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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⑨ 고전평론가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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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1-12-02 06:20 조회4,0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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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⑨ 고전평론가 고미숙

[중앙일보] 입력 2011.11.28 00:56 / 수정 2011.11.28 00:58

접속 안 하면 멍해지는 디지털 좀비들
고전, 온몸으로 읽어 봐요 삶이 보여요





고전평론가 고미숙씨에게 고전 연구는 좋은 삶과 앎을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그는 “남을 심하게 비판하는 글은 안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독설은 결국 말한 사람의 기운을 소진시킨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전평론가-. 고미숙(51)씨에게 붙는 이 수식어는 낯설면서도 소중하다. 『열하일기』 『동의보감』 등 우리 고전을 ‘지금, 여기’ 시각에서 풀어온 그의 행보는 강단 학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본보기다. 또 여럿이 함께 공부한 결과를 활발하게 책으로 내며 지식의 소통·공유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중앙일보와 온라인서점 예스24가 함께하는 ‘희망의 인문학-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에서 고씨를 초대했다. 올 10월 그가 서울 중구 필동에 새로 마련한 연구공동체 ‘감이당(坎以堂)’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정재승=와, 필동에 이런 곳이 있네요.

 ▶고미숙=도심 속의 시골이죠. 택시 타려면 15분은 나가야 해요.

 ▶정=학부에선 독문학을, 대학원에선 국문학을 전공했죠.

 ▶고=제일 얘기하기 싫은 부분이에요. 독문과를 나온 사실 자체가 20대를 허무하게 보냈다는 걸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에요. 뭔가 근본적인 학문인 동양사상을 해야지 생각하다 중문과를 가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얼떨결에 독문과에 간 거죠. 국문과는 연애편지나 쓰는 곳으로 생각했다니까요. 1980년대를 저처럼 맹하게 보낸 청춘이 없을 걸요.

 ▶정=지금 학생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요.

 ▶고=10대, 20대의 꿈은 확실하지 않아요. 분명하다면 가짜죠. 그걸 모색하는 기간이 청년기에요. 그러기 위해선 꼭 사람을 만나야 해요. 지금 청춘을 보면 사람을 안 만나요. 너무 위험해요. 『동의보감』 공부 하면서 사무치게 깨달았어요. 그러면 저처럼 인생역전은 좀 됩니다. (웃음)

 ▶정=열정을 바칠 대상을 찾은 거잖아요.

 ▶고=4학년 때 김흥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확 바뀌었죠. 존재의 중심과 딱 만난 것 같았어요. 아! 여기(배꼽 아래를 가리키며) 단전에 신호가 오는 것 같은. 선생님께서 『홍길동전』 『춘향전』을 읽어주셨는데, 우주가 진동하는 느낌이었죠. 매 작품을 읽고 A4 분량으로 10~15장 보고서를 내야 했는데, 모두 첨삭해 주셨어요. 진심이 오가는 관계가 형성됐죠. “아! 저 선생님처럼 글을 쓰고, 가르치고 싶다!”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정=대학원 때 얻은 것이라면요.

 ▶고=역사와 마주하게 됐죠. 역사와 글쓰기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게 됐습니다. 문제는 글쓰기가 안 됐다는 사실이었어요. 혹독한 수련을 받았어요. 누구나 그런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빚이라도 내서 대학에 가라고 하고 싶어요.

 ▶정=어떤 식의 수련이었나요.

 ▶고=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하는 수련? “이런 수준의 인간이 대학원에 온 건 처음이다”는 말까지 들었다니까요. 연애든 돈이든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오직, 공부뿐이었죠. 제 석사 논문을 다섯 명이 ‘피바다’를 만들기도 했죠. 지금도 “나처럼 훈련을 받았다면 글쓰기로 못 먹고 살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지식공동체는 어떻게 모색하게 된 거죠.

 ▶고=윽! 박사를 하고도 실업자가 됐습니다. 사실 돈은 벌 수 있었죠. 강남에 진출한 논술 강사들은 문학 석·박사가 있으면 몸값이 뛰었거든요. 그러나 나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현장이 필요했어요. 95년에 고전문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처음 하게 됐죠. 너무 재미있는 분야인데 왜 사람들이 모를까, 뭔가 중간에 매니저가 없어서다, 이런 결론에 이른 거죠. 『고전문학 이야기 주머니』라는 대중서를 썼어요. 웅진출판사에서 그 책을 보고 고전문학을 정리해달라며 원고료를 주는데, 무려, 1000만원이었어요. “어머! 내가 선동렬보다 연봉이 높네!”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웃음)

 ▶정=그렇게 수유 너머를 만들게 됐나요.

 ▶고=새로운 공부의 길을 찾고,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제가 임대아파트에 살았는데 책이 많아지니 공간을 넓혔어야 했어요. 그걸 포기하고 98년 서울 수유리에 개인도서관을 만든 거죠. 잘 하는 사람들 불러서 강의를 시키고, 후하게 강사료와 먹을 걸 주니 모두 좋아했어요.

 ▶정=비용은요.

 ▶고=독서지도 하는 알바를 했는데, 돈이 꽤 됐어요. 서울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건 고정관념이에요. 밥값은 세상 비용 중 가장 싸죠. 한 달에 몇 십 만원이 든다면, 그 돈으로 많은 사람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답니다. 1년에 500만~1000만원이에요. 아파트 한 평도 못 늘리는 돈이죠. 그게 인생의 굉장한 노하우였죠. “밥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

 ▶정=10년간의 변화라면요.

 ▶고=왜 고전문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나면 안 되나, 그런 고민을 했죠. 『열하일기』는 우연히 읽었다가 완전히 몰입한 책인데요. 여행이 길이 되고 길이 삶이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연암(燕巖)은 길과 글이 일치되는구나, 길 위에 있으면 글이 쏟아지고, 글과 앎의 일치! 이것이 경이로웠어요. 『열하일기』 이후엔 제 몸을 더 보게 됐어요. 몸은 자본을 욕망하고, 중산층의 삶이 편한데, 이런 고민을 하다 한의학 역학까지 온 겁니다.

 ▶정=글쓰기가 왕성합니다.

 ▶고=자율적·자발적인 공부를 하면 저절로 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글 하나 쓸 수 없는 대학생은 뭔가요. 과학자나 의사도 마찬가지에요. 왜 글 잘 쓰는 과학자, 의사가 없죠. 과학자는 최재천·정재승 밖에 없는 거죠. 의사야 말로 글을 잘 써야죠. 매일 환자들의 몸을 보는데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아요.

 ▶정=지금의 인문학은 무엇을 다뤄야 할까요.

 ▶고=몸이죠. 디지털 문명 때문에 신체가 소외됩니다.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 있죠. 정보를 어떻게 내 삶에 가공하고 운용할 것인가가 남습니다. 이 힘은 신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가락, 뇌만 씁니다. 기억력을 전혀 쓰지 않죠. 치매든 아니든, 접속할 때 아니면 멍해지는 거죠. 학교현장에 가보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있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허리가 중심인데, 그걸 못 잡아요. 제가 기차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누구나 자리에 앉으면, 폰을 꺼내 몇 시간이고 손가락을 쉬지 않아요. 그러면 언제 쉬고 언제 사색을 해요. 그 사람에게 쉰다는 건 그저 ‘멍~’한 겁니다. 신체는 계속 무능해지죠.

 ▶정=디지털의 그늘이겠죠.

 ▶고=병은 세대와 관계 없습니다. 다들 얼굴만 동안이에요. 방부제 치고 성형하니까. 그런데 정기는 흐르지 않아요. 감동도 없고 경이로움도 없고, 내 힘으로 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동의보감』에 쓰기도 했지만, 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정은 진액대사인데 땀과 눈물, 촉촉하다는 게 그런 겁니다.

 ▶정=현대인에게 고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고=생존의 필수전략이죠. 동서양의 어느 것이든, 삶을 통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 않은 책은 부분만 보게 합니다. 생체회로를 축소시켜버리는 책들입니다. 고전은 몸 전체가 동의를 해야 읽어집니다. 그래서 낭송을 해야 합니다. 치매 안 걸리려면 어려운 거 읽고 외워야 해요.

 ▶정=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합니다.

 ▶고=저의 스승이자 멘토들의 공부 비법을 하나로 요약하면 ‘자기를 구하는 건 자기다’입니다. 천고불변(千古不變)의 진리죠. 나를 구하기 위해 누굴 만나 앎을 찾아 다니고, 나를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자기를 구하세요!

박정호 기자, 김민영(프리랜서·작가)

고미숙은 …

1960년 강원도 정선 출생. 고려대 독문과, 동대학원 국문과 석·박사.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 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강연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10월 ‘수유+너머’를 떠나 또 다른 공부 공동체 감이당을 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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