컸다. 심평원 자료를 보면, 병원별 실제 사망자 수에 환자 중증도를 고려한 예측사망비를 나눈 중증도보정사망비가 가장 낮은 일부 병원들은 0.5를 약간 웃돈 반면에, 사망비가 가장 높은 병원들은 1.5를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따라 사망비가 3배 가까이 차이 났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망비가 높은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 3명이 사망비가 낮은 병원에 갔다면, 그 가운데 1명만 사망하고 2명은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병원에 가느냐에 따라 살아남을 확률은 극명하게, 충격적으로 갈렸다.









상급 종합병원 가운데 사망비가 평균 수준이거나 평균보다 낮은 병원의 비율은 65.8%였다. 이는 종합병원의 비율(65.2%)보다 불과 0.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상급 종합병원들이 지난해 종별 가산금으로 추가적으로 벌어들인 액수는 병원당 30억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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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이 환자 위한 자료 내야

심평원의 사정에 밝은 한 연구자는 익명을 전제로 “우리나라는 민간병상의 비율이 80%를 넘어서 민간병원의 역할이 큰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의료시장에 막대한 건보재정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환자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전혀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직무유기를 해왔다. 따라서 이번 자료 공개를 통해 환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자료를 공개하고, 동시에 의료기관들이 서비스 질을 개선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승용 민주당 의원은 “이번에 자료가 공개되는 것을 계기로, 앞으로 사망비가 높은 일부 병원들을 상급 종합병원 명단에서 제외하고,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병원들에서 더 구체적인 환자 정보를 받아 중증도보정사망비 모형을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중증도보정사망비란?

 

환자들 중증도 반영한 통계치

예를 들어, 한 마을에 2개의 병원이 있다고 하자. A병원은 쉬운 환자만 받는 반면, B병원은 어렵고 위중한 환자도 받는다. 환자 사망률 기준으로 보면, A병원의 사망률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 병원을 좋은 병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망률 척도로는 병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된 개념이 ‘중증도보정사망비’이다. 쉽게 말해, B병원에 들어오는 환자들처럼 위중한 상태도 고려해 사망비를 계산한 것이다. 이 통계를 뽑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2008년 66개 병원의 통계를 분석한 뒤, 각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중증도를 모두 같은 수준이 되도록 통계적 보정작업을 거쳤다. 이에 따라 한 병원에서 100명의 환자가 사망할 것으로 예상할 때, 실제로 몇 명의 환자가 사망했는지 비교했다. 예상대로 환자가 100명 사망했다면, 중증도보정사망비는 1.0이다. 예상을 뛰어넘어 150명이 사망했다면, 사망비는 1.5이다. 따라서 만약 한 병원의 사망비가 0.5라면, 그 병원은 50명 환자를 살려냈거나 사망을 유예했다는 뜻이다. 즉, 중증도보정사망비가 낮을수록 그 의료기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사망비 그룹별로 제시한 이유

 

오차 범위 고려해 병원별 순위 공개 안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자료에서는 조사대상 병원들의 사망비 추정치가 1위부터 66위까지 순위별로 제시됐다. 그러나 병원별 수치는 통계적 오차 범위가 넓었다. 표에 제시된 순위가 실제로는 10위 이상씩 틀릴 수 있는 확률이 컸다. 따라서 <한겨레21>은 병원의 순위는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사망비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으로 평균보다 높거나, 낮은 병원들의 이름을 그룹별로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통계의 이면에서는 학술적 논란도 적지 않다. 심평원의 척도로 저마다 상태가 다른 환자들의 사망 예상률을 제대로 산출할 수 있느냐는 지적 때문이다. 심평원 보고서에서도 “의료기관 중증도보정 사망비에 대한… 전문가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계를 개선할 부분이 앞으로도 많다는 뜻이다.

 

병원 사망비 통계는 이미 국제적 논쟁거리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오랜 논쟁을 거쳐 병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망률 지표를 국가기관이나 민간기관에서 발표한다(20쪽 기사 참조). 심평원의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심평원 통계의 정밀도는 외국에서 발표되는 통계와 비교할 때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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